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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ug 10. 2020

천복을 기억하고 죽음을 아로새기다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은 중년 이후에도 필요해

선생님, 노인 맞지요    


학교를 가긴 해도 코로나로 아이들이 일찍 하교를 한다. 학년별로 학교를 가다 보니 학교도 3주에 한 번씩 가고 있다. 시험도 학년별로 오전, 오후로 나눠서 보니 아이들도 찔끔찔끔 대중없이 온다. 고등부는 어차피 늦게까지 있다 보니 노동의 강도보다 근무 시간이 길어졌다. 중2 현지가 수업 시간보다 일찍 학원에 왔기에 “시험기간이라 알아서 공부하려고 왔구나. 역시 현지다워!” 했더니 뜬금없이 새카만 눈을 깜박거리며 빤히 쳐다보더니 “선생님 몇 살이세요?”라고 묻는다.      


나: 나이는 갑자기 왜?

현지: 선생님 노인 맞지요. 할머니지요.

나: 할머니 아닌데.

현지: 에이 노인이면 할머니지요.

나: 뜬금없이 웬 나이타령이얏~

현지: 노인이니까 말 피하는 거잖아요.

          거봐. 노인이잖아욧     


노인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뭔데? 했더니 1980년도 이전에 출생한 사람은 다 노인으로 치부한다는 황망한 소리를 들었다.



“현지 너 안 되겠다. 전국의 1980년도 이하 출생하신 분들은 모두 궐기하시오. 여기 당신들을 노인이라고 부르는 망령된 자가 있으니 어서 와서 혼좀 내주시오” 이런 대자보를 붙이고 우리 학원 주소 올려서 너를 반드시 찾아내게 만들어야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69세인 분들도 당신들은 70이 안 되어서 아직 노인이 아니고 중년이라고 하는 판에 중2 여학생의 눈으로는 40세가 되면 다 노인으로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돌아가고 난 뒤에 나는 왜 노인이라는 말에 그토록 발끈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며칠 전 현지 어머니께 극찬의 소리를 들었던 터라 그 노인이라는 말에 더 괘씸했던 걸까?     



난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야

   

나르시시즘에 젖어 “국어학원은 많아도 수행평가에 글쓰기까지 봐주는 학원은 없지. 난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야.”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던 터였다.      

시험 대비 2주쯤 들어갔는데 현지가 집중도 잘하고 시키는 대로 노트 정리도 해가며 열공하던 차였다. 현지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원장님은 대체 불가능한 분이세요. 하기에 속으로, 맞아, 난 대체 불가능한 선생이지. 자부심 게이지가 뿜 뿜 치솟고 있었는데, 그 뒤의 이어지는 말에 빵 터졌다. 아이들과 밀당을 아주 잘하셔서 풀어줬다 쥐었다 너무 잘하신다고. 우리 딸을 너무 잘 다루세요. 선생님 오래오래 가르치셔요. (한 달 동안 잘 관리해서 현지가 이번 시험에 전과목에서 4개밖에 안 틀려오긴 했다.)

    

이 전화를 받은 지 불과 하루 전이었는데 느닷없이 노인 타령을 해 자존심에 살짝 스크래치가 갔다. 건강하지 못한 자존감을 갖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몸 담고 있는 이 일을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던 차였다. 일단 아이들을 낳지를 않으니 학령인구가 자꾸 줄어들어 학원에 올 아이들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그런 데다가 지역 특성상 주거비용이 만만치가 않아서 그런지 새로 유입되는 가구 수도 없었다. 오죽하면 사양산업으로 식당과 학원을 꼽고 있을까. 강사로서 나이에 대한 부담도 사실 없다곤 할 수 없다. 어휴 26년이나, 오래 하긴 했다.


자꾸 달팽이처럼 움츠러들고 있는 마당에 아무리 아이가 생각 없이 한 말이라도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달리 바꿔 볼 수 없는 현실이어서 답답하긴 하다. 꽁하고 닫힌 성격도 아닌데도 환경 때문에 더욱 의기소침해지고 작아지는 내 모습이 신경이 쓰였다.    

