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Dec 06. 2020

정말, 그렇게 일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성능 좋은 스피커 대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제때제때 알리세요

이번에 미고에 붙은 용준이가 수업을 듣겠다고 다시 왔다.

소문에 의하면 정물 소묘로 금상을 받아서 미고도 수석으로 들어갔단다.

입학하기 전 국영수를 다져놓고 가겠다고 해서 다시 온 친군데, 만화를 그리고 싶어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만화의 전망이라든가 미술계의 동향 같은 것을 설명을 해주며 용준이에게 큰 그림을 그리게 했다.      



11시에 자서 새벽 5시 30분쯤 일어나는 데 시간을 허투루 보낸다며 용준이가 걱정을 했다. 글도 잘 쓰고 싶다고 하기에 만화는 콘텐츠가 좋아야 되기 때문에 문사철이 기본이 돼야 함을 주지시켰다. 계속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지 시간 관리나 글쓰기, 학습에 관한 것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학원에서 자기 주도 학습하는 아이들에게 쓰는 ‘30분 단위의 시간표’를 나눠줬다. 학원 가는 고정적인 시간을 일단 다 적게 했다. 숙제는 그 과목이 있는 날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하도록 시간을 할애했다. 시간표를 꼼꼼히 짜더니 아침에 일찍은 일어나는 데 시간을 밀도 있게 잘 보내지를 못한다고 했다. 일어나서는 집중이 안 되어 그냥 유튜브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고 부끄러운 듯이 말을 했다.      



그래서 EBSI의 국어-윤혜정 선생님의 <개념의 나비효과>를 1강씩 들으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34강이어서 매일 하면 3월 입학 전까지 두 번을 돌고 가니까 1등급은 안고 갈 거라고 용기를 줬다.

국어는 해도 점수가 잘 안 나오고 안 해도 확 떨어지지 않는 과목이지만 수능 때까지 애를 먹이는 과목이다.

미술 하면서 미리 국어를 다잡아놓으면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을 벌게 되므로 겨울 방학 때 국어와 독서와 글쓰기를 다져놓기로 했다.       


글도 잘 쓰고 싶어 하기에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1권을 빌려주고 매일 한 편씩 읽고 뒤의 작품 해설을 마인드 맵 하게 했다. 경향 신문의 <여적>이나, 한겨레의 <유레카>, 조선일보의 <만물상>, 중앙일보의 <분수대> 중 한 편을 골라 베껴쓰기 10편 하고 나면 글쓰기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출처: Pixabay



학원도 같은 과목을 두 군데씩 다니는 것보다는 한 군데만 다니고 대성 마이맥이나, 메가스터디나 이투스 같은 데를 끊어서 인강으로 들으라고 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자기 공부시간'이 없으면 학원이 아니라 천하의 족집게 강사라도 무용지물이니까 네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알려줬다.  


    

『그렇게 일하면 아무도 모릅니다』를 읽기 전까지는 그저 내가 성실하게 가르치는 것만이 대수인 줄 알았다. 이렇게 열심히 가르치는 거 하늘이 알고 지도 알고 나도 알고 있으니 학부모도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상사나 타인은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중간중간에 보고를 하고 상황설명을 해야지 안 그러면 아무도 전혀 모른단다. 아니 관심이 없단다. 그들도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야 돼서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단다.      


  

실제로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빨리 승진한단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군주는 모든 성품들을 다 갖출 필요는 없으나 마치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했던 것처럼 ‘있어 빌리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보다는 ‘인식’이 이길 때가 많고,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그것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믿게 되어 좋은 평판으로 작용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승진도 빨리하게 된다.    



       


“척 자생 존”의 시대다          



흔히 ‘마케팅’은 제품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러한 원리가 그대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에 “~하는 척”이 필요하다. 타인은 보이는 것만을 보고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기에 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척이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다.  

‘바쁜 척, 열심히 하는 척, 아는 척, 친한 척, 살가운 척’하는 사람만이 생존한다. 이름하여 ‘척 자생 존’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척하는 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자기 스스로는 묵묵히 일한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관심 있는 것은 내 가족이나 ‘나’밖에 없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한다고 하는 것이 자칫 상사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묵묵부답이 될 수도 있다.

상사의 눈에 띄지를 않으니 부하 직원이 일을 잘하고 있는 지를 알 수가 없다.

보이는 것이 전부다.

보여주는 게 능력의 일부분이 아니라 능력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도 사실은 관찰될 때 존재가 증명됨을 보여준다.

이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1935년 에르빈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이 실험을 부박하게나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떤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는데, 이 상자를 열기 전에는 안에 있는 고양이가 죽어있을 수도 있고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현상은 보이고 관찰될 때에만 존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는 당신의 모습은 타인에게 노출될 때에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다.


          

출처: Pixabay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UjaAxUO6-Uw&feature=emb_logo



https://www.youtube.com/watch?v=UjaAxUO6-Uw&feature=emb_logo     

슈뢰딩거의 고양이 : 양자 역학의 상상실험- 체드 오르젤


  

용준이가 마침 수업을 들은 지 한 달이 됐기에 그간의 과정을 용준이 어머니께 소상히 설명을 했다. 아니 보고를 했다. 용준이 어머니 아버지 모두 교사이신데, 용준이 성이 진 씨였다. 용준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준이 아버지께서 “우리 ‘진’ 선생들이 괜찮은 선생님들이긴 하지” 하셨단다.     


 

선생님 용준이가 거기만 갔다 오면 달라져서요. 오늘도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고 신문도 읽어야 되겠다, 영어는 단어 수를 늘려야겠다, 수학 문제집도 한 권 더 사야겠다, 하면서 계획이 많아요. 아이가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성장해서 시간표도 자기가 짠 줄 알았어요. 선생님이 다 해주신 줄은 몰랐어요.


용준이가 지나가는 말로 선생님이 글쓰기도 가르쳐 주시기로 했다는 소리는 했어도,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해주시는 줄은 몰랐다고.  이런 좋은 선생님이 계신 걸 몰랐다고를 몇 번이고 말을 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되겠다고도 했다.      



책의 저자가 우리 동네에 계신 줄을 몰랐었네요.
우리 아이를 밀착해서 관리해주는 줄을 몰랐네요.
부모보다도 더 신경 써주시는 선생님은 처음이에요.      



인정받고 싶은가?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싶은가?

성능 좋은 스피커를 굳이 만들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소상히 알리고 공유만 했는 데도 이런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하고 있는 일을 자주자주 알리고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한 날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성향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람, 아니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일단 말하는 경향이 있다. 말이 앞서다 보니 시쳇말로 잘난 척할 때가 많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도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이런 외향적인 이들을 내향적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무시한다. 속으로 ‘체’하며 반응하지 않는다. 실력도 별로 없으면서 그렇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날 때가 많다. 대체로 자신을 드러낸 이들이 기회들 더 많이 얻는다. 이들이 실수하면 내향적인 이들에게도 기회가 돌아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향적인 이들이 늘 속 터져하는 일이다.           


-『그렇게 일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85쪽      

매거진의 이전글 곰이니 여우니?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