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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Dec 07.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도 아니고,
아직도 일하세요? 라

할 일이 있기에 즐겁고 멋지게, 쓸쓸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일하세요?    

 

지금까지 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 언제까지 일할 거냐고, 이젠 쉴 때도 되지 않았냐고 정색을 하며 묻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아직도 일하고 있었냐며 대단하다? 고 하면서도 아이구 이젠 쉬셔야지요 한다. 

반면에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왜 일을 하는 거지? 오랫동안 이 일에 몸 담고 있는 이유가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세라의 명예회장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 가』에서 “내면을 키우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내면을 키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엄격한 수행이 뒷받침돼도 어려운 데 ‘일’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힘이 있다고 설파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매우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내면을 단련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놀라운 작용을 한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오랜 시간 자기 일을 올곧게 지켜오면서 마음을 갈고닦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인격의 무게감. 나는 그런 사람, 그런 인격과 마주할 때마다 숙연해진다.”



일에는 인격을 수양하는 기능이 있단다.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로 일을 꼽는다.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일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넘어 경외감까지 표현한다.    

       




“신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일에 전념하라. 그러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반드시 신이 손을 내밀 것이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일하는 가』, 33쪽     



그는 어려움에 처하면 그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드러내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직원들에게 말했다. “신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일에 전념”했냐고 스스로에게는 물론이고 직원들에게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 역시 이와 비슷한 말을 즐겨 쓴다. 공부 다했다고 집에 가겠다며 일어서는 아이들에게  “신을 감동시킬 만큼 공부를 다 한 거야”라고 물어본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다가 곧,


“음 ~ 신이라면 내가 공부 열심히 한 것을 아시겠죠.
저 무지 열공했거든요.
신도 아세요.”
그러고는 내뺀다.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결국에는 인격을 닦는 수행이 되고, 인격을 수양함으로써 인생을 깊고 넓게 성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왜 일하는 가』, 42쪽     



『왜 일하는 가』에서는 줄곧 “내면의 힘을 키우기 위해 일한다”라고 언급한다. 일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수도승도 아니고 일이 인격을 닦게 하고 수양한다는 것이 고차원적이다 싶었다. 가치관이 예사롭지 않고 원대하다는 느낌이 들어 이 책을 번역한 신정길 교수님이랑 통화를 했다. 문체부에서 인문 강사로 같이 활동을 했던 인연이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연락을 드렸다.



나: 큰 인물은 다르네요. 우리처럼 돈벌이를 위해, 생존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 않고, 내면을 단련하고 인격을 수양한다고 하네요.  

신정길 교수님: 이나모리 가즈오도 입사한 지 6년 동안은 우리처럼 그냥 생존을 위해 살았어요. 고등학교만 졸업한 종업원들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기면서 계속 공부하며 사람들을 만나며 바뀐 거예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있었던 거지요.

나: 일을 통해서 바뀐 거네요. 일이 그런 기능을 갖고 있나 봅니다. 일을 통해서 크나큰 성장을 했군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을 모셔 올 수 없으니 역자인 신정길 교수님한테 기업의 강연 의뢰가 많았었단다. 

L 기업은 스스로 불타오르는 자연인 인간에 대해 두 시간 동안 그것만 해달라고 했단다. 그에 비해 H기업은 서로 협력하는 상생의 정신에 초점에 맞춰서 강연해 달라고 했단다.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일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하면서 일을 사랑하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업적은 사소한 데서 시작하고, 그 사소한 것에 애정을 갖는 사람만이 위대해지는 법이다.
-『왜 일하는 가』, 74쪽     



‘사소한 데’서의 시작은 계속 그것에 대해 열의를 갖고 생각할 때 다가왔다. 

파인세라믹 제품이 고온의 화로 안에서 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다 마침내 찾아낸다. 휘어지지 않도록 구울 때 무언가 파인세라믹 판을 위에서 누르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섬광 같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누름돌을 올려 구워 마침내 매끈한 제품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그때 했던 말이다.  

    

‘사소한’ 이라는 단어에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을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중략-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하지만 그 일은 변함이 없이 나타나는 자연현상이기에  ‘그대’를 향한 영원한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생각이 났다.

