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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ug 30. 2020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해도 정강이 털 한 올도 뽑지 않아

나도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나를 보살펴주렴. please...

머리카락 한 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만일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리 하시겠습니까?”   

  

만일 이런 질문을 내게 한다면? 글쎄, 교양을 앞세우고 적어도 체면을 차려야 하니까 실제는 그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더라도 음~ 음~ 하면서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나는 그렇지 않겠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한 이가 있었다. 바로 양주(B.C440?~B.C 360)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양주는 천하보다도 ‘자아’, 이를테면 자기 자신을 귀하게 그것도 아주 단호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도의 논쟁자들』의 저자 앤거스 그레이엄 /나성 옮김/ 새물결/2015

    

특히 양주는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 군자의 안목에서 본 이로움이었고 지배자의 입장에서 본 이로움이었기에 양주는 그것을 허황된 일로 봤다. 자발성에 기초하지 않은 그 허황된 일에 자신의 생명을 내거는 짱구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양주의 대답은 당시로서는 발칙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기에 그에 대한 오해는 계속 변주되고 재생산됐다.  


    

“양주는 ‘위아(爲我)를 선택했다. 만일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는 하지 않을 것이다.(...)

    


맹자는 양주의 사상을 완전한 이기심의 발로인 ‘위아주의egoism’으로 몰고 갔다. 맹자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유가 전통의 계승자였기에 개인을 중시한 양주를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 맹자는 양주를 폄훼하려는 의도를 다분히 갖고  있었다.



맹자의 생각대로 권위 있는 말 한마디는 무한한 힘을 발휘했다. 맹자의 입김은 실로 대단했기에 양주는 편협한 ‘위아주의’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양주가 이기주의자라고 오해받는 까닭이다.     


하지만 『도의 논쟁자들』의 저자 앤거스 그레이엄은 양주가 말하는 ‘위아(爲我)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한다. ‘나’ 자신인 ‘위아’를 이기주의인 'egoism' 보다는, 자기 본위인 'selfishness'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언급한다. 주변에 대해 무관심하고 나만을 챙기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나를 아낌으로써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자기 본위를 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자기 본위란 자기 자신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말하자면 자기 본위는 나를 소중히 여기면서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자기 본위는 자기애와 연결된다. 이런 까닭으로 에리히 프롬도 『사랑의 기술』에서 자기애는 이기주의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굿 라이프 철학 수업』, 카타리니 케밍·크리스타 슈판바우어/장혜경 옮김/터치아트/ 2018


    

자기애는 고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굿 라이프 철학 수업』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도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다. 『니코마코스 유리학』에서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이웃과 자기 자신 중에서 누구를 더 사랑해야 하는 논쟁에서 자기 자신을 선택해 스승인 플라톤에게 호되게 질책을 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평판에서 벗어난 것은 몇백 년 후 중세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의해서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호성인 노릇을 하게 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그대가 그대 자신을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을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한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한, 정녕 그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해서 자기애가 있는 사람만이 그 힘으로 남들도 사랑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에리히 프롬도 “이기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한다.”면서 자기애와 이기심은 공통점이 없다고 밝혔다. 자신과 공감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만이 그 에너지로 남들도 보살필 수 있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20



나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인간 개념은 있을 수 없다. 나 자신을 제외하는 이론은 그 자체에 본질적인 모순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서의 말에 표현된 사상은 자기 자신의 통합성과 특이성에 대한 존경이 다른 개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이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의 자아에 대한 사랑은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90쪽





엄마도 공부하고 싶단다


생각해보니 나도 자기애가 강한 사람에 속한다.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언제나 바깥세상에 귀를 기울였다. 집안일도 하지만 바깥일을 하고 싶었다. 사회의 연결고리가 되어서 바깥세상의 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여성에게 사회는 그다지 따뜻하지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해를 두고 계속 고민해야만 했다.  

