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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Oct 15. 2020

“넌 무엇을 기대했니”

비루한 일상을 자신의 이름처럼 경작해 낸 위대한 남자, Stoner


스토너전傳


존 윌리엄스가 쓴 『스토너』는 미국에서 발표된 지 50년이나 지나서야 유럽 평론계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작품이다.


스토너전傳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 개인의 일생에 집중했다.

평생을 문학과 함께 살아간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언뜻 보기에 실패한 삶을 살다 간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묵묵히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꿋꿋이 갔던 굳건한 사람이다.       




스토너는 농부의 외동아들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미주리 대학에 우연치 않게 입학하게 된다. 2학년 영문학 개론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접한 후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한다.

문학을 만난 후 그는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다.      



지금은 유명한 고전문학자가 된 고미숙 작가도 독어를 전공했지만 김흥규 선생님의 고전 수업의 매력에 빠져 결국 고전을 전공하게 됐단다. 스토너도 아처 슬론 교수의 강의에서 고미숙 작가처럼 단전에 울림이 있는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문학을 사랑한 스토너는 결국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되기에 이른다.

윌리엄 스토너는 젊은 날 급하게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이 한 달도 안 돼서 실패했음을 깨닫고,  1년도 안 돼서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린다. 그는 사랑을 고집하지 않는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교수가 되지만 아내로부터 학교의 동료로부터 타의에 의해 고립되어 쓸쓸한 삶을 살아간다.

이렇듯 외롭게 몇십 년을 살다가 스토너는 암에 걸려 죽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스토너가 엄청 불행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함을 놓치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이 왔음에도 혼자서 묵묵히 다 견뎌낸다.     

 


초라한 실패담에 불과한 자신의 삶을 이렇게 관조하며 살아낼 수 있었던 스토너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어떤 성격이 비루한 일상을 포기하지 않게 했을까? 하루하루 암석처럼 굳건하게 자신의 삶을 경작하며 살아내게 했을까?    


 


대니얼 네틀의 성격의 탄생에 나온 Big Five 이론의 성격진단표로 검사해보면 모르긴 몰라도 스토너의 성격은 성실성은 높게, 신경성은 낮게 나왔지 싶다.              



는 아내 이디스의 무심함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다.

이디스는 자신의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 결혼이라는 무리수를 둔다. 출발부터가 삐걱거렸기에 결혼생활은 행복할리 없었다. 스토너와 결혼을 했지만 신경증으로 예민한 그녀는 임신해서부터 아이를 낳고 나서도 육아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그로 인해 집안일 모두가 스토너의 차지가 된다. 출근하기 전에 아이를 돌봄은 물론 퇴근 후에도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가정일을 하고   연구까지 전부 해낸다. 무리한 일정을 특유의 성실성으로 버텨낸다.

 


출처: 『성격의 탄생』<표 3 5대 성격 특성>, 48쪽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그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스토너』, 140~141쪽      



서재의 모양을 다듬듯 자기 자신을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해서 산 집에 서재를 만들고 그곳에서 딸 그레이스와 잘 보내고 있던 이때가 스토너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을 게다. 어느 날 이디스는 갑자기 들이닥친다. 앞으로  딸아이 그레이스의 양육은 자신이 할 거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디스의 느닷없는 선포에도, 퇴근하고 왔더니 서재에 있던 책이랑 짐을 사방이 유리로 된 방으로 짐을 옮겨놔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방이라 낮에는 덥고 밤에는 혹독하게 추웠다. 추워도 감내하며 그곳에서 책을 읽고 연구를 한다.  스토너 무던하기도 하지.       

   


마침내 그는 밤에 연구실로 나오는 것이 자신에게 일종의 피난이자 구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약간의 위안과 기쁨, 심지어 이렇다 할 목적이 없는 공부에서 예전에 느꼈던 즐거움의 흔적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스토너』, 177     



신경증이 높은 아내 이지스의 공격에도 자신의 범위 내에서 노력하고 해결방안을 찾는다.  서재도 빼앗겨 버리고 추운 방에서는 공부할 수 없었기에 밤늦게 학교 연구실로 가는 대안을 찾아낸다. 성실성이 바탕이 된 윌리엄 스토너는 체계적이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내 이디스나 학과장 로맥스와 대학원생 찰스 워커의 괴롭힘에도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대응만 할 뿐이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신경증 지수가 낮은 윌리엄 스토너는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간다.


 이러던 어느 날, 회색빛 인생을 살고 있던 마흔셋 윌리엄 스토너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이 부분을 읽으며 제발 사랑하는 캐서린이랑 줄행랑이라도 쳐서 그간의 괴로웠던 삶을 보상을  받으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읽었지만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뒤에 역자 후기를 보니 내 마음과 똑같이 표현해내서 내심 놀랐다.

           


나는 끊임없이 상상했다. 스토너가 악의 무리(이디스, 로맥스, 찰스 워커)를 놀라운 지혜와 용기로 무찌르고 사랑하는 사람들(딸과 캐서린)을 행복의 세계로 이끄는 세상. 나는 몹시 아쉬워하다가 결국 깨달았다. 독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수수한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는 것.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 392쪽          


캐서린과는 학문적인 유대감으로 시작되었지만 사랑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문학에 심취했던 윌리엄 스토너에게 캐서린의 탁월한 리포트는 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캐서린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며 지내는 날이 길어지자 동네는 물론 학교에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입지가 좁아진 스토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동요하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선택한다. 그녀 역시 마지막을 함께 한 후 짐을 정리하고 다른 도시로 떠나버린다.      



스토너는 견디기 힘든 맹렬한 폭풍 속을 지나갈 때처럼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생각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데에만 고정시킨 채 그 시절을 겪어냈다.

- 『스토너』, 356쪽  



『스토너』의 저자 존 윌리엄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      

- 『스토너』, 395쪽     



저자의 인터뷰를 종합해 볼 때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갈고닦으며 산 것은 분명하다. 바위처럼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경작하며 산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의 삶은 쓸쓸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혼자였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다 혼자라는 사실을. 그것이 인생의 진리임을.

“우리 모두 스토너”이기에 주는 울림은 책을 쉬이 덮지 못하게 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 가을 그가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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