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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ug 18. 2020

“행복을 찾은 건 우리 집에
 너뿐이구나”

-<내 사랑>에 나타난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으며 영화 <내 사랑>(Maudie, 2016, 에리슬링 월시 감독)이 떠올랐다. 

 <내 사랑>은 캐나다 노바스코샤 출신의 실존 화가 ‘모드 루이스 Maud Lewis)’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에도 기술이 요구된다   

  

투박하지만 진실된 사랑이 위대한 사랑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주인공 ‘모드’(샐리 호킨스)는 미술에 재능은 있지만 어릴 때부터 만성 관절염으로 장애를 안고 산다. 숙모 아이다의 집에 기거를 할 정도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헛바람이 잔뜩 든 오빠 찰스는 부모가 죽자 집을 처분하고 모드의 그림 몇 점과 화구만 달랑 주고 떠나버린다. 독립을 꿈꾸던 모드는 식료품 가게에서 만난 에버릿 루이스(에단 호크)의 구인 광고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가정부로 들어간다. 모드는 생선과 장작을 파는 에버릿의 허름한 오두막집 곳곳에  그림을 그려놓는다. 모드의 그림으로 작은 오두막집은 산뜻해지기 시작한다.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계단이고 선반이고 온통 그림을 그린다.   

   

-출처: Goole/ 저작권은 노바스코샤 미술관에 있음/ 모드의 그림에는 생의 기쁨이 담겨있다. 



우울한 톤으로 진행되던 이들의 삶에 전환점이 찾아온다. 에버릿이 약속한 생선이 배달되지 않았다면 이웃의 멋쟁이 산드라가 찾아오면서부터다. 그림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그녀는 모드의 그림을 자신과 계약하자는 제안을 한다. 

모드 또한 에버릿에게 제안을 한다. 다들 잘 까먹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을 걸 안다. 장사가 더 잘 되게 하려면 적어놓는 게 좋겠다며 글을 잘 쓰는 자신이 하겠다며 에버릿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산드라에게 생선을 배달하며 보낸 모드의 그림엽서 카드는 동네에 알려지고 에버릿의 집 앞에서 모드의 그림을 팔게 된다. 이들의 삶이, 사랑이 신문에, TV에 알려지면서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출처: Goole / 실제 인물인 ‘모드 루이스



모드와 에버릿의 사랑을 지켜보면서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기술』은 1장 첫 문장부터 도발적이다. “사랑은 기술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답으로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라고 말한다. 

지식과 노력은 단연 에너지가 들어가는 활동이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 주는 것'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사랑의 기술』-43쪽      


사랑은 능동적인 활동으로 참여하고, 주는 것이란다. 영화 속의 모드나 에버릿도 충실히 이 공식에 따른다. 에버릿의 덜그럭 거리는 감정의 표현도 시간이 지날수록 둥그러진다. 

이렇게 되기까지 모드의 시선은 한결같다. 

오두막집에서 가축 다음의 서열이라는 폭언을 들어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뺨을 때리는 남자의 곁에 한사코 머무르려 한다. 어떻게 에버릿처럼 퉁명스러운 사내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 괴팍한 성격을 지닌 에버렛도 자기중심을 갖고 있는 ‘모드’를 만나 서툴지만 변함없는 사랑을 표현한다. 모드는 그림에 자신의 인생이 담겨 있다며 작은 창을 통해 상상하고 그림을 그려낸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모드의 시종일관 동일한 시선은 곁에 있는 사람도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자신의 선택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가정부가 아닌 아내의 위치로 격상시켜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두 사람의 행복 드라마로써, 사랑의 완성을 향해 가는 여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시장형 성격의 사람은 주려고 하지만 단지 받는 것과 교환할 뿐이다. 그에게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것은 사기당하는 것이다.    

