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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Feb 12. 2021

장애인 이동권? 처음 들어봐요

나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헛되지 않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오늘 참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호흡이 긴 글 쓰는 훈련을 하려고 수업 준비를 했다. 아이들에게 읽기 자료를 나눠줬다. 각각의 제시문에 나타난 사회적 차별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이것을 토대로 차별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에 대해 써보라고 했다. 


제시문을 만들 때는 문학 자료와 시사 자료, 영화 관련 자료나 분야 별 칼럼 등 세 개의 지문으로 제시문을 엮어서 준다.  지난주에 정인이 법과 관련된 아동 학대에 이어 이번 주에는 차별로 인한 불평등에 관해 글을 쓰려고 했다. 


신분으로 인한 차별과 장애인 차별, 외국인 노동자 자녀의 교육과 관련된 차별을 엮어서 만든 자료를 읽고 쓰는 거였다.  


첫 번째 제시문은 

서자 출신 이덕무의 『책만 보는 바보』에서 글을 발췌했다. 


굶주림.
나에게는 밥을 먹는 것보다 굶주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내 몸에는 내 임금님과 성이 같은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의 집안, 반쪽의 핏줄이다. 본가(本家) 적자(嫡子: 본부인이 낳은 아들)가 아니니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니 살림을 꾸려 갈 녹봉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시장에 나가 좌판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온전한 양반들만의 세계에 끼워 주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반쪽의 핏줄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비웃으며 허락하지 않았다. 

글을 읽어 깨우친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땀 흘려 일하지도 못하고, 그저 별도리 없이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생활이었다. 음식을 담아 본 지 오래인 그릇은 이가 빠지고, 소반을 저절로 닳아 누추하기 짝이 없었다. 그 가운데 나는 애써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중략) 

-안소영,『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는 굶주릴 때도, 추위에 떨 때도, 근심 걱정이 있을 때도, 기침병이 있을 때도 애써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읽게 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애써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를 강조했다.  


두 번째 지문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된 시사 자료인데, 이것을 읽고 영상자료도 함께 제시했다.  

활발한 토론을 위해 EBS 지식 채널 e의  <어느 퇴근길>과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동영상을 보게 했다. 


장애인의 지하철 추락사고가 있은 뒤 장애인 분들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서울 시에 가서 따지라는 시민의 격앙된 모습이 있었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이어서 장애인 한 분의 인터뷰가 있었다. 우리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20년 동안 애써서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졌다. 아기 엄마랑 노인분들이 지금은 잘 이용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아직도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하여 이분들이 투쟁한 지가 20여 년이 넘는다. 그런데도 중학생 아이들은 처음 보는 거라며,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고 했다. 아주 생경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내가 더 놀랐다. 


선생님 저거 진짜예요? 헐 ~~ 설마 진짜라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 장애인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있어봤어. 

중학생이라면 신문도 열심히 보면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야지. 


저 사람들이 싸운 지가 20년이 됐다구요. 근데 왜 20년 동안 안 바뀌었는데요?

평소 논리적인 아이인 민경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질문을 했다. 질문이 아니라 내게 따지듯이 말했다. 


하나도 안 바뀐 거는 아니야. 좋아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미약해서 그러지.  휠체어를 타고 올라탈 수 있도록 저상버스가 만들어지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생긴 것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야. 그래서 어느 시인도 말했어.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난다고. 이 작은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 저분들이 쟁취해서 얻은 거야.


김수영의 시를 읊어줬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이번 수업 시간은 아이들에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들어본 적도 없다던 '장애인 이동권'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의외로 아이들은 담백했다.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것을 마땅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했다. 장애인 분들이 지하철을 점거하고 시위를 해도 우리는 참아야 될 것 같다고도 했다.


토론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의 생각을 말해봐. 해결방안도 좋고, 만일 그게 어려우면 그냥 자기의 느낌만 말해도 돼! 라고 독려했다. 

말수가 적은 동훈이가 머뭇머뭇하더니 말을 했다. 


우리는 잠깐 불편할 뿐이지만 저분들은 계속 불편하게 살아왔잖아요.
 출근길에 지하철 점거했다고 불평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듯 아이들의 생각이 커지고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지식과 공감의 폭도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비록 아이들에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지언정

나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헛되지 않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새해 아침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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