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Aug 11. 2021

아직까지 ‘박수’인 이유-『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나는 박수다.

박사 수료생을 줄여서 붙인 별명이 ‘박수’다. 석사 수료생인 ‘석수’도 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의 홍승은 작가는 동거인 우주의 말을 빌려 논문 쓰기를 미루는 이유에 대해 일갈한다.

     


논문을 빨리 써서 졸업하는 대학원생 대부분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글을 써내지만, 자기처럼 몇 년 동안 박수나 석수로 남아 있는 사람 중에는 위대한 걸작을 내려고 어깨에 힘주다가 하나도 못 쓰는 경우가 꽤 많다고. 우주는 정확한 진단을 하고도 위대한 논문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해 3년째 박수다.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266쪽     


이 글을 읽으면서 내 얘기를 하나 싶어서 속으로 뜨끔했다. 나 역시 그랬다. 박사 논문을 잘 써서, 그걸 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었다. 입학할 때 서울시 인문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어 학기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최초 1기로 장학금을 받은 사람답게 왠지 거창한 논문이 나와야만 될 것 같았다. 걸출한 논문이 나오면 운영하고 있는 학원도 잘 될 것이라는 얄팍한 믿음이 있었다. 논문 한 편을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그렇게 써야만 될 것 같았다. 초고는 원래 쓰레기라는 말을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었을 텐데.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논문을 쓰겠다고 용을 쓰다가 결국 시간만 다 허비하고 '박수'가 돼 버렸다.    

   

『오리지널스』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창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면, 작업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말이다.”(77쪽) 본문 하나에 공을 들일 것이 아니라 많이 써봐야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창성을 발휘하는데 실패하는 이유는 몇 개의 아이디어만 생각해내고, 그것을 완벽해질 때까지 다듬고 수정하는데 집착하기 때문이다. ------ 업워디는 하나의 기발한 제목을 정하기 위해 적어도 25개의 제목을 생각해내야 한다고 한다. 초기의 아이디어로 되돌아가는 행태를 연구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독 창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때때로 창의적인 작업 과정의 초반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의 경우에는 초기에 생각해낸 아이디어일수록 이미 존재하는 것과 가장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뻔한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다 희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만큼 사고가 자유로워진다. "절박해지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24번째 제목이 진짜 형편없어도, 곧이어 생각해낸 25번째 제목이 당신을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지 모른다."    

 - 『오리지널스』, 78쪽      


2006년 입학해 2009년 수료했으니 욕심 안 부리고 으면 벌써 쓰고도 남았을 것이다. 위대한(?) 논문을 써보겠다고 자료 찾는데  소진을 다 했다. 쌓여있는 자료 더미에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가 시간만 가버린 셈이다.

그냥 무조건 논문 초고를 얼른 썼어야 했다. 본문 하나하나 다듬는다고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어깨에 힘주다 망해버렸다.      


나하고 무관하다 생각해왔던 학위를 다시 소환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마침 좋은 조건의 제의가 있어서 박사 학위가 필요했다. 부랴부랴 학교에 물어보니 영구 수료가 돼서 특례 재입학을 해야 한단다. 입학금 98만 원에다 등록금의 10%를 매 학기마다 연구비로 내야 하니 논문 다 준비되면 그때 하란다. 매 학기마다 연구비를 낼 생각을 하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에 끝내는 걸로 계획을 세우고 내년 2월에 재등록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읽다가 ‘박수’에 꽂혀 이야기가 딴 데로 샜다.

이 책은 글쓰기를 권유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음을 챙기거나 돌보는 것에 많은 부분 할애되어 있다.


“내 글이 누군가의 고통을 간편하게 밟고 쓰인 건 아닌지 성찰하는 태도 역시 필요했다.(139쪽)라든가 “15분 글쓰기”가 그렇다. 15분 동안 아무 거나 쓰고 자신이 쓴 글을 읽는 거였는데, 이들은 매번 우는 사람이 되거나 과거에 우는 사람이었다. 홍승은 작가는 “글을 들어줄 사람이 있기에 고마운 마음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또 글쓰기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스스로 위로받아서 그렇지 않을까” 예단하기도 한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다’는 명제답게 글을 쓰기 위한 팁도 잊지 않는다.

글쓰기 동료의 “플라스틱 뚜껑과 밥을 갉아먹는 쥐, 아무런 준비 없이 생리를 시작한 나, 가출했던 오빠” 의 생생한 보여주기 표현은 “가난과 방임과 외로움, 슬픔 등의 복다단한 감정을 읽으킨다”라고 표현한다. 작가는 글을 쓸 때 상황을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는 글을 쓰라고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도 직접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넌지시 사라 아메드의 말로 대신한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정의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망설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촘촘하게 차별로 연결된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촘촘하게 사유하고 망설이는 태도가 필요함”을 언급한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141쪽     


홍승은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등을 다짐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꾸준한 글쓰기에 대한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존 버거는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80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에너지에 대해 말한다. 쓰는 사람을 “빈 곳을 메우는 사람. 말해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그 긴 시간을 지치지 않고 써내려 갔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작가는 쓴 사람이 아니라 현재 쓰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말하자면 홍승은 작가가 정의했듯이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 명사”라는 말일 게다.      


이 책에는 책갈피에 꽂아두고 싶은 내용들이 꽤 많았다. 김원영 작가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 표현된 서사의 편집권도 눈여겨볼 만하다.   

   

“서사는 잘 쓰인 놀라운 문학작품이 아니라 자신에게 찾아온 어떤 상황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자기 삶에 결부시켜 구체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자기 서사를 존중하고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각 개인의 고유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지, 개개인의 뛰어난 예술성을 드러내는 지표라서가 아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250쪽   



나 자신의 고유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세계를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겠다.

박사논문 준비할 때처럼 위대한 글을 써보겠다고 가당치도 않는 바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기 서사에 대한 정직함으로 꾸준히 글을 써 내려가기를 희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분위귀(盡分爲貴)로 경쾌한 존재감을 허許 하노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