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과 부는 넘치고 파라솔은 사방에 있었다
진순희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지중해 바닷가
2인용 비치파라솔을 들고
젊은 여자의 한 발자국 뒤에서
늙은 피카소가 시종처럼 따라간다
화사한 웃음을 머금은 훤칠한 여인의 뒤로
화가의 주름이 출렁거리고
뱃살이 흘러내린다
노구가 움켜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람을 막아줄 단단한 벽
그대는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마음에 지문을 새기던 사내
그 소망은 잠시
타고난 바람기가
또 다른 파라솔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명성과 부는 넘치고 파라솔은 사방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