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의 소리에는 그늘이 있다 맺힌 듯 풀고 풀린 듯 다시 휘돌아 감는 수리聲*이 혼과 백을 넘나든다 대금소리에도 그늘이 있다 허무와 한을 삭이고 품어 안아 천공을 건너는 젓대의 울림이 있다 죽순처럼 자란 자식들 떠나보내고 어머니 홀로 앉아 바느질을 하신다 흠가고 이 빠져 날로 뭉뚝해지는 하루,
오래 쓴 가위가 슬며시 실밥을 들어올린다 소지 한 장보다 가볍게 펼친 그늘이다 그늘이 없으면 큰 소리꾼이 아니라지 남루 조각, 양잿물비누로 쓱쓱 비벼놓은 내 시에도 그늘 한 자리 앉히고 싶다 전등사 쇠북처럼 겹겹 그늘을 깔고 싶다 덕수궁 돌담길 수령 오백 년 회화나무 한 그루 목젖에 푸른 피가 고이도록 토해내는 초록 그늘, 참 깊고도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