    


나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는 꼬마 시인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책 대여하는 사람이 인근 아파트에 목요일이면 왔는데 아이를 낳고서도 몇 년 동안 일주일에 두 권씩은 꼭꼭 빌려다 봤다. 계속 읽고 쓰면서 동트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며 오랜 시간을 나를 갈고닦는데 보냈다.

     


신문에 이대 김재은 교수님의 자녀를 위한 강연 일정이 나와 있으면 초대하지 않았는데 쪼르르 달려갔다. 신이 다할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대신 내려보냈다는 사명으로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곳이면 다 쫓아다녔다. 아이들 교육만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곳에도 부지런히 달려갔다.



 예술의 전당에서 로버트 카파 사진전과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에도 카레이스키의 애환과 고통의 삶을 기록한 신순남 화백의 특별전에도 찾아다녔다. 심지어 창원까지 새벽부터 내려가 이성자 전시회도 다녀올 정도로 나를 다듬는 데 시간을 쏟았다.   



철학과 미학과 문학을 계속 공부하러 다녔다. 하다 하다 김수행 교수님이 강의하는 자본론 수업까지도 들으러 다녔다. 이렇게 이것저것 공부하던 어느 날, 그래 결심했어! 전공을 살려서 깊은 공부를 더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불현듯 일어났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선언했다.   

    


엄마 공부해야 돼. 공부하고 싶어. 그러려면 너희들이 자기 할 일을 잘해줘야만 해. 엄마가 도서관에 가 있을 때, 학교 수업 듣다가 너희들을 보살피러 올 수는 없잖아. 내가 너희를 보살폈듯이 나도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나를 보살펴주렴. please...     


처음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인지라 어떤 때는 잘하다가도 매번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린아이들을 놔두고 다니는 것이 과연 내가 옳은 일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자칫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계속 자괴감이 들면서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지금 아니면 아이들도 자립적인 인간이 될 수 없을 거라며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지금 아니면 안 돼 라고! 기회가 다시는 안 올 거야 라고!     



아침에 나가면서 거실 한 편에 세워둔 칠판에 글을 써놓았다. 이것저것 할 일을 써 놓고 엄마가 없을 때 큰 아들은 집안의 기둥이니까 동생 잘 보살피고 각자 할 일 하라고.



우리 서로는 너무도 바쁘기에 누가 누구를 보살필 여력이 없다고. 그러니 서로 자신의 일만 미루지 않고 잘 해내면 우리는 멋지게 성장할 거라는 내용의 글을 써놓았다. 마무리로 내가 다시 태어나도 나는 너희들의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훗날 군대 간 둘째 아들한테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행복하다는 편지를 받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한 번은 이웃의 엄마가 내가 없을 때 잠깐 왔다가 칠판을 봤던 모양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대뜸 와! 자기는 어쩜 그렇게 이기적인 엄마야. 저 꼬맹이들이 뭘 안다고 “우리는 서로 바빠서 누가 누구를 보살필 여력이 없다”는 그런 글을 써놨어? 아이구 참 내. 애들 크는 거 잠깐이야. 애 키울 땐 애 키워야지, 애르~을~! 어린것들 둘이서 식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거 보는 데 내가 다 눈물이 나더라. 애들이 놀고 뛰고 난리를 부려야 그게 애지. 자기 집 같은 애들은 애가 아니지.

내가 미처 반박을 하기도 전에 쌩하니 가버렸다.        


출처: Pixbay -우리 집 두 형제들도 이렇게  도란도란 공부를 했다


박사 면접 볼 때의 일이다. 교수님께서 아니 일도 하시면서 학교 공부를 어떻게 하려는 건가. 박사는 all student가 되어야 하는 데 무리인 것 같다고 하셨다. 면접 교수님께서는 혹시 박사를 액세서리로 따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듯싶었다. 이때만 해도 박사과정 입학은 물 건너 간 분위기였다.    

