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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목젖에 푸른 피가 고이도록 토해내는 초록 그늘, 참 깊고도 환하다.

by 진순희

그늘

이영식


임방울의 소리에는 그늘이 있다
맺힌 듯 풀고 풀린 듯 다시 휘돌아 감는
수리聲*이 혼과 백을 넘나든다
대금소리에도 그늘이 있다
허무와 한을 삭이고 품어 안아
천공을 건너는 젓대의 울림이 있다
죽순처럼 자란 자식들 떠나보내고
어머니 홀로 앉아 바느질을 하신다
흠가고 이 빠져 날로 뭉뚝해지는
하루,

오래 쓴 가위가 슬며시 실밥을 들어올린다
소지 한 장보다 가볍게 펼친 그늘이다
그늘이 없으면 큰 소리꾼이 아니라지
남루 조각, 양잿물비누로 쓱쓱 비벼놓은
내 시에도 그늘 한 자리 앉히고 싶다
전등사 쇠북처럼 겹겹 그늘을 깔고 싶다

덕수궁 돌담길
수령 오백 년 회화나무 한 그루
목젖에 푸른 피가 고이도록 토해내는 초록
그늘, 참 깊고도 환하다.


―시집 『희망온도』 중에서



수리성*: 목청이 곰삭아 조금 쉰 듯하게 나는 소리






회화나무 1.PNG 출처: http://blog.daum.net/561102/15718846



캡처.PNG 출처: Pixabay



초안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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