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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an 01. 2021

서울대 예치금이 얼마인 지 아시나요?

169000원밖에 안 하더라구요

이번에 서울대 합격한 성지가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러 온다고 하면서 학원엘 왔다.

고1 수업을 서둘러 끝내고 성지를 데리고 차이니스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합격 선물로 받은 캐시미어 코트와 백을 걸치고 왔는데, 뽀야니 아주 눈이 부셨다. 화장도 안 하던 아이가 립스틱까지 칠하고 오니 탤런트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수능 준비하느라 삐적말라서 꺼칠하던 피부는 온 데 간데없고 반짝반짝 광채가 났다.    


  

우와 성지 멋지다. 대학 가서 관악캠퍼스 남정네 마음을 다 흔들어놓겠는 걸 했더니 살포시 웃기만 했다. 서울대의 등록예치금이 17만 원이 채 안 되는 데 그냥 납입했다고 했다. 다른 대학은 아쉽지만 보내버렸다며 서울대 된 게 꿈만 같다고도 했다. 서울대는 169,000인데 반해 연대, 고대의 예치금은 43~45만 원 정도로 해서 예치금만으로도 부모님께 효도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성지에게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 실리는 독서록을 신경 쓰며 기록하게 했다. 그 습성이 몸에 배서 고등학교에 가서도 1년에 30~40권 정도는 쉽게 읽고 생기부에 실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하는 탐구 프로젝트도 놓치지 않고 참가해 결과물들을 채워나갔다. 백일장에서 대상 수상한 것도 다 채워 넣어 생기부를 아주 다채로우면서도 깊이 있게 관리했다.      



입시컨설팅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지만 성지는 나보다 더 경험이 많은 분을 영입해 수시 컨설팅을 진행했다.

성지의 생기부를 본 입시전문가도 이런 생기부는 수시 정시 모두 노려볼만하다고 했을 정도로 감탄을 했다. 성적으로는 스카이 가기 힘든 상태지만 생기부가 너무 좋아서 도전해 볼만하다고 했다. 성지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계신 자리에서 중1부터 성지 가르친 원장님이 대단하시다며 면전에서 칭찬을 해주어 몸 둘 바를 몰랐다.  


수학만 조금 올리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성지한테 말을 했다.     



성지야! 그간 서울 의대 보낸 이래 몇 년간 서울대를 배출하지 못했어.
이번에 우리 학원에서 서울대 한번 보내 보자.      


밥을 먹으면서 성지는 그때 원장 선생님이 그런 얘기할 때 너무나 터무니없다고 치부를 했단다. 연고대만 돼도 소원이 없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쌤이 욕심을 부려도 과도하게 부리는구나 생각했단다.    

  

그런데 정말 서울대가 됐어요. 정말이지 꿈만 같아요. 내신 성적 2점대를 넘긴 내가 서울대에 합격하다니요. 현실적으로 어렵지요. 그런데 됐잖아요. 자다 일어나도 현실이 아닌 것 같아요. 예치금을 내고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세 번이나 영수증을 확인했어요.



서울대 합격한 것이 꿈만 같아서 예치금 영주증을 세 번이나 확인했단다 ~^^

      



오죽하면 성지의 카톡 대문 사진에

“둥실둥실 기분이 꽁냥꽁냥해. 몽롱하고 붕붕 뜨는 느낌. 그냥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라고 써놨을까.     





끈이 없다고 불평하다는 네게      


성지는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지금의 이 시간이 너무 좋단다. 아무 때나 일어나고, 그것도 느지막하니 일어나서 아무 때나 밥을 먹고 하는 현재가 정말 좋단다. 내게 이런 순간이 오다니요. 생각할수록 너무 행복해요.

밥을 먹으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연신 남발을 했다. 쟈스민 차를 마시면서 쉬지 않고 말을 하는 표정에 행복이 온몸 전체에 퍼져있었다. 성지의 모습을 보며 아무리 과정이 충실해도 결과물이 좋아야 행복도 함께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수시 준비할 때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들끼리 팀을 이뤄서 면접 대비도 일대일 줌으로 벌써 다했단다.

면접 학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성지에게 걔네들한테 물어보지 그랬어했더니

"어림도 없어요. 물어봐도 안 가르쳐줄 거예요. 아마 물어봤어도 모른다고 했을 걸요."

시무룩하게 말을 했다. 우리 엄마는 직장을 다녀서 내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보다도 더 모른다며, 정보에 어둡다고 했다. 저는 소녀가장이나 마찬가지예요라고 했다.      



성지 네가 소녀 가장이면 진짜 소녀 가장들이 분노하겠다.  

궁하면 통하게 되어 있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절대 자기 환경을 불평하지 않지" 하고 일축해버렸다.    