  




김형경 작가의 『천 개의 공감』 에는 고든 올포트의 성숙하고 건강한 성격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올포트는 “확고한 자기 개념과 자기 정체감을 갖는 것, 자존감을 느끼는 것, 개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줄 수 있는 것, 정서적 안정을 느끼는 것, 삶의 의미와 방향감을 주는 목표를 갖는 것”을 건강이라고 설명한다.     

-김형경, 『천 개의 공감』, 252쪽     



생각해보니 ‘확고한 자기 개념과 자기 정체감’은 늘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든든한 무기가 되어 자존감이 강한 사람으로 살아낼 수 있었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삶의 목표와 의미에 대한 굳건한 방향성 또한 갖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일상이 뒤틀리다 보니 불투명한 앞날에 불안이 엄습해온다. 코로나에 이어서보자기에 물을 담았다가 한꺼번에 풀어놓는 듯 비까지 퍼붓고 있다. 우울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남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50대 이상의 국어교사들만 모인 카페에서는 “남은 자가 강한 자라고 어쨌든 견딥시다. 이겨 나갑시다. 힘차게” 이런 구호 같은 글로 서로를 위로하는 있는 실정이다. 장강의 앞 강물도 뒷 강물에 자리를 내어 준다고 하지 않든가? 낙엽은 새순에 밀려 떨어지는 것이라고 애써 위로를 하며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글을 쓰고 책을 통해 적게나마 인세도 들어오고 있고, 하는 일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크게 욕심부릴 게 없다.      



현실의 삶에는 ‘최고’가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의 분야에서 각기 다른 소명에 따라 살아갈 뿐입니다. 주변을 자 둘러보세요. 서로 다른 소명과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유기체처럼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김형경, 『천 개의 공감』, 287쪽     



“만물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저마다 자신이 처한 곳에서 작은 성취감으로 자신감을 키울 뿐이다. 절망감을 안고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현재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두려움과 조바심을 버리고 일상을 이어나가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라고 애써 위로를 해본다.       



천복을 기억하고 죽음을 아로새기고

   

『천 개의 공감』에는 중년 이후의 삶을 이끌어가는 다섯 가지 과제를 안내하고 있다. 과제의 첫 번째로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하라고 한다. 중년 이후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엔소니 기든스는 ‘자기만의 서사 쓰기’를 권고한다. 공동체가 보여주지 못하는 삶의 틀을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고, 그 틀에 맞는 자기만의 삶의 서사를 써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든 올포드의 “나는 내가 되고자 추구하는 바로 그것이다”라는 말이 의미 있는 까닭이다.     


두 번째로는 ‘삶의 목표를 수정’한다. 중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정체성에 맞춰 목표를 수정하는 것으로 하던 일을 바꾸라는 게 아니다. 계속해서 그 일을 하면서 전문성을 쌓으며  진정한 자기실현을 이루도록 내면의 목표를 수정한다.      


세 번째 과제는 ‘천복을 기억하는 일’이다. 천복이란 “이번 생에서 타고나는 소명, 그것을 완수할 역량과 자질, 운명에 내재된 비밀, 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 등의 의미가 포괄된 단어”를 지칭한다. “자신의 천복을 기억하고 삶의 억압해둔 반쪽을 되살리는 일이 진정한 자신의 삶에 닳는 일,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는 일”이다.  

    

네 번째로 ‘공동체에 회향하기’이다. 천복을 타고나는 이유는 결국 공동체에 유익하게 사용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죽음을 기억하기’가 중년 이후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다섯 번째의 과제이다. 삶을 가볍고 단출하게 영위하기 위해서도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소명을 완수하고 회향하는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잘 죽는 법을 배우게 된다.       

철없는 아이의 노인 타령에 마음 상해할 일이 아니다. 천복을 기억하고 공동체에 유익함을 주고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에머슨의 말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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