 ‘사소함’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랑을 영원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교세라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위대한 ‘일’로 자리매김했다.        



왜 일하는가     


그냥 회사원으로 있으면 좋으련만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바로 창업을 했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올 때는 안정적이었는데,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남편도 출근해서는 점심을 거르는 눈치였다. 저녁에 오면 밥 구경을 못한 사람처럼 먹었다. 돈 버는 것을 힘들어했다. 돈 하고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에 대한 나 나름의 견적이 나왔다. 지금도 잘한 일은 남편에 대해 헛꿈을 품지 않고 현실을 직시했다는 점이다. 돈과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돈 벌어오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내가 나서서 일하는 편을 택했다. 



내게 왜 일하느냐고 묻는다면 신혼 때의 궁핍한 시절, 막막한 시간으로 돌아가기 싫어서이다. 

좀 더 있어 보이게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인격 수양을 하기 위해, 또는 내면을 키우기 위해, 영혼을 성숙하게 하기 위해’ 이런 고상한 말을 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은 과거보다 좀 더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더 나아가 가치 있는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돈 걱정 안 하고 공부하고 싶어 일을 한다. 

공부할 때 가장 행복하다. 책을 읽고 신문에 형광펜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다 보면 집중이 되면서 마음이 고요해진다. 마음속에 충만함이 가득 차 평온하기 그지없다. 


어릴 때부터 공부는 좀 하는 편에 속했다. 중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에는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하필 시험 보러 가기 전날 연탄가스에 중독이 됐다. 동치미 국물을 먹고 시험을 보러 갔지만 원하던 고등학교에는 미끄러졌다. 대학 갈 때는 폐결핵에 걸려서 한 달 이상을 아팠다. 역시 시험엔 불발이었다. 

늘 원하던 것을 손에 쥐지 못했다.  자연스레 공부에 대해 한이 많아진 듯하다.



 공부하는 동안은 내게 새로운 기회가 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꽉 차오르면 면 더 나은 계획을 세우며 가슴이 쫘악 펴진다. 목까지 반듯하게 세워진다. 

북한산의 너럭바위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며 명상할 때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게 된다.  

   


공부 특히 영어에 대한 관심은 사랑을 넘어서 흠모 수준에 이른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머리가 천장에 붙어서 교실 끝까지 날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고 했다. 그때는 순진하게 그걸 믿고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고 단어장의 문장을 통으로 암기하곤 했다.

아마 외국어 하나를 무장하면 이동의 자유라든가 생각의 자유를 은유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공부하기를 좋아했지만 결혼 초기에는 학원 다닐 돈이 없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조금씩 돈을 모아서 1년에 한 번 정도 강남역에 있는 영어 학원을 겨우 다닐 수 있었다. 꾸준히 다니고 싶었지만 내게 쓸 돈이 없었다.  몇 천 원씩 모아서 1년에 한 번 영어학원을 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거 맘껏 눈치 보지 않고 공부하고 싶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다. 내가 일을 놓지 않고 하는 이유이다.     


내 직업을 고귀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유익하게 하는 것이 내게 유익함을 주는 것임을 알기에 전력투구를 한다. 아이들 학습 지도뿐만 하니라 시간 관리나 정서적인 측면까지 세심하게 관리한다. 학부모에게 제때제때 수업 과정을 알려서 아이와 학부모와 학원이 동일한 목표지점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일하는 이유에 대한 거창한 명분을 처음부터 갖고 시작하면 좋겠지만 그 명분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경험했던 것처럼 일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우리에게 저절로 몸을 태우는 ‘자연성 인간’이 되라고 요구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맡은 일을 이루고 싶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그 일에 쏟아부어야 한다. 스스로 타지 않으면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없다.”며 스스로 불타오르라고 독려한다.      



지루한 일이라도 끝까지 지속하는 것, 그 힘이야 말로
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영혼이 비겁하지 않도록
매일매일을 진검 승부하듯이 살아내고 있다.

일을 통해 어제보다 성장하고 있음을 믿기에
 오늘 하루도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할 일이 있기에 "즐겁고 멋지게, 쓸쓸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근대 일본의 계몽운동가인 후쿠자와 유키치 7훈 중 첫 번째와 세 번째가 일에 관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멋진 것은 일생을 바쳐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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