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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n 25. 2021

그런 걸 왜 해줘요

아침 일찍 인근의 과학 원장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당신 학원에서 보내준 학생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이른 시간이기도 했지만 지난밤 늦게까지 수업하느라 목소리가 잠겼다. 걸걸한 내 목소리를 듣고는 감기 드셨냐고 하기에 아니라고, 중국어 수업하느라 그랬다고 했다.   

   

원장님, 중국어까지 하셔요? 하기에

아니요 간단하게 조금 하는 정도예요.


지금처럼 중국어를 간단하게나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영화 때문이었다.

십 여년 전에 우리 학원에 있던 박선생  덕분이기도 했다. 박선생은 대만으로 유학갈 예정이었기에 틈만 나면 대만 영화를 같이 봤다. 클럽 박스나 위디스크 같은 곳에서 영화를 다운 받아놓고 주구장창 함께 봤다.

<비정성시>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여러 번 반복해서 봤다. 특히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오는 담강 고등학교 가보고 싶은 열망이 컸다. 지금이나 그때나 학원 일이 바빠서 따로 중국어 배우러 다닐 시간이 없었다. 당시에 온라인으로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경기도 교육청의 '홈런'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그 사이트에는 파고다 어학원에서 수업하는 내용 그대로 장좌를 올려놓았었다. 그것을 한달 내내 달달달 돌려가며 공부를 했다.


대만에 푹 빠져서 반 달씩 두번 남편이랑 베낭여행을 갔다왔다. 2006년도 였기에 그때만 해도 나이든 사람이 베낭 여행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대만에서 만난 한국 대학생들이 깜짝 놀라했다. 아무튼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왔던 고등학교에 꼭 가보고 싶었다. 신베이시의 수이 구역에 있는 담강 고등학교를 찾아 갔다. 써서 찾아 가긴 했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아쉽게도 바깥에서 구경만 하고 왔다. 단수이는 한강 고수 부지 같은 곳이다. 비 오는 날 가면 아주 운치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한다. 편의점 창밖으로 내다보는 단수이의 강물이 무척 정겨웠던 기억이 난다.  


대만 여행을 하고 싶어서 배웠던 중국어가 중고등학생 내신 대비하는 데  톡톡이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이것저것 호기심으로 배워둔 것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과학 원장님께는 중2 얌전한 은혜가 생활중국어 교과서를 갖고 밤 10시에 가르쳐 달라고 들이밀어서 할 수 없이 해게됐다 고 말했다. 저만 온 게 아니라 친구 두 명까지 달고 왔다고.  그런 얘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아니, 그런 걸 왜 해 줘요?”
“힘들게 왜 해주셔요?
그런 건 엄마들이 알아서 하게 놔둬야지요.”  

    


두 시간 동안 1과에서 3과까지 하면서 엄청 애를 썼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도움을 받고자 온 아이들임에도 어찌나 떠들던지 화가 뻗쳐서 있는 대로 야단을 쳤다. 너희들이 필요해서 도와달라고 왔음에도 이렇게 떠드는 이유가 뭐냐고?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되냐고 호통을 쳤다. 야단을 맞아도 그때뿐이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아이들인 데다 같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친구들 앞에서 혼나도 무안해하지도 않는다. 아주 즐겁게 떼로 몰려다니면서 공부를 한다. 공부 반 놀이 반이다.    

  

교사용 중국어 교과서를 컬러로 출력해 줬다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은혜만 듣도록 작은 목소리로 수업을 했다. 미리 다락원 교과서 사이트인 <다다익샘>에 들어가 교과서 자료를 컬러로 다 출력해서 줬다. 빔 프로젝터에 띄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하며 한어병음을 가르쳤다. 떠들면서도 시험을 잘 보고 싶었는지 갑자기 집중 모드로 돌아섰다.  마냥 미워만하고 안 해 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한자를 전혀 몰라서 어떻게 하든 암기하도록 꼼수를 부렸다. 이번 기말 시험은 객관식만 보는 데 기출문제 찾아보니 한어병음 연결하고 숫자 물어보고 성조 찾는 정도였다.  






출처: 신동 중학교 2020 기출문제



Bùkèqí   不客气  천만에요

Duìbùqǐ   对不起  미안합니다


병음을 찾기 위해서 아니 불(不) 자가 앞에 있나 중간에 있나를 빨간 펜으로 표시하고 암기하게 했다.





출처: 중학 생활 죽국어/다락원

겨우겨우 아이들 머리에 구겨서 넣고 기출문제까지  같이 풀어봤다. 암기한 것을 다시 교과서에서 찾는 과정을 반복했다. 100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번 중국어 시험을 개잘볼 것 같다고, 중국어 일고 보니 개쉽다며 돌아갔다.


집에 가서는 얼굴이 밝아져서 중국어 거의 다 암기했다고 은혜가 아주 좋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업이 많아서 힘들면서 누군가가 힘들어하거나 하면 그걸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아니 그런 걸 왜 해줘요?"

이런 말을 들으며 애정 어린 관심과 오지랖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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