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는 것을 더 이상 꿈으로만 놔두지 마셔요
2020년 12월 30일, 공대생의 심야 서재(이하 공심재)에서 송년회가 진행됐다.
송년 모임에서 2021년 올해의 버킷 리스트가 브런치 작가 되는 거라는 학인이 있었다. 심리학 독서 모임에서도 글 잘 쓰는 분이 브런치에 떨어져서 모임의 학우들이 분노했던 경험이 있다. 브런치 팀에서 작품을 보는 눈이 없다느니, 이런 작가를 떨어뜨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브런치를 성토하고 애통해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은 여타의 문학 공모전하고는 차이가 있다.
문학 공모전의 경우, 특히 등단을 하기 위한 경우에는 참신성과 잠재력을 많이 본다. 그에 비해 브런치는 자기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콘텐츠가 관건이다. 서평이나 여행과 관련된 글을 써서는 브런치 작가로서의 입성이 곤란하다. 브런치 작가가 돼서는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되지만 작가가 되기 전에는 브런치팀의 의도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시험을 볼 때 출제자의 의도를 잘 알아야 시험을 잘 치르는 것처럼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자신만의 콘텐츠가 아무리 좋더라도 결국을 글로 잘 담아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가독성이 좋은 재미와 의미를 갖춘 글이 브런치팀의 간택을 받는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것은 먹어봤을 때 아는 일이다. 수저를 들고 먹도록 하게 하는 것이 먼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처럼 글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보를 전달하겠다고 장황하게 설명만 하면 읽는 이는 금방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설명하는 글과 묘사하는 글은 질감부터 차이가 있다. 묘사하는 글은 독자에게 흡인력을 가져다준다.
다음은 성인들 글쓰기에서 자주 활용하는 김보통 작가의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에 실린 「신대방역의 풍경」 중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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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다. 세상은 ‘할 수 없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텔레비전 광고로 KFC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보긴 했지만 실제로 갈 수 있는 곳이란 건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의류회사 하청 일을 하던 이웃에게 받은 옷을 입느라 메이커 옷이란 걸 살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제빵 체인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반품되는 방을 회수하는 트럭 운전수 아저씨가 때때로 주던 빵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해동해 먹으면서도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왜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을까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늘 ‘가난은 불행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했고, 방앗간을 하던 부모님이 쌀 한 번 빻고 받는 돈이 당시 돈으로 몇 백 원이라는 걸 유치원 다닐 적부터 알고 있었다.
가난하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유통 기한이 지난 빵을 얻어 냉동실에 얼렸다 먹으면서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문장에서 독자는 유추한다. 글쓴이가 정말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구나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된다. ‘할 수 없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서 저자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었고 갖지 못한 것도 많았겠구나 추측하게 된다.
그럴 상황이니 당연히 예술고 진학도 안 될 말이었다. 정확히 ‘안 된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다. 아버지에게 “담임선생님이 본격적으로 예고 입시 준비를 해보는 게 어떻냐는 데요 ”라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별 황당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이 “하하하, 개소리하지 마 새갸.”라고 말하고는 문을 벌컥 열고 가게로 일을 하러 갔다. 큰 소리로 아버지가 땅바닥에 가래를 뱉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아마도 ‘안 된다’는 것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어찌 됐든, 나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신대방역을 종종 찾아 노을이 지고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낙엽이 날리고 별이 빛나고 달이 뜨고 해가 뜨고 다시 또 노을이 지는 풍경 사이로 지하철이 구로디지털단지 역을 오가는 모습을 내내 혼자 지켜보곤 했다.
이듬해부턴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그 풍경을 본 기억은 없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신대방역의 풍경」 중에서
우리 형편에 무슨 예고야? 절대 안 돼? 이런 말도 아니고 별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한 아버지의 표정이 눈에 보이듯 선하게 그려진다. "하하가, 개소리하지 마 새갸." 보다도 큰 소리로 땅바닥에 가래를 뱉는 그 소리를 듣고 있을 중3 어린 소년의 모습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오지 않는가.
그림을 그려서 받은 상장을 걸데가 없어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둘 정도였지만 결국 가난 때문에 예고는 물건너갔다. 가난해서 슬퍼, 가난해서 고통스럽게 살았어가 아니라 상황만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독자는 신대방역의 풍경이 글쓴이와 같이 쓸쓸하게 기억된다.
글은 설명하는 글로도 충분히 쓸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 위의 글처럼 묘사하는 글로, 은유를 담은 글로 자신의 글에 품격을 높일 수 있다. 묘사하는 글로 이야기의 서사를 풀어낸 글을 읽고 나면 읽은 뒤에도 긴 여운이 남는다.
글을 처음 써보시나요
글의 품격을 높이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조곤조곤 시 쓰기>로 오셔요
오랜 기간 학생들 인문 고전을 지도하면서 남의 글만 고쳐주며 생활하는 내게 늘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가르치기 위해 매주 좋은 책을 읽는 기쁨도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감수해야 되는 부분이라 생각하며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있던 차였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해가며 허기를 눌러 놓고 지내던 어느 날, 최하림 시인의 인터뷰를 보여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예술 정신은 곧 시정신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이 시로부터 시작됐다는 것, 시는 기도라는 것, 산문보다 우위에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까마득히 잊었던, 감춰두었던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랐다. ‘그래, 동시를 잘 써서 집안에서는 “꼬마 시인”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지. 간간이 상도 타서 환호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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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12년 겨울호, 당선 소감문 중에서
시는 잘 알다시피 정제되고 함축된 언어로 리듬감을 갖춘 글이다. 시도 서사성을 갖춰서 쓴다. 시를 쓰면 에세이를 쓰거나 소설 창작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가 나만의 콘텐츠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를 배우면 정보만 있는, 주장만 있는 말라빠진 식빵 같은 글이 아니라 갓 구워낸 촉촉한 빵 같은 글을 써낼 수 있다.
시를 써야 하는,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으시다면 시부터 쓰셔요.
1월 13일 수요일부터 조곤조곤 시 쓰기 과정이 개강합니다.
https://forms.gle/zqKFDPvGJFq3PYkV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