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에 제 시가 <명시 감상>에 실리게 됐습니다

by 진순희




방짜 울음의 집을 짓다

진순희




징을 만든다는 것

800도 쇳물로

쇠 울음을 짓는 일이다


식은 놋쇠 덩어리

얼마나 메질하고 다듬어야

하늘과 땅, 삼라만상 품어 안는

소리의 맥을 짚을 수 있는가


방짜 징

서까래 대들보도 없는 집이다

십리 밖까지 소리의 향기가 퍼지는

울음의 평수는 날로 넓어지고

꼬리를 문 울음소리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두드리는

놋갓장이 사내의 가슴 속 파고든다



얼을 빼앗겨 버렸다

소리를 잡는 일에 발이 빠져

푸른 시절은 녹슨 쇠빛이 되었다



징의 가장자리에 구멍 내고

울음 잡아 징을 칠 때면

소리에 넋을 잃은 세월도 아깝지 않은

유기장匠, 그 사내

방짜 울음의 집을 짓는 손끝에

신명나게 힘이 들어간다








징은 국악기의 하나로 지름이 21cm에서 48cm쯤 되고, 놋쇠로 둥근 쟁반같이 만든다. 실로 꼰 끈을 달아 왼손에 들고, 헝겊으로 끝을 감은 나무채로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 불교음악과 무속행위와 농악 등에서 사용하며, 특히 북과 장구와 꽹과리와 함께 사물놀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 한다. 징은 채 끝에 헝겊을 감아 치기 때문에 긴 여운을 남기며, 소리는 부드럽고 웅장하다고 할 수가 있다.



문순태의 소설 {징소리}가 산업화 과정에서 실향민들이 겪는 고향상실의 아픔과 그 파란만장한 삶(한)의 소리였다면 진순희 시인의 [방짜 울음의 집을 짓다]는 유기장(놋갓장)의 절차탁마의 장인정신과 그 얼이 담겨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장인정신이란 최고급의 유기장이 되려는 정신을 말하고, 얼이란 장인정신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 즉, “소리를 잡는 일에 발이 빠져” “푸른 시절”을 다 바쳤다는 것을 말한다. 장인정신은 살신성인의 몸통을 말하고, 얼이란 그 몸통에서 피어난 꽃을 말한다.


징을 만든다는 것은 800도 쇳물로 쇠 울음을 짓는 것이고, 식은 놋쇠 덩어리를 수없이 메질하고 다듬어야 “하늘과 땅, 삼라만상 다 품어 안는/ 소리의 맥을 짚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방짜 징은 서까래와 대들보도 없는 집이고, 십리 밖까지도 소리의 향기가 울려 퍼지는 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방짜 징의 울음의 평수는 날로 넓어지고, 꼬리를 문 울음소리는 놋갓장의 가슴 속까지도 파고 든다. 소리를 잡는 일에 발이 빠져 얼을 다 빼앗겼고, 그의 푸른 시절(젊은 시절)은 녹슨 쇠빛이 되었다.



“징의 가장자리에 구멍을 내고
울음을 잡아 징을 칠 때면
소리에 넋을 잃은 세월도 아깝지”가 않았다.
“방짜 울음의 집을 짓는 손끝에
신명나게 힘이 들어”가고,
그는 징과 하나가 되어 예술품 자체의 삶을 살게 된다.



세계는 방짜 울음의 집이 되고, 방짜 울음의 집은 놋갓장의 예술작품이 된다. 세계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고 세계가 있는 것이다. 세계는 나의 장인 정신이 창조한 세계이며, 모든 아름다움은 나의 ‘얼의 꽃’인 것이다. 진순희 시인의 인문주의와 탐미주의의 극치가 이 방짜 유기장의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하늘과 땅, 삼라만상을 다 품어 안는 방짜 울음의 집----.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방짜 유기장의 그 사내의 울음이 울려 퍼지고, 방짜 유기장 그 사내의 울음은 모든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소리가 된다.



징, 징, 징----, 징은 그의 생명이고 그의 영혼이며, 그는 예술품 자체의 삶을 산다.

세계는 나의 예술작품이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시인이다.


ㅡ[반경환명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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