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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Dec 10. 2020

오늘 ‘거의’ 100 퍼센트 행복할 뻔했어요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

작년에 대학에 입학한 아이들도 코로나로 학교에 못 간 지 오래다. 비대면 실강으로만 수업을 하고 있는 터라 과제 제출할 것이 있으면 학원에 와서 조언을(말이 조언이지 수업이다) 들으러 온다.    

  

유명 대학의 공대 들어간 친구도 독후감 5편 써서 내는 게 있고, 희곡 한 편 써내야 하는 것도 있다며 책을 빌리러 왔다. 책 빌리기를 빙자한 리포트 쓰는 거 도움을 받으러 온 거였다. 

서평 쓰는 형식을 알려주고 좋은 서평 한 편을 출력해서 서평의 구조에 대해 설명을 했다.

마찬가지로 희곡도 출력해서 하나하나 구성 단계에 따라 설명하고 그래픽 조직자로 정리하게 했다. 희곡 한 편 쓰는 과제는 주제를 정한 다음 소재들을 취합하게 하고 형식에 맞게 그래픽 조직자에 써넣도록 했다. 희곡의 뼈대를 잡고 보니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성격 좋은 은찬이는  

"선생님 저 아예 이 길로 들어설까 봐요. 희곡 작가, 해 볼만할 것 같아요."  하기에 

“너 방금 작가들을 욕보인 거야.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 그만하고
 하던 거나 잘하셔 ” 하며 일축했다.       



얼른 태도 전환을 하고

 “아 참~ 내. 순진한 우리 수니쌤, 예능을 다큐로 알아들으시네요.”하더니
선생님 저 오늘 정말 행복해요. 엄마가 용돈을 5만 원을 더 부치셨어요. 엄마한테 왜 이렇게 많이 부쳤냐니까 원래 그만큼 아니었어라며 되물었다고 했다. 그래서 얼른 아, 예 하고 뚝 끊었단다.      



5만 원이 더 와서 너무너무 행복하다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자기의 행복 수준은 ‘거의’ 100 퍼센트에 가까운 날이라고 했다. 은찬이의 “거의”라는 말에 의식이 머물렀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슈호프도 말하지 않았던가.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고.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점심때는 죽그릇 수를 속여 두 그릇이나 얻어먹었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 나게 벽돌을 쌓아 올렸다. 줄칼 토막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라리 대신 순번을 기다려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도 사 왔다.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렇게 하루,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238~239쪽     




살면서 슈호프처럼 “이렇게 하루,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라는 날이 언제였던가. 

슈호프는 점심에 죽 한 그릇 더 먹은 것,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은 것, 대신 순서를 기다려주고 담배까지 사 온 것, 몸도 거뜬한 것 이런 실존적인 것이 해결되자 거의 행복하다고 선언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솔제니친의 카라간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다.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스탈린에 대한 불온한 언사’를 한 죄로   체포되었다. 이 책에는 그의 수형 생활 8년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다.      

‘현대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일컫는 솔제니친의 이 작품은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에 <슬픔도 힘이 될까> 편에도 소개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처럼 깊게 읽고 싶어 그의 설명을 열심히 따라가며 읽었던 적이 있었다.    

  




주인공인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수용소에서 보낸 삼천육백오십삼일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투쟁뿐이었다. 누구를 밀고하지도 않고 페츄코프처럼 남이 먹고 난 죽그릇을 핥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고 벽돌 쌓기도 성실하게 한다. 품격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존중할 줄도 안다.      

먹을 때는 먹는 것에 집중을 하고, 일할 때는 일에 집중을 하는, 말하자면 슈호프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치를 얻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품격은 삶에 대한 태도로       


슈호프는 남은 모르타르는 바깥에 쏟아버리고 얼른 인원 점검하는 곳으로 가자는 작업 반장의 말도 무시한다. 아무리 하찮은 자재라도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그의 고지식한 성격 때문이었다. 귀머거리 세니카와 둘이서 끝까지 전투적으로 벽돌을 쌓는다.       



모르타르를 찰싸닥! 철써덕! 지그시 누르며 위치를 바로잡는다.
모르타르. 벽돌. 모르타르. 벽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49쪽     



모르타르를 아끼지 말하는 반장의 명령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르타르를 밖에다 털어버리지 않고 반듯하게 벽돌 쌓기를 끝낸다. 

솔제니친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사회주의에 적합한, 체제에 순응하며 아주 성실한 ‘사회주의적 인간’이 바로 슈호프이다.     


 

중1 남학생들이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수업을 했다. 문학은 작가가 살던 시대적 상황을 비껴갈 수 없기에 솔제니친과 당시의 상황을 유튜브를 같이 보며 영상으로 공부를 했다.  

인물들 간의 관계도를 그려보게 한 다음 돌아가며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게 했다. 

생각이 깊은 형민이가 웬일로 발표를 했다. 그것도 아주 길게. 



미국에서 4년 살다 온 형민이는 국어가 제일 어렵다고 울상이다. 형민이 어머니 또한 국어에 대한 걱정이 제일 많다. 요즘은 한국에서만 생활한 아이들도 어휘력이 낮긴 하지만 형민이는 설마 이런 것을 모를까 하는 단어조차도 모르는 게 많았다. 형민이는 느린 데다가 지나치게 꼼꼼해 남들보다 더욱 느려서 못하는 게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데 생각은 깊어서 언제든 형민이가 말할 때까지, 아니 말하도록 기다려 주는 편이다.      



형민이는 페추코프가 제일 품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남의 국그릇에나 눈독을 들이고, 핥아먹다 몰매 맞고 돌아온 페추코프는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수용소에서 모두들 힘들게 일하고 배고픈데 자기만 배고픈 것처럼 참지를 못한다고, 짐승이나 하는 짓을 한다고 너무 싫다고 했다.   

 

 

형민이의 말을 들어보자.

슈호프는 자기 반원인 마르코비치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발견해도 그냥 곁눈질로만 보고 있잖아요. 페추코프는 마르코비치 옆으로 다가가 담배 한 모금만 빨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있고요. 그런데 지식인인 마르코비치는 페추코프가 와서 자꾸 조르니까 자기의 상념이 중단돼서 싫다고 책에 쓰여 있어요. 담배를 피우면서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사람한테 와서 못 살게 굴면 저라도 페추코프의 청을 들어주지 않을 거 같아요. 오히려 가만히 앉아있는 슈호프한테 한 모금 피우라고 주거든요. 슈호프는 페추코프에 비해 품격이 있어요. 아무리 담배를 피고 싶어도 꾹 참고 있으니까 제 발로 복이 굴러들어 오잖아요. 페츄코프 같은 비굴한 인간이 제일 싫어요.   

  


형민이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품격 있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더 좋다고 했다. 

아무리 가혹한 상황에서도 자기의 존엄을 지켜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슈호프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비록 그것이 보상 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이라도 그 일에 몰입하며 즐겁게 일하는 슈호프의 모습에서 슬픈 감동을 느낀다.      

   

  

오늘 ‘거의’ 100 퍼센트 행복할 뻔했다는 은찬이의 말과 슈호프의 눈물겨운 모습이 겹쳐졌다.

유형 생활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헤쳐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은 

슬픔을 뛰어넘어 위대함마저 느끼게 한다.                 




출처: Pixabay



『명문대 합격 글쓰기』에 이어 『극강의 공부 PT』 가 나왔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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