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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Sep 29. 2020

나는 왜 쓰는가

더 나은 사람으로 되기 위한 나만의 리추얼을 수행한다

매일 글을 쓰려고 한다


매일매일 글을 생산하려고 한다. 글쓰기와 책 쓰기를 한방에 가르치는 “콘텐츠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습관이 붙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브런치나 새로 시작한 블로그에 페이스 북에 글을 올리고 있다. 거의 하루의 의식을 치르듯 글을 써내고 있다. 강박처럼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 나만 이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싶어 기웃거려봤다.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자칭 글쓰기 노동자라고 하는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는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을 유심히 다시 보게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집중하게 한다."라고 고백한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 터라고 천명한다. 책을 쓰는 이유는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라고 『나는 왜 쓰는가』에서 밝히고 있다. 


나는 왜 쓰려고 하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무심히 지나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고 불의에 대한 민감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썼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감’에 대한 동시를 썼는데 잘 썼다고 칭찬을 받았다. 그 뒤로도 뭐든 쓰면 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글은 그냥 쓰면 되나 보다 하며 지나쳤다. 


고등학교 때도 두툼한 공책에 시를 적고 그림을 그리는 시화를 매일매일 친구랑 경쟁하듯 노트에 썼다. 그냥 쓰는 게 일상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쓰고 집에 와서도 신문에 좋은 글이 있으면 베껴서 쓰곤 했다. 


사람 좋고 경제력도 좋아 보이는 데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남자를 만났다. 연애할 때는 비싼 샤부샤부 집이나 근사한 경양식 집으로, 호텔에서 밥을 사주는 남자랑 결혼했다. 이 멋진 남자가 결혼해서 보니 빈 깡통이었다. 


너 만나느라 돈을 다 써버렸다는 남자와 신혼을 꾸렸다. 매일 밥 먹듯 우는 날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연달아 생기고 생활고는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더 이상 살아낼 수가 없다고 좌절했을 때 나를 구한 것이 글쓰기였다. 


밤마다 공책에 일기를 썼다. 동트기 전의 새벽이 제일 어두운 법이라고 새벽이 지나면 새 아침이 올 거라며 주문을 걸었다. 내일은 나아질 거라고. 반드시 나아질 거라고. 안 그러면 이것은 신이 실수하는 거라고 푸념을 늘어놨다. 때로는 하늘에 협박을 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다. 


하루에 있었던 경험들을 기억하기 위해 생각을 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어제보다 더 나은 일상을 만들고 싶어서 하루하루의 주인이 되고 싶어서, 더 나아가 내게 주어진 해야 할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어서 글을 썼다. 하다못해 신문에 있는 미담 기사나 칼럼 같은 것을 공책에 붙여가며 느낌을 쓰고 글에 대한 평가를 하며 뭐라도 기록했다. 그것만이 초라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이렇게는 살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의식 곳곳에 이끼처럼 붙어있었다.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는 건 글쓰기와 책 읽기 밖에 없었다. 꾸준히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빌려다 읽었다. 아이들 재워놓고도 읽고 유모차를 세워 놓은 채로 밀면서도 책을 읽었다. 읽고 나서는 쓰고, 또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방송국에 글도 보내고 엽서도 보내며 그냥 썼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글 쓰는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니까 잡념이 사라지고 비루한 일상을 밀쳐둘 수 있었다. 한풀이처럼 쏟아냈을 때의 후련함으로 한 편을 끝냈을 때의 만족감으로 마음이 고요해졌다. 충만감은 여운이 길어서 잔잔한 기쁨으로 남아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이 크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품게 되었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했기에 내가 목표하는 삶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그려냈다. 자신이 되고 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읽고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의 성취 욕구는 점점 자기 자신을 나아지게 하려는 소망을 갖게 해 품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아이들 어릴 때의 글쓰기가 궁핍한 현실을 잊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지금은 고요함을 얻기 위해 글을 쓴다. 그때보다 형편도 나아지고 나 스스로도 성숙해져서 그런지 웬만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게 된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되돌아보게 되니 삶도 충만해진다. 하루의 겪었던 일을 글로 쓰기 위해서는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깊이 있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좀 더 나은 글로 풀어내기 위해 고민하며 곱씹는 과정에서 성찰하게 되고 사색하게 됨은 물론이다. 


글쓰기는 사람을 진중하게 하고 일상의 주인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반추하다 보면 그때 그런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됐었는데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해 자비를 베풀게 된다. 그때 네가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은 다른 사람이라도 그랬을 거라는 자기 위로도 하면서 나를 다듬는다. 이렇게 매번 생각하고 닦는 과정에서 이전 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글쓰기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세상과의 창이란 게 아이들과 만나고 학부형과 만남에 그치고 있는 내게 글을 쓰는 작업은 온라인상에서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각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만든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코로나로 침울해지고 울적해지는 코로나 블루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글 쓰는 동안은 잠시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고립감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많이 읽고 배우는 뉴 러너, 패스트 러너가 되게도 하니까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또한 높아진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힘든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것과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또 고립감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일상의 주인이 되기 위함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점점 더 나은 사람으로 되기 위한, 잘 살아내고 있다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오늘도 나는 글쓰기라는 리추얼을 수행한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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