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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Sep 13. 2021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긴 한 걸까?

<태풍이 지나가고>


“모든 사람이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의 맨 앞장에 고레에다 감독이 썼다고 알려진 문장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Hirokazu Koreeda)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를 문체부 인문 멘토링 수업에서 다뤘다.     



멘티들은 아기 낳은 지 몇 달 안 된 30대 아이 엄마들 다섯 명이다. 멘티분들에게 <태풍이 지나가고>의 줄거리를 부박하게나마 소개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 료타의 성장 일기 같은 느낌이 든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태풍이 지나가기 전까지 영화 보는 내내 혀를 끌끌 차게 했던 인물이 주인공 료타이다. 이미 15년 전에 등단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료타’는 사설탐정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대작가로서의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꿈을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 맞을 정도이다. 품은 뜻은 원대했으나 그의 행동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번 돈으로 경륜을 하거나 도박으로 탕진을 할 정도로 한심한 모습을 보인다. 양육비조차 허튼 데 써버리고 제대로 마련도 못하는 인물이다. 답답하게 여긴 나이 어린 동료가 그달의 양육비를 건네 주지만 그마저도 경륜장에서 날려버린다.      


유부녀와 불륜 관계인 고교생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다 “당신 같은 어른은 정말 되고 싶지 않네요”라는 막말까지 듣게 된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료타가 아니기에 “되고 싶은 어른이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라고 발끈한다.   


야구와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어린 아들 싱고가 있지만, 아빠의 재능을 닮았다는 할머니의 말에 떨떠름한 반응을 할 만큼 그는 아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내 쿄코와는 이혼한 지 오래됐다. 한 달에 한 번 양육비를 지불하며 아들과 만나는 자리에도 매번 늦을 만큼 허술한 인간이다.     

 

태풍이 몰아치던 날 예기치 않게 어머니의 집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보내게 된 료타.

그는 태풍이 몰아치는 밤에 문어 미끄럼틀 아래서 아버지와 나눴던 추억을 아들 싱고에게도 경험하게 한다. 이를 계기로 태풍이 지나간 뒤 청명한 날씨가 되었듯 료타의 마음도 정리된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아빠는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문어 미끄럼틀 아래서 묻는 싱고의 말에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느냐 아니냐 이거지”라고 대답을 한다.     

태풍이 지나간 후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가 있어야 진정한 남자가 되는 것이다”란 사설탐정 사무실 대표의 말대로 료타는 아내 쿄코의 과거가 되기로 결심한다.


영상을 시청한 후 멘티들에게 질문을 했다.


Q.  도박과  경에 빠져 사는  료타는  양육비조차  허튼 데에  탕진해 버리고 제때  마련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교코와  싱고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른 곳에서도 같은 수업을 진행했었는데, 대부분의 대답이 비슷했다. 아니 거의 똑같았다.

료타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함량 미달이다. 자기 관리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다. 아들 싱고가 무얼 보고 배우겠냐? 주로 이런 반응이었다.  그런데 아기 낳은 지 6개월도 안 된 젊은 멘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료타의 간절함이 느껴졌단다. 어차피 탐정 일을 해서는 돈을 많이 못 버니까, 경륜이나 도박에 몰두하는 것 아니겠냐고? 얼핏 보기에 료타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오히려 료타의 머릿속에는 큰 그림이 있다. 다시 한번 싱고와 쿄코랑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미련이 남아있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경륜이나 도박하는 것이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나름 꿈을 향해 가고 있는 거지만 아들이나 아내에게 전혀 이해받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젊은 멘티분의 말을 듣고 보니 료타가 다르게 보였다.

불량한 고등학생에게 “되고 싶은 어른이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쏘아붙이지만 아들 싱고에게는 진솔하게 자기의 마음을 토로한다. 중요한 것은 되고 싶은 어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내는 것이라고 아들에게는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  아빠로서의 부정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어쩜 멘티분 말처럼 속 깊은 남자를 내가 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잠깐이지만 들긴 했다.  


멘티분들과 생각을 나누고는 료타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다.

<심호흡>의 가사처럼 "잘 가 어제의 나, Hello again, 내일의 나"라고 료타가 말할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나는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기는 한 걸까.





덧붙이는 말: 암전이 되면서 하나레 구미 Hanaregumi의 <심호흡>이 자막과 함께 흘러나온다. 하나레 구미의 착감기는 목소리가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듯했다.  

     

꿈꾸던 미래라는 건 어떤 거였더라
잘 가 어제의 나
------     
꿈에서 본 미래라는 건 어떤 거였더라
Hello again, 내일의 나     
--------     
손을 놓는 일은 할 수 없으니까
다음 한 걸음 앞으로
다음 한 걸음 앞으로
좀 더 한걸음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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