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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08. 2021

“인생은B와 D사이에 C인 선택이 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선택이란 가능성을 받아들이다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유명한 말로 "B와 D사이에 C"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다”란 뜻으로 “Life is C between B and D"라고 했다. 태어남 (Birth)과 죽음 (Death ) 사이에 선택(Choice)이 있음을 의미한다.     

 


선택은 늘 무엇인가를 '처음'할 때처럼 어렵다.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일 때는 더더욱 어렵다.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일 때 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 상처는 크든 작든  내상을 입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상처가 일상의 것을 넘어 끝 간데 까지의 공포와 두려움의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는 극한의 트라우마와 상처에서 벗어나 마음의 그림자를 치유한 경험을 나누고 있다 심리학자로서의 다양한 임상 사례를 제시해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죽지 않은 안네 프랑크"라고 소개되는 에디트 에바 에거 박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열여섯 되던 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굶주림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녀의 삶을 진솔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에거는 부모를 죽인 나치 장교 멩겔레 앞에서 생존을 위해 춤을 추며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경험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고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했는 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삶은 참혹했지만 수용소에서 해방된 뒤 오히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라는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과거로부터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던, 회복하지 못한 마음에 대해 날 것 그대로 전하고 있어 감동이 더욱 크다.       

  


마음의 지옥 속을 거닐고 있던 에거에게 그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대학에 들어간 그곳에서 그녀의 과거를 알아본 청년이 있었다. “당신은 거기에 있었죠, 그렇지 않나요” 하면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건네준다. 때론 어떤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기도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서 그녀 자신과 마주하며 깨닫게 된다. 깨달음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을 한다.

박사 학위 과정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그녀에게 저자가 근무하던 학교 교장선생님은 “무얼 하든 어차피 오십 살이 되니까요.”라며 독려한다. 이 또한 그녀의 선택이다. 박사 과정의 선택을 계기로 에거의 멈추지 않는 도전이 이어진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는 독특하게도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의 일도 모두 현재형 어미로 끝냄으로써 그녀가 겪은 일을 개인의 일로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현재 시제는 사실 현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간의 위치와 상관없는 보편적인 진리나 습관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사실 등을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심지어 미래에 일어날 것이 분명한 일인 경우에도 현재 시제를 쓴다. 현재형 시제로 표현함으로써 에거의 고난이 그녀의 글을 읽는 독자의 고난으로 환치시킨다.  


에거는 정신적으로 강인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어둠 속 기차 안에서 그녀의 엄마가 한 말을 잊지 않는다.


 “이것만 기억해.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다는 없다”는 것을.   
   

멩겔레 박사의 " 내 작은 무용수", "이리 와." "가까이 와."라고 명령했을 때도 "만약 오늘 살아남는다면 내일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라며 내면에서 스스로 살아 있을 수 있음을 선택한다.  

“어둠을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빛을 밝히기로 선택할 수는 있음”을 에거는 받아들인다.



글은 사랑을 타고


생존자로서의 치유되지 못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던 에거에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한 줄기 빛이 된다. 그 책을 몰입해서 읽고 나서 '빅터 플랭클과 나'라는 에세이를 썼다. 그 글이 교내 출판물에 실리게 된 것을 누군가가 댈러스에 있는 빅터 프랭클에게 보냈다. 에거의 에세이를 읽고 공감한 프랭클은 그녀에게 "한 생존자가 다른 생존자에게"라는 인사말로 편지를 보내왔다.

 


에거는 멩겔레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춤춰야 했던 밤에 부다페스트 오페라하우스의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에세이에 썼다. 프랭클 역시 최악의 순간들마다 자유를 찾은 후에 수감생활의 심리학과 관련해 비엔나에서 강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적어왔다. 또한 내면세계에서 안식처를 찾았음은 물론 그 안식처는 희망과 목적의식을 고양시켜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고 썼다.


빅터 플랭클의 책과 편지는 에거에게 소명의 씨앗을 뿌려놓는다.

"다른 사람들이 의미를 만들도록 도움으로써 내 삶 속에서 의미를 만드는 것, 다른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 치유하는 것, 내가 나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 등"


빅터 플랭클은 "진짜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이다."라고
『죽음의 수용소에서』언급한다.

 

글은 사랑을 타고 에거에게 다가왔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녀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게 하지도 않았고, 나이가 선택을 제한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삶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것'에 귀 기울여 마침내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매 순간은 선택이다. 우리의 경험이 얼마나 불만스럽든 지루하든 제한적이든 고통스럽든 억압적이든 간에, 우리는 항상 어떻게 대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280쪽   


당신은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이 한 일과 당신에게 행해진 일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현재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자유로워지기로 선택할 수 있다. - 409쪽     

스스로 자유를 향한 탐색을 하고 오랜 기간 전문 임상심리학자로 경험을 쌓은 결과 나는 고통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희생자 의식은 선택적이다.
희생되는 것 Victimization과 희생자 의식 Victimhood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 24쪽      



저자는 "이웃의 괴롭힘, 분노하는 상사, 폭력을 행사하는 배우가, 바람을 피우는 연인, 차별적인 법률, 뜻밖의 사고" 등과 같은 것이 '희생되는 것'의 예라면 '희생자 의식'은 내면으로부터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를 희생자로 만들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희생자는 벌어진 사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희생된 사실에 집착하기로 선택할 바로 그때에 희생자가 된다고 역설한다.   


히틀러가 죽은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기에, 공식적으로 독일이 항복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한때 포로들이었던 에거와 같은 사람들은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적이었다. 에거와 언니 마그다는 독일인 가정에 머무르게 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적대적이다. 친절했던 미군이 잠시나마 이성을 잃고 에거에게 다가가다 멈추곤 문가에 있는 동료를 향해 걸어간다.


나를 거의 강간하려 했던 그 남자, 자신이 시작했던 일을 끝마치기 위해 돌아올 수도 있었던 그 남자는 그날 밤 공포를 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 공포를 내면 밖으로 내쫗으려 애쓰며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날 밤, 그는 어둠 속에서 제자리를 잃었고 거의 그 짓을 저지를 뻔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142쪽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데도 군인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날이 밝자 "날 용서해줘. 날 용서해줘."라며 무릎 꿇고 흐느낀다. 이 부분을 읽으며 최근에 읽었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소환되었다.




  특별히 잔인한 국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년이 온다』, 212쪽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의 그 미군이 이성적인 판단을 선택했듯이 『소년이 온다』의 인물들도 폭력에 저항하기를 선택했다. 발포 명령에 총신을 올려 다치지 않도록 하고, 군가를 부르지 않고, 부상당한 사람을 병원 앞에 내려놓고, 질 줄 알면서도 끝까지 남은 시민군들 역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에거 박사가 말하기를 "자유는 '선택 CHOICE'의 문제"라고 한다.

자유는 연민 Compassion, 유머 Humor,  낙관주의 Optimsim, 직관 Intuition, 호기심 Curiosity, 자기표현 self-Expression을 선택하는 것의 문제라고 선언한다.

과거에 갇힌 채 또는 미래에 마음을 쏟는 것 역시 '감옥 안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분명하게 드러낸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미래를 파괴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선택이다. 과거의 감옥에서 살든 과거를 발판으로 현재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릴 수 있든 모두 선택에 달렸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한 것과는 달리 에거는 다른 길을 선택을 했다.

다른 이의 삶에 의미를 만들도록 도움을 주었음은 물론 마음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의 자유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현재뿐이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는 신을 감옥에 가두든가 자유로워지든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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