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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09. 2021

『무지한 스승』처럼 아날로그식 수업으로

상해 국제 중학교 다니는 지연이와 줌으로 수업을 했다.

지연이는 우리 학원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아빠가 상해로 발령을 받아서 3월 말 경에 온 가족이 상해로 갔다.


가기 전에 지연이 어머니께서 학원에 오셨다. 중국에는 마음에 드는 선생님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특히 국어 선생님은 더더욱 만나기가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한국의 문제집이 엄청 비싸다고 해서 지연이 수업에 필요한 교재들을 안내했다.

     

독서는 슬로우 리딩으로 정독하면서 나갈 거라 『코스모스』랑 『이기적 유전자』를 전자책으로 구하도록 했다. 종이책으로 밑줄 그어가며 했으면 좋겠지만 그냥 전자책으로 안내를 했다.

『코스모스』를 강력 추천했다.      



『코스모스』는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와 같은 대학에 석좌교수로 있는 동생 장하석 교수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읽었던 책이라고 한다. 한 번 읽기도 어려워서 성인들도 『코스모스』 함께 읽기 모임을 만들 정도다. 이런 책을 그것도 중학교 때 장하석 교수는 자그마치 원서로 11독(讀), 번역본으로 12독(讀)이나 했단다. 일찍이 조용헌 살롱에서 읽은 적이 있기에 올해 서울대 입학한 성지도 중3 때 『코스모스』를 읽게 했다. 칼 세이건의 영상을 보고 노트에 정리를 하게 했다. 번역본을  읽고 원서 강독도 하게 했다. 13회에 나눠서 독서 노트에 정리하면서 독후감도 쓰도록 했다.     

  

이 얘기를 하니까 다른 국어 교사들이 난색을 표했다. 강남이니까 그게 가능한 거라며 당신들이 가르치는 지역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 소개된 하급 외국인 강사인 죠제프 자코토의 성공 사례를 봤기 때문이다.  

    

죠제프 자코토는 프랑스인이지만 네덜란드의 루뱅 대학에서 불문학 담당했다. 그는 네덜란드어를 할 줄 몰랐고 학생들 또한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몰랐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학생들과 자신을 연결해줄 공통점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죠제프  자코토는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으로 수업 교재를 삼았다. 네덜란드·프랑스어 대역본이 실려 있는 책이었다.      


죠제프 자코토는 “무지한 스승”임을 자처하며 학생들에게 설명을 전혀 해주지 않았다. 다만 학생들에게 책에 나오는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사용해 프랑스어 단어들을 끊임없이 복습하고 되새김질하게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로 작문하도록 요구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학생들은 빠른 시간 안에 혼자서 단어들을 조립하며 작가 수준의 글을 써냈다. 철자법이나  동사 변화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내 공부해서 작가처럼 글을  써낸 것이다.      


중2 지연이에게 수업 계획을 안내했다. 『코스모스』는 네 번에 나눠서 하되 첫 주는 1~4장, 둘째 주는 5~7장, 셋째 주는 8~10장, 넷째 주는 11~13장으로 나눴다.  

    

먼저 칼 세이건의 영상을 1~4강 까지 시청하며 노트에 정리한다. 영상을 시청한 후에 책을 읽으며 각 장마다 10문제씩 내고 답을 단다. 각 장마다 인상 깊은 단락을 필사하고 느낀 점을 쓴다. 발제하듯이 정리해 와서 수업을 지연이가 이끌어 갈 것이라고 선포를 했다.      

매주 읽고 났으면 반드시 결과물로 쓰도록 할 것이라고 중대 선언을 했다.      


오늘 수업을 하면서 10분 시간을 주고 <마음이 답답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글을 쓰게 했다.

무지한 스승처럼 가능하면 학생이 참여하고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글을 쓰기 전에 마법의 EOB법칙을 설명했다. EOB 법칙은 주로 스피치 할 때 쓰는 방법인데 글쓰기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글쓰기에 활용하기 너무 좋은 방식이다. 청중이나 독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지연이가 쓴 글이다.  

    

내가 마음이 답답하다고 느낄 때는 별로 없다고 느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있긴 있다. 첫 번째 로는, 학교에 갔을 때 좋아하지 않는 과목들이 하루 종일 들어있을 때 그날은 정말 쉬는 시간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가 장마같이 오는데 우산을 안 가지고 왔을 때 엄청 답답하다. 비에 맞으면 매우 찝찝해서 그냥 뛰어갈 수도 없다. 그 날은 비가 금방 그치겠다고 생각해서 30분 동안 기다렸지만 결국 그치지 않았고 분실물함에서 하나를 꺼내와서 쓰고 갔다.

또 사람과 얘기할 때 의견이 안 맞거나 오해가 생겼을 때는 정말 너무 답답하다. 예를 들어, 식탁에 있던 빵을 내가 먹지 않았는데 언니가 내가 먹었다고 오해를 했을 때는 정말 억울하고 답답했었다. 이와 같이 답답한 일들은 사소한 것들이 많다    389자   


지연이의 글에 사례를 구체적으로 넣고 살을 조금 붙여서 첨삭해서 보냈다.   

 


답답한 일은 언제였나  (846자)     

내가 마음이 답답하다고 느낄 때는 별로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있긴 있다.

 첫 번째로, 학교에 갔을 때 좋아하지 않는 과목들이 하루 종일 들어있을 때 그때는 아주 답답하게 느껴진다. 너무 지루해 그날은 정말이지 쉬는 시간만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다. “도대체 이 수업은 언제 끝나는 거야”, “ 저 선생님은 왜 이렇게 안 끝내주고 말이 많은 거야”라고 걸려 있는 시계만 자꾸 보게 된다. 그러다가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른 눈을 다른 데로 돌린다. 수업도 지루한 데다가 길기까지 하다. 마음이 답답해 얼른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비가 장마같이 오는데 우산을 안 가지고 왔을 때 그때도 엄청 당황스럽다 못해 답답함을 느낀다. 비에 맞으면 찝찝해서 그냥 뛰어갈 수도 없다. 우산 하나 챙기지 못한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화까지 난다


지난번 비가 왔을 때에도 그 날은 비가 금방 그칠 거라고 생각해서 30분 동안 기다렸지만 결국 그치지 않았다. 할 수없이 분실물함에서 하나를 꺼내와서 쓰고 갔다. 집에 굴러다니는 게 우산인데, 좋은 우산 놔두고 허름한 우산 쓰려니 짜증이 확 났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하면서도 매번 이러니까 나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또 사람과 얘기할 때 의견이 안 맞거나 오해가 생겼을 때는 너무 답답하다.  며칠 전 식탁에 있던 빵을 내가 먹지 않았는데 언니는 내가 먹었다고 오해를 했다.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믿지를 않았다. 동생을 거짓말쟁이로 아나 싶어서 억울하고 답답했다.     


 

내게 답답한 상황은 시도 때도 없이 자주 온다. 그 답답한 일들이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 많아서 더욱 마음이 쓰인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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