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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Sep 05. 2021

제목부터 확 당기는,  『나를 살리는 관계』

“단절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라는 부제를 단 『나를 살리는 관계』에는 관계 맺기에 대한 심폐소생술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덥석 집어 들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에는 상대에 의존하기보다는 부담은 절대 주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이 되는 것을 허용하고 싶지 않기에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 

『나를 살리는 관계』에도 독립적이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그런 관계만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라고 쓰여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은 보기 좋게 내 예상을 빗나갔다.       


심리학자이자 의존성 전문 연구자 로버트 본스타인은 20년 이상의 임상 연구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호의존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이 때문에 본스타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존을 ‘건강한’ 것으로 규정한다. 

- 『나를 살리는 관계』15쪽     

 



『나를 살리는 관계』에서 특히 주안점을 두는 것이 ‘상호의존’이다. 인간은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기에 “의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독립과 자율만을 최우선”으로 삼는 분위기를 경계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의존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기에 ‘건강한’ 의존과 ‘해로운’ 의존을 구별하라고 주장한다.      

사실 우리의 관계 맺기란 자율성에 대한 욕구를 바탕으로 건전한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둘 사이의 균형 잡는 법을 깨닫고 적용하는 과정이랄까.   


아이를 키울 때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꿈꾸었다. 부모와 살을 부대끼며 자라기보다는 빨리빨리 키워서 제 앞가림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원했다. 가능하면 젖도 얼른 떼고, 기저귀도 빨리 졸업시키려고 안달하며 키웠던 기억이 있다. 이웃집 아이가 이유식 시작하면 이에 질세라 따라 했다. 따로 재워야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로 자란다는 굳은 믿음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때여서 더욱 열 올리며 서양식 교육을 추종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부모와 살을 맞대고 자란 아이들, 캥거루 요법으로 엄마와 지냈던 아기들이 생리적 기능도 좋았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 징후도 덜 했다. 수면의 질도 높았음은 물론 부모와의 애착 유형이 안정적이었으며 자기 조절 능력 또한 뛰어났다. 



 우리 아이는 특히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떨어지질 않았다. 화장실에라도 갈라치면 문을 살짝이라도 열어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울부짖었다. 나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에 가까워서 아이 키우는 내내 힘이 들었다. 오죽하면 엄마를 저렇게 안 떨어져서 아이가 제대로 자라겠냐며 주변의 걱정을 들을 정도였다.  나 역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애착’은 오히려 사회성을 키운다는 사례가 나와 있어 의외였다.  


“루마니아 고아원 출신 아이들에 대한 연구는 양부모를 만난 아이들이 고아원에 남은 아이들보다 안정 애착 수준이 높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 아이들도 양부모를 만나기 전까지는 불안정 애착 표시가 두드러지는 경우가 75퍼센트에 달했는데 말이다.” (37쪽)


'애착'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다. 아니 은연중에 어느 정도의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애착은 관계의 밀착성에서 오는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준다. 고아원에 있을 때보다 양부모와 함께 살면서 안정 애착 수준이 높아졌음이 이를 증명한다. 애착은 자기의 감정이나 행동의 관리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어쩜 그동안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독립을 강조하고 권한 면이 없지 않다. 

이제 상호 의존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보다 스스로 상호의존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상호의존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국한하지만은 않는다. 

레위니옹섬의 차 플랜테이션 농장에서의 사례는 “도움을 받을 줄 아는 것도 상호의존의 일부”임을 종을 뛰어넘어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생태학적 상호의존의 모습을 차나무들의 ‘연대’를 통해서 강조한다. 레위니옹섬우기 때 나무들이 벼락 맞는 일은 흔하단다. 이때 차나무 가지는 다른 가지를 만나면 붙어버리는데, 불운하게 벼락을 맞더라도 걱정할 것이 없다. 다른 나무와 붙어서 그 나무의 영양분을 나눠 먹고 살아남기 때문이다. 

상호 의존함으로써 그 섬은 빽빽한 숲을 이루며 건재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대자연과 인간이 상호 의존하며 선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영식 시인의 <햇살론>이다. 


"해와 살을 / 비와 바람에 섞어 마시고 지상의 초록이 자랍니다

  꽃 피우고 열매를 맺어 내놓습니다


이 한 수저의 밥알도 / 햇살 받아먹고 여물었으니 / 우리는 지금 해의 살을 씹고 있는 것

해의 피톨을 삼키고 있는 것"


 

    






햇살론*      

              

                                    이영식 



         

햇살은, 해의 살입니다     

빛의 속도로 일억사천구백만 km를 날아온

해의 살을

비와 바람에 섞어 마시고 지상의 초록이 자랍니다

꽃 피우고 열매를 맺어 내놓습니다   

  

이 한 수저의 밥알도

햇살 받아먹고 여물었으니

우리는 지금 해의 살을 씹고 있는 것

해의 피톨을 삼키고 있는 것  

  

보세요!

재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의 살은 또 다시 옵니다

햇살론에 실려 한줄기 빛으로 옵니다     

부디, 빛이 빚이 되지 않기를 …     


* 대부업 등에서 30~40%대 고금리를 부담하는 저신용, 저 소득 서민에게 10%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서민대출 공동브랜드. 



출처: Pixbay



(본 서평은 성장판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의 도서지원을 받았지만 서평은 저의 주관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나를살리는관계 #단절의시대 #우리는연결되어있다 #인문학 #심리학 #위즈덤하우스 #크리스토프앙드레 #레베카상클랑 #성장판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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