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없으면 여자도 없다 이영식

by 진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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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없으면 여자도 없다


이영식



학여울역에 정차했던 전동차가 출발하고 내 왼쪽 빈자리로 한 여자가 다가와 앉았다.


난장이를 겨우 면한 듯 보이는 중년의 그녀는 앉마마자 잔주름이 많은 악어무늬 핸드백 속에서 손거울과 립스틱을 꺼내 들었다.


체리핑크 색으로 꽃 입술을 그리기 시작하는 여자의 손가락들이 나무뿌리처럼 뒤틀려 있다.


나무가 뿌리를 부끄러워하지 않듯 여자는 뒤틀리고 구부러져 펼 수도 없는 손가락으로 체리핑크 꽃을 당당하게 피워 올렸다.


손거울 속으로 들어가 꽃잎을 빨고 있는 여자의 양미간 주름이 만개한 목단꽃 이파리처럼 활짝 펼쳐졌다.


세상에 거울이 없으면 여자도 없었다는 듯 홍학 한 마리가 푸드덕 날개를 쳤다.


-이영식 시집 『꽃의 정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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