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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14. 2021

제가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요

두 주만 있으면 중간고사다.  

시험 범위를 두 주를 남겨놓고 진도를 다 뺐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문법도 다 끝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암기시키고 바로 테스트를 했다. 시험 보고 나면 교과서를 다시 읽으며 형광펜으로 시험에 나왔던 부분을 칠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나도 선생님이 되어”서 출제 유형을 알게 되어 시험이 어떻게 나올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시험 보기 전에 교과서를 달달달 암기시켜서 몇 쪽에 뭐가 나왔는지 기억할 정도로 시킨다. 문법의 예문도 통으로 암기시키고 학교 프린트도 외운 다음에 백지 시험을 본다. 암기한 거 안 보고 다 써낼 정도로 몇 번이고 반복한다.  

     

유진이는 수업 태도도 좋고 노트 정리를 아주 깔끔하니 체계적으로 잘했다.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전 주에 배운 것을 20분 복습하게 하고 바로 테스트를 하는데, 문제 풀어보면 틀리는 게 거의 없는 친구다. 그런데 느닷없이 말을 내뱉었다.  

   

제가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요?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제가 시험을 잘 볼 수 있겠냐구요?   

  

정색을 하면서


니가 잘 못 보면 누가 잘 보겠니?     

왜, 비가 오니까 멘탈이 작동을 안 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동안 네가 열심히 한 게 다 헛 거였다고. 가르친 내가 뻘쭘하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시험을 잘 못 봐서요.  

   

아니 이 사람아! 무슨 시험을 잘 못 본다고 해. 언제 시험을 봐 봤다고. 중1은 시험이 없었잖아. 그런 패배 의식에 젖어 있으면 안 되지. 오지도 않은 걸 왜 미리 사서 걱정하는데.  

   

아니요. 제가 시험에 실패하고서 많이 아팠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유진이 어머니께서 지나가는 말로 유진이에 관해 흘린 것이 기억이 났다.

예중을 준비했는데 예상과 달리 결과가 안 좋았다고 했다.

유진이 어머니께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남의 3대 학원이 연합해 재원생들끼리 경합을 하는 데 유진이는 300명 중에서 1등을 했다. 1등한 것이 신경이 쓰였던지 그 뒤로 슬럼프가 왔다. 매달 테스트를 하는 데 유진이가 심리적인 부감담 때문에 실기와 학과목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을 걷게 되니 선생님들이 무슨 일이냐고 처음엔 걱정하다가 나중에는 질책도 하고 유진이 스스로 못 견뎌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평소보다 실기도 부진했는데 학과목 시험도 아이들보다 하나 더 틀렸다. 문제 한 개로 당락이 결정되는 거라 예상을 뒤엎고 탈락을 했다.     

 

그 뒤로 많이 아팠는데 코로나로 작년 한 해 학교를 거의 안 가다시피 하니까 상처가 드러나지를 않았다. 억지로 봉합된 내면의 상흔이 시험이 임박하자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지난주까지도 괜찮았는데 오늘 불안한 마음이 쓰나미처럼 닥쳤다나보다.


수업이 끝날 무렵 유진이가 걱정을 쏟아내 붙잡아서 말을 하고 싶었지만 유진이 뒤로 바로 고3 수업이 있었다. 끝나기 전에 유진이가 한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제가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요?” ~~


메아리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유진이 자체가 신중한 애라 자세한 말을 하지 않고 말을 아꼈다. 그 말이 계속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마음담론에서 읽었던 『감정은 습관이다』가 떠올랐다. 유진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유진이한테 문자를 보냈다.   

 

유진! 쌤이 10시에 수업이 끝나는 데 잠깐 볼 수 있을까?

네게 줄 게 있어.    

 



지금 상황과 맞지 않는 잘못된 생각과 감정의 습관이 마음속에 많습니다. 이제라도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버린 과거의 생각들을 검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상황, 현재의 나에게도 적절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내 머릿속에 고착화된 생각들도 업데이트시켜 줘야 하는 것입니다. 버릴 건 버리고 새로운 데이터를 채워서 현재 상황에 더 맞도록 해야 합니다.   

