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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Sep 24. 2021

추석 명절 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추석 명절 밤이었다.

아침부터 파주 LP 갤러리에서 애플망고 빙수를 먹고 영종도 마시랑 카페까지 가서 밤늦도록 노닐다 와서 피곤했다. 그 전날도 점심부터 양평까지 가 오리 백숙집에서 밥을 먹고 연꽃 박물관이 있는 세미원을 갔었다. 장독대 분수를 보고 꽃의 색깔이 첫째 날 흰색으로 시작해 둘째 날에는 분홍색으로 셋째 날에는 빨갛게 변하는 빅토리아 수련까지 보고 왔다. 배다리 건너서 두물머리 연핫도그까지 먹고 왔다.     

 



일에만 파묻혀 살다가 나처럼 바깥 일하는 며느리와 함께 가족 모두가 나들이를 했다. 시댁에 오는 발걸음이 무겁게 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 한 자락이 깔려 있긴 하다. 하지만 모처럼의 연휴인 명절에는 며느리나 나나 노동자인 우리에겐 ‘쉼’이 필요했다. 연휴 기간 이틀 내내 눈이 호사를 했다. 세미원의 문 닫을 시간까지 걷고 먹고 마시고 온 가족이 놀기만 했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충실하게 놀았다.     

 




늦은 밤 주차를 하고 현관 계단을 오르려던 찰나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옆을 보니 필로티 아래 머리를 싸매고 누군가 엎어져 있었다. 그냥 올라가기가 왠지 주춤했다.

보다 못해 남편이 그쪽으로 갔다.    

  

어디 아픈 거예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내 쪽을 보며 우리 집 양반이 말했다.


"112에 신고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닐까? "    

"112는 무슨? 119면 모를까요."    

 

“119 불러드릴까요?”     

남편이 재차 물었다.     


“아무래도 아픈 거 같아요. 119를 부릅시다.” 내가 거들었다.     

  

112를 부를까 119에 전화를 할까 그런 말들이 오가니 그제야 반응을 했다.    

 

“아픈 거 아니에요.”     


살짝 올려다보며 말을 하는 데 아주 앳된 아가씨였다. 완전 인사불성이 되어 혀가 말려서 대답을 했다.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 아가씨를 혼자 두고 가기가 뭣해서 경비실로 갔다. 경비 아저씨가 오더니 그 아가씨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우리 아파트 주민이세요?”     

“1305호에 살아요.”     

“주민이구먼. 그러면 얼른 들어가셔야지, 비도 오는데 이렇게 한데 있으면 안 돼요.”

    

“바람 쪼끔만 더 쐬고 들어갈 거예요.”

     

허공 중에 흩어지는 단어를 모아서 말하듯이 힘겹게 대답을 했다.     

우리 가족들은 집으로 들어오자 준비된 것처럼 말들을 했다. 방금 본 그 아가씨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남편이 제일 먼저 입을 뗐다.


“친구들 다 결혼했는데, 저 아가씨만 시집을 못 가서 울적해 혼술 했나 보다고. 추석 명절인데 남들은 모두 짝을 데리고 친정으로 시댁으로 나들이 가는데, 자기만 홀로 있어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나 보다”라고.

평소의 그답게 짐작을 했다.      


“아이구, 요즘 누가 결혼 못했다고 슬퍼할라구요. 요즘 사람들은 남자고 여자고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래요. 취업을 못했나? 직장이 없으면 친척들 모이는 명절날이 괴로울 수도 있고. 여성들이 모두들 일 하고 싶어 하는 추세니 그럴 수도 있구요.”      


나름 근거를 대서 추정을 하기는 했는데, 가족들이 절대 동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했다. 그중에서 아들이 제일 그럴듯하게 상상했다.     

 

 일본의 작가처럼 남들이 보지 않으면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는데, 쟤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술을 진탕 마신 건 아닐까요. 쟤를 괴롭히는 가족이 한 둘이 아닌 복수의 ‘가족들’이 아닐까요? 아니면 명절날 남자한테 차였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영화 <소나티네>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가족을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면 어디에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한 말을 아들이 들먹였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고 기온도 내려가 아주 썰렁했다.

기온이 낮아서 그런가, 춥네! 아들이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 나갔다 오더니      

“걔! 집으로 들어가고 없던데요.”

술 깬 다음에 들어가려고 밖에 있었나 봐요.

아이고, 그 아가씨도 사는 거 힘드나 보네. 나처럼 힘든 가보다.”

    

“넌 무슨 뜬금없이 그런 소리를 햇!

이틀 동안 내리 잘 놀고 잘 먹고 편하게 잘만 쉬다 왔구먼!”

    

“운전 하루 종일 해봐요. 얼마나 고단한지.”  

   

아들도 늙어가는 중인가 보다. 집에 있는 게 가장 편하단다. 음식 배달해서 먹고, 포장해서 펼쳐놓고 넷플릭스나 보면서 쉬는 게 제일 좋다고 했다.      

거실마저 잠들어버린 새벽녘에 식탁에 홀로 앉자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몸을 못 가누고 있던 그 아가씨를 지나치지 못한 건 무슨 까닭에서 그랬을까?

내가 착해서? 그냥 지나치 찜찜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는 중에 아이들과 함께 수업했던 제노비스 사건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https://www.youtube.com/watch?v=Jqjc3hLtS04

<지식채널 e-38명의 목격자>에는 뉴욕에 사는 28세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살해된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캐서린 수잔 키티 제노비스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윈스턴 모즐리에 의해 칼에 찔리고 강도와 강간을 당한 후 살해됐다. 세 번이나 칼에 찔릴 때까지 아파트의 목격자 38명 중 여자를 도와주러 내려오거나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건이 끝나고 한 명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제노비스가 사망을 한 후였다. 물론 뉴욕 타임즈의 보도와 다르게 신고한 사람이 세 명이 있었다고는 했다. 영상을 보며 적어도 방관자는 돼서는 안 된다고 아이들과 생각을 주고받은 지가 채 며칠이되지 않았다.

     

도덕적 우월성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었을까.

단지 호기심 때문에 한 행동이었을까.  

    

비가 추적추적 오래도록 내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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