  


전세를 가다듬어 대차게 말했다. 인문 전공자들이 자리를 못 잡고 있는데 모교에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면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거라고 했다. 더불어 성장하는 데 힘을 실을 거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그때만 해도 박사 입학할 사람이 네 학기나 정체되어 있던 상태였다. 석사 한 지 9년 만에 나타나 박사 지원을 해서 입학이 불투명했다.       

면접 보러 왔으니까 그냥 형식적으로라도 시간을 채워 질문이라도 해야겠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세 분 교수님 중 가장 연세가 많으신 교수님께서 남편의 직업에 대해 물으셨다. 박사 면접에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긴 했지만 그냥 대놓고 말했다.     

 

교수님: 남편분은 무얼 하시나?

나: 한량입니다. 사진작가 일을 하면서 충무로에 스튜디오도 갖고 있긴 하나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 하는 사람입니다. 다정다감하긴 하지요. 그거 하나는 잘하지요. 돈 하고 인연이 없어서 그렇지  나름 괜찮은 사람입니다. 교수님! 제가 가장입니다.  
      
  그냥 담담하게 말했다.


교수님: (갑자기 측은한 눈빛으로) 아, 아이구. 그러시군.      



물어서는 안 될 걸 물어보신 것처럼 급 당황해 하셨다. 애매한 기류가 면접실로 퍼져 나갔다.

세 분 교수님 모두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젠장 합격은 물 건너갔군 생각했다.



합격하고 나서 복도에서나 수업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교수님은 그윽한 눈빛으로 애처로운 듯이 보셨다. 하루는 한쪽 구석으로 살그머니 불러서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 연구실로 가니 대뜸 바깥 분은 여전하시고 물으셨다. 그러면서 외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이리저리 찾아 봐주셨다.



그때 이미 나는 서울시 인문 장학금의 수혜자가 되어 장학금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전 학기 장학금을 따놓은 상황이었다. 학교란 것이 타 분야에는 정보의 사각지대인 지라 전공에서도 분야가 다르다 보니 내가 장학금 받고 있던 것을 모르는 눈치셨다.   

     


만일 나의 이웃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나 역시 인간이므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90쪽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기애를 발휘할 거야


자기애는 이기심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자기애는 타인에 대한 존경, 사랑과 이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이스터 에크 하르트로부터, 에리히 프롬으로부터 배웠다.   

   


나 자신이 자기애로 무장한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제 앞가림은 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주변에서 모두들 말한다. 아들 둘 중에 하나는 속을 썩이거나 잘 안 됐는데 자기네는 아들 둘이  똑 부러지게 컸다고.



지금에 와서 많이들 후회한다. 00이 엄마처럼 일을 해 아이들이 고생도 좀 해보고 엄마 힘든 것도 알아야 되는데,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자립은커녕 삼십이 넘은 아이들을 뒤치다꺼리하고 있다고 푸념을 했다. 며칠 전에도 출장 가는 놈이 여권을 두고가 공항까지 갖다 주고 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리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하더라도 내 정강이 털 한 올도 뽑지 않겠다는 양주의 위아론은 흔히 이기적인 삶의 태도로 보이긴 한다. 세월이 흘러 양주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한비자는 양주를 옹호해  “--그는 세상의 큰 이익을 위해 자기의 정강이 털 한 올도 바꾸지 않는다. (...) 사물을 가볍게 보고 생명을 중시하는 선비라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그 옛날의 나를 질책했던 이웃들도 지금은 모두들 부러워한다. 그때 자기가 애들 두고 공부하러 나간 건 신의 한 수였다고.


      

양주의 생각처럼 온 세상은 결코 한 오라기 털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참되게 자신을 위할 줄 알 때 전쟁을 안 하고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말하고자 한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내가 지닌 자기애를 발휘해 자아실현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성장해야 아이들도 더불어 성장하고 가정이 안정되니까. 비록 세상은 구하지 못했어도 우리 가정 하나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출처: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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