- 『감정은 습관이다』, 183~184쪽     



저자는 괴롭히는 감정이 나타날 때마다 그 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감정 수첩에 곧바로 적으라고 조언한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수첩에 적어 놓은 생각을 살펴본다. 이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며 합리적이고 적절한 생각을 적어놓는다. 합리적으로 수정된 생각을 새롭게 습관화한다는 점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보였다.    

 

 『감정은 습관이다』 중 유진이에게 필요한 부분을 같이 읽고 똑같이 해보게 했다.

책에 설명된 <열등감이 습관이 된 사람의 감정 수첩 예시>에 따라 감정 수첩을 만들어서 민정이에게 감정 일기를 써보게 했다.

     

출처: 『감정은 습관이다』중 185쪽


작은 공책을 마련해서 <감정 수첩>이라고 써서 유진이에게 건넸다.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는 거고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 집중하게 했다.


‘현재의 생각’을 쓰는 감정 수첩 칸에
되도록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쓰게 했다
    

유진이 니가 어려우면 다른 애들은 손도 못 된다고 생각하면 돼.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는데 못 볼 리가 없잖아. 그리고 내가 너를 못 보게 놔두지를 않아.

넘치도록 암기시키고 문제 풀게 할 거야. 하늘이 감동하도록 공부시킬 거 거든.

유진아 너는 지금 시험 봐도 100점 맞을 수 있어.     

나랑 해서 실패한 사람이 없어. 현역 시인한테 시 내신 수업을 듣는데 네가 못 볼 리가 없지.

최고의 코치가 붙었는데 시험에 실패할 리가 있나.    

  

과장될 정도로 유진이이게 단언을 했다.

『소셜 애니멀』인가 『필링 굿』인가 『인간 본성의 법칙』인가? 아무튼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환자들은 신중해서 확언을 못하는 의사보다는 단호하게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의사를 신뢰했다는 글을 읽었다.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확신에 차서 말을 하는 데 이 글을 읽은 후에는 아주 대차게 말한다. 교사가 확언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흔들리기에 중심을 잡고 안내를 한다.  

    

올해 서울대 들어간 성지도 작년 9월 모의고사 끝나고 많이 불안해했다. 생각보다 모의고사 점수가 안 나와서 성지도 힘들어했고 불안한 성지를 보는 성지 어머니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말했다. 성지랑 성지 어머니께 나랑 해서 실패한 사람이 없었다고 단언했다. 광고 한 번 하지 않아도 몇십 년 동안 학원이 유지되는 것 보면 알지 않느냐고. 잘 될 거라고. 진짜로 잘 될 거라고 했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그런지 정말로 잘 됐다.  

    

중학교 내신은 문학, 비문학, 문법 이렇게 짝을 이뤄서 시험 출제가 된다. 문학 파트에 시 세 편이랑 소설이 들어가 있어서 시는 암기를 시키고 마인드 맵으로 다 정리도 이미 끝낸 상태였다. 200문제 가까이 되는 데서 2개 정도 틀렸는데 유진이가 계속 불안해 하기에 감정 수첩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거였다.  


"내가 복순이닷! 복을 부르는 순희야.

유진아 네가 너를 유익하게 할 거야.

너를 이롭게 하는 일이 곧 나를 유익하게 하는 길이 거든.

책임지고 시험을 잘 보게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 라면서 다독였다.      

 



아래의 글은 유진이가 쓴 감정 수첩이다.  

     

4/12 감정 수첩     

사건: 시험을 잘 보지 못할까 봐 두렵다

당시 느낀 감정: 예민함, 자책감, 공포감

당시 생각: 또다시 실수하면 안 되는 데 또 실수할 것 같다

현재 생각(합리적인 생각): 평소 암기 실력이 부족하고 더 꼼꼼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의 자세: 오답노트(영어, 수학, 과학, 역사, 국어) 꼼꼼히 하고 공부시간 늘리기, 잘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가지기     


유진이가 정신이 없긴 한가 보다. 오늘 감정 수첩 공책을 줬는데 어제 날짜를 쓰고 갔다.

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이렇게 쓰고 나면 한결 마음이 평온해질 거라고, 

이 방법은 100% 효과가 있으니 자주자주 활용하라고 하고 보냈다.

     

어린 친구가 걱정하는 모습이 못내 신경이 쓰였는데 유진이가 돌아갈 때는 편안해져서 갔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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