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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Oct 21. 2020

왜 미국은 바나나에 그토록 예민했을까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이 정도라네.” 앙드레를 묻으면서 족장이 하는 말

멈출 수 없는 롤러코스트, 욕망의 시간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는 농부 앙드레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경계한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지주가 된 농부 앙드레는 마을을 찾아온 나그네에게서 눈이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듣는다.  

   


유목민들의 땅에 대한 것으로,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우정을 쌓으면 땅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희소식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길을 떠난다. 선물을 주고 환대를 받은 앙드레는 유목민의 족장과 거래를 한다.

1000 루블만 내면 하루 동안 걸어서 다닌 땅은 전부 가질 수 있는데, 해가 지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조건이었다.

결말은 예상했다시피 과도하게 욕심낸 앙드레는 출발했던 곳에 도착하지만 무리한 탓에 그만 숨을 거둔다. 더 많은 땅을 욕심내던 앙드레는 낯선 곳에서 2m 길이와 1.5m 되는 구덩이에 묻힌다.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이 정도라네.” 앙드레를 묻으면서 족장이 하는 말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살상을 하며 전쟁도 불사했다. 채집 시대에도 칼이 있었던 것을 보면 전쟁은 인류의 오래된 역사이기도 하다.    

  

전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의 욕망 때문에 일어난다. 자원과 땅에 관한 욕심으로 또는 영향력을 키우려는 야망으로 발생한다. 물론 영토나 자원을 확대하려는 경제적인 요인 이외에 종교나 이념, 민족이 달라서 등과 같은 다른 요인도 있다.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은 춘추전국시대부터 팍스 아메리카나까지의 경제 전쟁을 다루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화폐전쟁, 대항해 시대를 연 향료 전쟁, 오늘날의 무역전쟁까지 모두 돈관 관련된 무역전쟁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학계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우연이나 순수한 정치적 원인만으로 발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제적 경쟁으로 형성된 열강들의 적대관계가 악화되어 군사적으로 충돌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 151쪽      



경제적 경쟁으로 일어난 전쟁은 종교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군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전쟁은 유럽의 봉건 영주와 기사단이 아랍인에게 점령당한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지중해 동쪽부터 진행됐다.          



돈과 관련된 전쟁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압력에 저항해 교황의 권력을 찾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십자군은 기독교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원래의 목적지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같은 기독교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에 칼을 들이댄다. 교황 우르반 2세의 연설 <아버지의 이름>에 십자군 전쟁의 저의를 알 수 있다.   

   


“부유한 동방에서는 금, 향료, 후추를 몸만 굽히면 주울 수 있는데, 우리가 왜 여기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 60쪽     



돈은 ‘공기 중에 떠돌던 억압된 욕망’을 수면 위로 부상하게 했다. 

십자군이 베네치아의 요구로 달마티아의 자라에서 싸울 때 교황은 분노하며 십자군 천체를 파문한다. 그에 비해 유럽의 가장 부유한 도시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당했을 때는 태도가 달랐다. 파견한 사람이 승리의 열매를 챙길 때까지 주둔할 것을 요구했다. 콘스탄티노플이 기독교 세계의 중요한 일원이라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무지는 오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데 바로 러시아의 대황 수입 사건이었다. 청나라는 러시아가 약재인 대황을 대량으로 수입하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위와 장이 좋지 않아서 대황을 먹지 않으면 독과 변을 배출하지 못한다는 뜬소문만 나돌았다. 이에 청나라 조정은 엉터리 소문만을 믿고 러시아의 전략물자를 손에 쥐었다고 흡족해했다.   


   

캬흐타에서의 대황은 16킬로당 16 루블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운반하면 30 루블을, 다른 유럽 국가들에 수출하면 65 루블은 더 붙일 수 있었다. 16 루블에 사서 81 루블에 팔 수 있었으니 이윤이 서 너 배나 되었다.      

러시아가 대황을 그토록 많이 수입한 것은 순전히 경제적 이익 때문이었다. 청나라 조정은 대황으로 오랑캐를 제어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해 국방전략을 세울 때도 총포보다 대황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류를 읽지 못한 청나라는 훗날 차를 둘러싼 아편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시간과 공간에 개의치 않고 무역전쟁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이다. 1990년대 냉전 때문에 제쳐두었던 여러 경제적 모순이 충돌해 미국과 EU는 수차례 무역전쟁을 치렀다. 제대로 맞붙은 것은 바나나와 철강을 놓고서였다.



EU는 그 당시 세계에서 바나나 소비가 가장 많았다. 과거 유럽의 식민지였던 개발도상국의 바나나를 최우선적으로 수입하고,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서는 수입허가제와 수입할당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EU는 개발도상국의 원조로 여겼다. 하지만 미국은 EU를 WTO에 제소했다.



바나나 무역이 미국 기업의 이익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가 부당하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미국 기업인 ‘돌’과 ‘치키타’의 시장 점유율이 반 토막이나 큰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바나나 전쟁에는 경제적인 측면 아니라 정치적인 면도 작용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EU에 바나나 팔아 번 돈으로 수많은 미국의 제품을 수입했다. 미국은 이런 순환이 불가능해지면 미국 제품을 수입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게다가 경제가 어려워져 실업률과 범죄율이 증가하게 되면 미국으로 불법 이민자가 늘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패권이 약해진다고 느껴진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 뒤 미국과 EU의 공방전은 길고 지루하게 진행됐다. WTO의 재심의가 끝나기도 전 미국은 301조를 발동해 EU 상품에 치키다와 돌이 손해 보았다고 주장한 금액과 똑같은 5억 2,000만 달러 규모의 징벌성 수입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질세라 EU도 301조의 합법성 자체를 공격하며 WTO에 심의해달라고 재빠르게 대응했다.

길고 지루했던 전쟁은 WTO 사무총장이 중재에 나서서야 끝이 났다.  20년간 계속된 무역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이 바나나에 그토록 예민했던 이유는 자국민의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힘을 자랑할 때는 자연히 개방적인 무역 환경이 유지되길 희망할 것이고, 스스로 상당히 개방적인 무역 정책을 취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이 쇠퇴해 무역환경이 자국의 무역정책과 부딪히면 점점 보호무역을 추구할 것이다.”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


  

저자는 책의 말미에 미국이 여전히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라는 점은 부인할 순 없지만 달라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지혜가 필요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자신이 묻힐 정도의 공간만 필요할 정도인데도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달리는 롤러코스터에서 멈추질 못한다.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을 읽으며 “인류는 여태껏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 적이 없다는 게 인류가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헤겔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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