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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13. 2021

쟤 주면 안 돼요

면전에다 대놓고 쟤 주면 안 된다는 아이들

회광반조 回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는 뜻인데,

촛불이 사그라지기 전에 한 번 더 크게 불꽃을 일으키는 것이 한 예이다.


요즘의 내 상황을 회광반조와 같다고나 할까.

자영업 하는 사람들 모두 너 나할 것 없이 힘이 들었지만 작년 한 해 코로나로 빙하기 속을 견뎌냈다. 다행히 책 읽고 글 쓰는 취미가 있어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겨낸다기보다는 버틴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평온했고 글을 쓰면 출렁대지 않고 고요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틈만 나면 책을 주문해서 읽었다. 책 읽고 쓰느라 근근이 하루하루를 지탱할 수 있었는데 고정비로 나가는 임대료와 강사료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임대료만이라도 자유롭고 싶어서 지금 있는 곳을 철수하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계획을 다 세워 났다.    

  

그런데 출간된 책이 나오자마자 반응이 좋아서 여기저기서 수업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지방에서 해외에서 블로그에도 연락처를 남기고 메일로도 연락이 왔다. 심지어 학원 전화번호까지 찾아내서 전화를 한 구독자도 있었다. 게다가 주변의 학원 원장님들께서 소개들을 해줘서 계속 학생들이 오고 있는 상태이다. 알지도 못하는 학원에서 여기 가보라고 했다며 찾아온 분들도 있었다. 촛불이 꺼지기 전에 한번 활활 타오른다고 하는데 정말 지금의 내 상황이 딱  그렇다.        


아이들이 친구들을 데려오면 피자 파티를 한다.

현민이 어머니께서 학부모 두 분이랑 오셨다. 현재 다른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우리 학원으로 옮기고 싶다고 해서 오셨단다. 그전에 아이들이 민재를 꼬시고 있다는 말을 하긴 했었다. 아이들 말이어서 흘려듣고 말았는데 민재 어머니께서 오신 거였다. 민재는 이번 역사 내신 수업을 듣고 있다. 선생님이 재미있어서 국어 학원을 진순희로 옮기고 싶다고 했단다. 민재 어머니께서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에 민재가 불만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민재가 옮기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 학원에 민재 친구들이 많아서이다.

   

아무튼 민재가 등록하고 처음 국어 수업을 듣는 날이었는데 현민이가 계속 피자 타령을 했다.

계속 피자, 피자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 민재 새로 왔는데 피자 안 먹어요?

    

민재가 제 발로 들어왔구먼 무슨 피자야?

    

제가 민재 오라고 계속 꼬드긴 거예요.

     

엄마들끼리 찾아오신 거야. 너네들이 전도한 게 아니고!   

  

민재가 억울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엄마한테 말해서 얘네 엄마랑 다른 엄마가 간 거예욧!     


듣고 있던 민재가 느릿느릿 거들었다.


진짠데. 현민이가 같이 다니자고 해서 온 건데.  

   

종결형 어미는 어디다가 팔아먹고 말을 똑 잘라서 해!     


저기요. 현민이가 다니자고 해서 온 거란 말이에욧     




거두절미하고 오늘 문법 나가야 해.
중2 때 문법 제대로 해놓으면 고등학교 가서 수월해.
아니지. 수능까지 고속도로로 달릴 수 있어.



 집중해야 돼 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물론 진도 나가고 암기하는 동안 피자를 시켰다. 암기하고 바로 시험을 봐야지만 자기 것으로 체화될 수 있어서 시험지를 얼른 나눠줬다. 아이들이 거의 다 풀었을 때쯤 피자가 도착했다. 기대하지 않다가 피자를 봐서 그런지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다 풀고 채점이 끝나서 피자를 먹으려고 하는데 뒷 타임의 찬웅이가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왔다.       

만면에 웃음을 띠며 찬웅이가 코를 벌름거렸다. 어깨를 으쓱하며 먹을 복이 많다고 앉는 순간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쟤 주면 안 돼요.      


깜짝 놀라서 아니 이럴 수가 있어? 어쩜 사람을 면전에다 두고 그런 말을 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쟤 주면 우리 먹을 게 적어진단 말이에욧. 

다섯 명의 아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아니 대왕 피자를 시켰잖아. 열두 쪽이나 되는데 너네가 걱정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우리 같으면 빈정이 상해서 안 먹고 화를 발칵 낼 텐데 찬웅이 반응이 더 놀라웠다.

    

“억울하면 너희들도 나처럼 먹을 복이 있어봐!”     


노여움도 타지 않고 피자를 쓰윽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거르지 않고 말들을 서로 주고받는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얼른 상황을 수습하려고 “얘들아, 찬웅이 같은 경우를 관용어를 뭐라고 하지?”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발이 길다"라고 하는 거야. 지난 시간에 배웠지? 관용표현에는 뭐가 있지?


얌전한 동건이가 대답했다. 속담, 격언, 관용어요.   

   

그래. 동건이 잘 맞췄어.

 

지금 찬웅이가 피자 먹으려고 다 펼쳐놓았을 때 딱 왔잖아. 이럴 때 쓰는 관용어가 바로 ‘발이 길다’ 야.

    

듣고 있던 찬웅이가 말을 했다.     


그렇죠. 전 클라스가 다르죠. 발이 길든 짤든 한 마디로 먹을 복이 있다는 거죠.     


쟤 주면 안 된다고 난리 치는 아이나 그걸 스스럼없이 대하는 아이나 아이들이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똑같았다. 


나만 이 노릇을 어떻게 수습하나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나는 듯이 즐겁게 피자를 먹고 있었다.

 다른 팀의 아이가 와서 먹으면 안 된다고 정색을 할 때완 다르게 화제가 게임으로 넘어가자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이번 국어시험에 다섯 명 중에 세 명 백점 나오면 쌤이 대왕 피자 두 판 쏠 거야. 두 판을.

시험 끝났으니까 그 주에는 영화 보면서 피자 먹을 거야. 대신 문학 작품을 영화로 만든 문예 영화 볼 거야. 보고 나서 바로 독서록 쓸 거야.


듣고 있던 아이들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볼 거라고 했다.      

영화는 쌤이 고를 거야 하면서 사람 앞에 놔두고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라고 다시 한번 말을 했다.  

아이들이 다음부턴 주의할 게요는 아니어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다.

   

왜요? 다른 반 애가 와서 먹으면 우리 먹을 게 적어지잖아요.    

  

아이구 참 내! 부잣집 아들들이 왜 그래. 그리고 많이 먹어서 뭐해.

쌤처럼 배 밖에 더 나오겠어. 너네는 이렇게 배불뚝이 되는 게 좋냐?     


갑자기 아이들이 책상을 치면서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한 녀석은 일어서더니 돌아다니며 웃었다.  

     

내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날이었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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