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아니 몇 년 동안 시를 안 쓰다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에 공대생의 심야 서재에서 <조곤조곤 시 쓰기> 과정을 개설하면서부터였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교학상장'처럼 예비 시인님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나 스스로가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다른 시인들의 시도 찾아서 읽고 시도 많이 쓰게 됐다.
그동안 원고 청탁이 와도 요즘 시 안 쓰고 있다고 고사를 해왔었는데 올해 세 번이나 발표지면을 얻었다.
써놓은 시들을 다듬어서 계간지 <미래시학> 여름호에 두 편 발표를 했다.
<방짜 울음의 집을 짓다>는 유튜브에서 방짜 유기를 만드는 유기장인의 삶을 보고 쓴 시이다.
<주자(朱子)를 불러보는 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하늘을 보는 순간 주자가 떠올라서 썼다.
생활 속에서 작은 관찰을 통해 시를 길어 올리고 있다.
진순희
징을 만든다는 것
800도 쇳물로
쇠 울음을 짓는 일이다
식은 놋쇠 덩어리
얼마나 메질하고 다듬어야
하늘과 땅, 삼라만상 품어 안는
소리의 맥을 짚을 수 있는가
방짜 징
서까래 대들보도 없는 집이다
십리 밖까지 소리의 향기가 퍼지는
울음의 평수는 날로 넓어지고
꼬리를 문 울음소리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두드리는
놋갓장이 사내의 가슴 속 파고든다
얼을 빼앗겨 버렸다
소리를 잡는 일에 발이 빠져
푸른 시절은 녹슨 쇠빛이 되었다
징의 가장자리에 구멍 내고
울음 잡아 징을 칠 때면
소리에 넋을 잃은 세월도 아깝지 않은
유기장匠, 그 사내
방짜 울음의 집을 짓는 손끝에
신명나게 힘이 들어간다
진순희
주자의 《봉호수권》
친필 두루마리 글씨처럼 굵은 비가 내린다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마,
먹구름이 잠시 자리를 뜬 사이
텅 빈 시야에서 문득
세월이 비처럼 내려앉은 나를 보았다
제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고
발걸음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고 있는 모습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하던
성리학의 대가 주자를 불러본다
눈 어두워지고 나서야
착한 성품 기르는 한 곳에만
마음 기울였다는 그 남자
그래, 생각을 멈추지 말자
글 읽고 배움을 놓지 말자
하늘 풀장에 담아놨던 빗물 다 쏟아낸
저 하늘 위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나어린 주자처럼 끝없이 질문하고
옥 같은 답을 얻어내자
*주자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고 사색하기를 좋아했다.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것이 하늘이란다" 하고 말하자,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그럼 저 하늘 위에는 또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