  


합격자 발표가 났는데도 조용한 걸 보니 엄마가 나서서 한 아이들은 결과가 신통치 않은 듯했다.

엄마가 일을 해서, 부모의 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학탐구 프로젝트할 때도 다른 아이들은 아빠가 교수라 주말에 아빠 학교 실험실을 이용해 다 했는데 자기만 못한다고 애를 태웠다.


불평하고 있는 성지에게 "너 부모 찬스 쓰다가 잘못하면 누구처럼 인터넷에 도배를 해 패가망신할 수도 있어."라고 하면서 같이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성지가 하려는 것은 녹조 연구였다. 한여름 땡볕에 잠원 나루부터 뚝섬나루까지 성지 어머니랑 셋이서 녹조를 뜨러 나갔다. 날은 어찌나 덥고 길은 멀던지 숨이 턱턱 막혀왔다. 뚝섬나루 까지 가는 내내 녹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녹조 근처에도 가보질 못했다. 한강이 그렇게 깨끗할 줄은 미처 몰랐다.


결국 녹조 채취에 실패하고 성지 어머니 친정인 시골에 가서 녹조를 떠 왔다. 그런데 연구 자료만큼의 통계치가 나오질 않아서 성지는 이번 연구를 포기해야겠다며 툴툴거렸다. 아빠가 교수였으면 나도 실험을 해볼 텐데 하면서 손을 놓고 있기에 서울에 있는 환경공학과를 검색하게 했다. 강의 계획서에 있는 이메일을 찾았다.


성지는 교수님께 그간의 연구과정을 써서 탐구 프로젝트를 보내며 혹시 실험과정에 막힌 부분이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성지는 일말의 기대도 안 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독려를 했다.


 “성지야 살아보니까 내가 정말로 절박해서 세상에 손을 내밀었을 때 세상은 내 손을 잡아줬어. 너도 한 번 해봐. 연락이 안 오면 할 수 없고, 네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니까 크게 아쉬움은 없을 것 같은 데." 하면서 연락을 취하게 했다.   


   

세상에 웬걸. 유명 사립대학의 교수님께서 메일 보낸 지 채 세 시간도 안 되어 답장을 보내왔다.

 “소장 여성 연구자가 있다는 것에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면서 당신의 논문을 보내주셨다. 고등학생이 하기에는 연구 주제가 너무 크고 연구 결과물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교수님 당신도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서 대규모 프로젝트로 한 거였다는 대답과 함께 여성과학자의 출범을 기대한다는 덕담도 해주셨다.  


    

퇴근하며 컴퓨터를 끄려다 모니터 화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좀전에 교수님게 보냈던 메일의 회신이 와 있었다. 내 컴퓨터를 쓰고 있어서 성지에게 온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일 온 것을 왜 나한테 말을 안 했냐. 이런 귀한 기회를 왜 허투루 넘겨버리냐고 했더니 성지의 반응이 기가 막혔다.


그거 별거 아니에요. 안 된다고 하잖아요. 결과치를 고등학생 수준에서 못한다는 데 무슨 수로 해요 하면서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성지를 다잡고 연구 논문을 마무리했다. 연구 과정을 다 기록하고 이 프로젝트의 한계는 이러이러하다. 대학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성인이 되어 추후 산학연계 프로젝트로 연구를 하겠노라고 마무리를 하게 했다.

    

이 과정을 성지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이번 일은 성지에게 큰 깨달음을 줬을 거라고 하며 엄청 고마워하셨다. 성지는 나중에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인맥이 닿지 않는 것을, 끈이 없는 것을 불평하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웠으리라 굳게 믿는다.     


성지가 다니는 학교는 과학중점학교여서 속칭 과학고나 영재고 떨어진 ‘과떨이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이런 학교에서 성지는 그 아이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다. 그 결과 서울대에서 하는 방학 캠프에 학교 대표로 참가할 수 있었다. 이 참가 과정은 생기부에도 기록할 수 있었다. 교내에서 한 것을 토대로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서 참가한 거라 가능했다.      


수능 보고 합격 발표 나기까지의 단 몇 주 동안 성지가 부쩍 성장한듯 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선생님도 논술 수업을 더 확대해서 해 보라고, 글을 정확하게 읽어내게 하고 잘 쓰게 하는 데 탁월하시니까 글쓰기와 독서 수업을 더 확장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성지가 감사하게도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께 배운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을 했다.  

글을 읽고 꼼꼼하게 키워드 찾고 단락마다 소주제문 찾아서 마인드 맵한 것이 자신의 성공 이유라고 했다.