-『사랑의 기술』-42쪽  


모드와 에버릿의 사랑은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형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셈이 안 된다. 에버릿의 상황은 가정부를 들일 처지가 아니다. 모드 또한 다리가 불편해 가정부로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식료품점 주인에게 에버릿이 가정부 구인 광고지를 붙여달라는 말을 할 때 카메라는 한쪽 귀퉁이에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고 있는 모드의 모습을 전경으로 잡는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 필요한 요소로 ‘존경’을 꼽는다.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은 아니다. 존경은 이 말의 어원(respicere=바라보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사랑의 기술』, 52쪽     


산드라의 집에서 카드 한 장당 10센트씩 받기로 거래한 날 모드는 에버릿에게 흥정을 잘한다며 칭찬을 해준다. 에버릿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태도에서 사랑의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에버릿의 마음은 열리지가 않아서 빨리 따라오라며 퉁명스럽게 수레를 끌고 간다. 에버릿은 종종걸음으로 뒤따라간다. 

모드는 개의치 않고 그 이후로도 그림을 꾸준히 그리며 에버릿에게 다가간다. 


출처: 넷플릭스 캡처-에버릿은 수레를 끌고 앞으로 가고 모드는 거리들 두고 뒤따라간다


사랑은 같은 방향을 향해간다     


내 그림의 반은 당신 거니까 에버릿의 이름도 넣어야 된다고 된다는 모드에게 집안일은 내팽기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빗자루질을 해줘도 다른 것은 못한다며 에버릿식의 사랑 표현을 한다.     

 

존경만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에 요구되는 것으로 ‘지식’을 들 수 있다.     

보호와 책임은 인도되지 않는다면 맹목일 것이다. 지식은 관심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허할 것이다. 지식에는 여러 층이 있다. 사랑의 한 측면인 지식은 주변에 머물지 않고 핵심으로 파고든다. 이러한 지식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을 그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사랑의 기술』-50쪽   


홀로 오랫동안 살아왔던 에버릿은 모드가 유명해져 집안이 어수선해진 것이 불편하다.  

이런 거 바란 적 없다고, 퇴근하고 와도 사람들 천지고, 당신과 엮인 후로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고 에버릿이 불평을 한다. 당신 없었으면 훨씬 나았겠었다는 말을 들은 모드는 산드라 집으로 가출을 해버린다. 뒤늦게 모드의 빈자리를 느낀 에버릿은 모드를 찾아가 고백한다. 

개보다 보살피기 힘든 사람이라는 에버릿의 말에 개보다는 낫다며 에버릿의 진심을 끌어낸다. 내 아내가 보인다며, 처음부터 보였다며 내 곁을 안 떠났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에버릿에게  모드는 당신과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진심 어린 말을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수레에 타고 가며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사랑에는 ‘책임’이라는 측면이, 보호와 관심에 내재되어 있다.     

책임은, 그 참된 의미에서는, 전적으로 자발적인 행동이다. 책임은 다른 인간 존재의 요구-표현되었든, 표현되지 않았든-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랑의 기술』-49쪽  


모두와 에버릿의 결혼식이 끝나고 방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에버릿의 사랑에 대한 책임을 짐작할 수 있다. 관절염을 알아 발이 약한 모드가 에버릿의 발등에 올려놓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엿볼 수 있다.           


모드:  한 쌍의 양말처럼 살아요
에버렛: 한 짝은 늘어나고? 한 짝은 구멍 나고? 얼룩진 양말처럼? 
모두: 아니에요, 아무도 신지 않은 하얀 새 양말
에버렛: 당신은 감청색이나 카나리아색이 더 어울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갑작스럽게 병이 악화된 모드에게 에버릿은 흐느끼며 말한다.


에버렛: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모드: 난 사랑받았어요     


모드에게 “끝내 행복을 찾은 건 우리 집안에 너뿐이구나”라는 
아이다 숙모의 말처럼 에버릿과 모드, 이 둘은 사랑의 기술을 몸으로 실천했다. 사랑의 실행으로 작고 허름한 오두막집을 따뜻한 그림처럼 만들어냈다.  

    

    


순수 미술을 전공한 아일랜드 출신의 에리슬링 월시 감독 덕분에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한편의 수채화처럼 때론 정물화처럼 다가왔다.  한 장면씩 떼어다가 그림으로 걸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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