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이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으로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 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강신재 소설 『젊은 느티나무』 중에서
멀리 거대한 은빛 덩어리가 꿈틀거린다. 바닷속 15m, 오후 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정어리 떼는 타원형에서 갑자기 기이한 형태로 그 모습을 바꾼다. 돌연 사라지더니 내 왼쪽에 다시 나타난다. 유령이 춤추듯 그 비현실적 모습에 나는 완전히 빨려 들고 만다. 절벽에 붙은 산호가 맹렬히 빛을 뿜어내고 내가 뱉는 물방울 소리가 신비하게 울린다. 헐떡거리다 문득 낯선 냄새를 느낀다. 정어리 냄새? 하지만 내 코는 어깨에 멘 공기통에 연결돼 있으니 이는 후각적 연상이나 환상에 가깝다.
『후각과 환상』, 153~154쪽
“세상의 냄새를 좇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 될 것이다.
태곳적부터 아로새겨진 감각의 기억 속, 이따금 향기와 악취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