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Sep 07. 2021

"바다는 잘 있습니다"

바다로 향했다.

속초가서 해물찜 먹고 싶다고 남편이 지난주부터 노래를 불렀다. 코로나로 작년부터 여행을 못 가서 그럴 만도 했다. 역마살이 있는 남편이 졸갑증으로 생병이 날 지경이 되었다. 돈이 있으면 뭐 하냐(돈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데(죽는 건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데...),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사는 게 이게 제대로 된 인생인가?(하고 싶은 거 못하고 사는 사람도 아니면서...)    


 

계속 내 귀를 울렸다. 지난번처럼 대마도 상공이라도 돌고 오면 어떻겠냐고? 내 눈치를 보며 운을 뗐다. 아니 지난번 갔을 때 비가 종일 와서 바깥에 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았냐 했더니, 이번에 김해 가는 코스가 있는데 해가 쨍쨍 날 거라면서 어린애처럼 보챘다. 면세점이라도 들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마침 화요일은 학원 쉬는 날이라 시간은 낼 수 있었지만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많아서 머뭇거리고 있던 차였다. 다음 달까지 원고 마무리해야 할 것도 있고 문체부 인문 강사 활동하는 곳의 멘티님들에게 브런치 작가 활동할 수 있도록 도움 줄 PPT도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다음달에 연대 논술이 있어 공부할 게 많았다.

무조건 1일 1 책 1 글을 계획하고 있기도 해서 마음이 바빴다. 물론 1일 1 책 1 글 못 지키는 날이 허다하긴 하다.     


 

아무튼 1년 만에 나선 나들이었다. 9시 30분 속초행 고속버스에는 승객이 10명도 안 됐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뿌리고 있었고 안개로 뿌였게 흐려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도 정겨웠다. 홍천 휴게소 엔제리너스에서 커피 두 잔을 사서 젊은 기사분께 한 잔 건네고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사진 속의 나를 보는 게 싫어서 잘 안 찍는데, 남편이 손짓을 하며 기어이 포토존에 세웠다.  


    

아, 이젠 사진 찍기 싫어요.

눈에만 담고 가죠.     


남편 대답이 더 걸작이다.     


“이 사람아 오늘이 제일 젊어.
부지런히 찍어 둬!”    

 

뼈 때리는 말을 이렇게 잘할 수가 없다. 나 대신 논술 선생을 했어야 했다.  


    

속초에 내려 기억을 더듬어 해물탕집을 찾았다. 작년에 공사 중이었던 아파트가 완공이 됐고, 그 옆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 현장을 보더니 해물탕 집이 없어지고 막국수집만 남아 있다고 남편이 탄식을 했다.   

   

없어졌더라도 그 인근에 있을 거예요. 한번 가서 보지요.     


없어졌는데, 뭘 가냐고 시무룩해하는 남편에게, 어쩜 짜잔! 하고 옆에 있을지 몰라요 하면서 손을 잡아끌었다. 막국수 집을 지나니 생선구이집만 있었다. 돌아서려다 앞쪽을 보니 해물찜 하는 아바이 집 간판이 보였다. 그곳으로 갔더니, 웬걸 작년의 그 집이었다.    

  

문이 똑같네요. 작년에 앉았던 자리도 그대로 있네.     


어, 맞다. 그 집이다.      


아유, 헛된 정보만 남발하는 사람같으니라구.      

서울에서 이곳 해물찜을 먹으로 아침부터 서두른 일이랑 없어진 줄 알고 깜짝 놀랐던 일들을 주섬주섬 말했다. 주인장께서 당신들 집에서 30년째 하고 있기에 절대 없어질 수 없노라고, 염려하지 마시라고 했다.  

한상 가득 해물찜을 받아 들고는 남편이 아이처럼 좋아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택시를 타고 동명항으로 갔다.

어시장도 문이 닫힌 상점들 대부분이었고 수산업 건물도 사람이 없었다. 코로나의 여파가 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은 듯했다. 해양 요원들이 훈련을 하는지 그 사람들만 물속에 있었고  관광객은 고사하고 상인들조차 볼 수가 없었다. 북적거리던 항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안개 자욱하고 비가 오는 데도 바다 색깔이 파랗고 예뻤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동명항에 약속을 하고 왔다. 계절마다 한 번씩은 꼭 오리라고.

바다는 잘 있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세 시간이면 족히 오는 것을. 마음먹기가 이리도 어려웠을까.      


아이들 어릴 때는 동명항으로 대진항으로 놀러 다니기 바빴다. 그때 우리보다 남편의 지인들이 콘도에 먼저 도착해 잠잘 곳이 없게 만들었던 시절도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남이냐고 밤이고 낮이고 붙어 다녔던 그 사람들은 지금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몇몇은 하늘나라로 갔고 누구는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고도 했다.

지금은 남편과 단둘이서만 왔다. 시집 한 권과 서평 써야 할 책 한 권들 들고서.


     

동명항이 이렇게 아름다웠다




공교롭게 가방에 넣은 시집이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였다.

이병률 시인은 <노년>이라는 시에서 ‘노년’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라는 말에 홀렸으며

‘그곳’이라는 말을 참으며 살았으니  

   

여기를 떠나 이제 그곳에 도달할 사람”이라고.


이제 “ 여기를 떠나 그곳에 도달할 사람”이 되어 동명항에 왔다.

바다는 늙지도 않고 아주 의연하게 잘 버티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아이 국어 100점 맞게 하고 싶으신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