 매번 지문 읽고 마인드 맵하고 그걸로 글을 쓰고 해서 그런지 고등학교 가서도 잘 적응했단다. 기승전 마인드맵이었다. 읽기 자료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마인드맵으로 하면 수능 때까지 문제없이 잘할 거라면서 마인드맵을 예찬했다. 쌤은 마인드맵으로 논문도 쓰셨으니까 정말 오랫동안 일하실 수 있을 거 같은데요라며 훈훈한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서울대 합격하고 나서 성지에게 좋은 일이 많았다. 지자체 상을 받음은 물론 인강 수업 듣는 메가 스터디에서 교육비 환급을 받게 됐단다. 광고 차원에서 하는 거겠지만 의대와 스카이 합격생들에 한해서 신청하면 수강료의 300%를 돌려준단다. 성지는 거기에 해당이 돼서 당연히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지네 학교에서 발간하는 <00 2021 교지>에 성지의 글을 싣게 됐다. 대학 잘 간 선배의 글을 실는데 성지에게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왔나 보다.  다른 애들은 글쓰기에 두려움이 있으니까 다 거절하나 봐요. 근데 저는 선생님한테 글을 배워서 글 쓰는 거에 크게 부담이 없어요. 이미 백일장 때도 대상을 받아서 작년에도 한번 교지에 제 글을 실었잖아요. 이번에는 학교생활이나 대학 합격하기의 과정 같은 것을 써내라고 하기에 단숨에 써서 보냈어요.     



성지 말을 듣고는 성지야 서울대 예치금과 관련해서 쌤이 글을 쓰고 싶어. 교지에 실을 원고 보낸 것좀 내게 보내 했더니 금방 카톡에 올렸다.


다 읽고는 역쉬 ~ 우리 성지 글을 잘 쓰네 했더니
 
“누구에게 배웠는데요ㅎㅎ”

이런 답문이 왔다.      


"누구한테 배웠는데요." 이런 답문을 받은 나야말로 행복감이 온몸으로 다 물들었다.  



다음은 성지가 교지에 실린 원고를 보내준 것이다. 내용 중 일부를 간략하게 줄였다.


선배가 후배에게, 슬기로운 고교생활을 위한 팁    

1. 수시를 위한 다양한 활동 참여가 곧 자소서의 소재가 된다.

저는 1, 2학년에는 일단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는 거의 모두 빠지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물론 제 진로와 관련성이 너무 떨어지는 활동들은 제외하고요.  

다양한 경험을 하세요. 저는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해온 덕에 자소서를 쓸 때 필요한 활동들을 선정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재구성할 수 있었어요. 사실 1학년 때부터 진로가 명확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러니 더더욱 학교 행사나 대회에 다양하게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수시와 정시에 대한 고민... 소신 있게 대처하자.

특히 현역이라면, 수시를 끝까지 챙겨야 해요. 첫 번째로, 생각보다 현역이 정시로 가기가 힘들어요. 두 번째로, 수시는 원래 내신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전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가장 중요한 것은 명백하지만 성적이 부족하다면 보완할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점수대에서 1등급 이내의 등급 차가 난다면, 그냥 소신대로 하세요. 3학년 1학기가 되면 유지만 해도 점수가 오르거든요.

경시대회에 참여하는 방법도 좋고,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생기부에 기록하세요. 이과지만 글쓰기를 좋아해서 수필대회나 백일장, 논술대회에 주기적으로 참여해 수상도 여러 번 했어요. 그 결과 자소서 쓸 때 1번 문항에서 융합형 인재라는 걸 어필할 수 있었어요.  

3. 선생님들과 소통하고, 학교의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자.

과목별 세특은 전적으로 담당 선생님 재량입니다. 평소에 발표나 질문도 많이 하고, 선생님과 대화도 많이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세특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겠죠? 주요 과목 같은 경우 따로 담당 선생님께 찾아가서라도 세특에 관련 내용을 올려달라고 부탁드렸으면 좋겠어요.

또, 자소서 시즌이 되면 학교차원에서 자소서 특강과 첨삭 프로그램을 하는데 저는 이것을 강력 추천해요. 다양한 활동으로 어느 정도 풍부한 소재가 준비되어있다면, 나를 잘 아시고 학교 프로그램의 특성들도 잘 파악해 적절한 조언을 해주실 수 있는 학교 선생님들을 통해 첨삭을 받는 게 더 유리한 측면이 있어요.

더해서, 면접을 준비하게 되면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의면접을 꼭 하시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가장 결정적으로, 핵심적인 도움을 준 건 학교에서 진행한 모의 면접 프로그램이었어요. 물론 교과서를 거의 달달 외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셔야 되고요. 특히 과학 면접은 어떤 개념이 제시문에서 언급되면 그 개념의 교과서의 '상의 정의'를 먼저 명시하고 자세한 답변을 시작하면 답안의 차별화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다만, 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분명히 존재하기에 필요하면 학원에 다녀보는 것도 괜찮아요. 하지만 학교 모의 면접에 참여하면서 혼자 준비하는 걸 추천해요.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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