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Oct 14. 2021

부르는 대로 값을 주리다

어제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간다고 아이들처럼 들떠 잠을 세 시간밖에 못 잤다. 시를 쓰는 K선생님과 C 선생님과의 가을 소풍 나들이었다. 소풍 짐을 꾸렸다.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고 냉동실에 있던 쑥떡을 미리 내놓고, 두유와 학원의 아이들 간식으로 준비해 놓은 과자도 몇 봉 챙겼다.      


바람도 살짝 불고 햇볕은 적당했다. 구름은 있지만 기분 좋을 만큼 흐렸다. 하루를 온전히 나들이에만 쏟았다. 원주에 도착하니 웬일인지 너무도 조용했다. 월요일이 대체휴일이라 개관을 해 화요일에 쉬기 때문에 사람이 없었던 거였다. 드라마 <마인>에 나오는 곳도 다 찾아보고 싶었는데 계획이 무산됐다. 양평으로 차를 돌려 추석 때 먹었던 오리 집도 들르고 대학 때 가 봤던 용문사 은행나무도 보고 왔다.     


 

용문산과 뮤지엄 산


아침에 7시에 출발해 9시에 들어왔다. 노느라고 피곤한 줄도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콧물도 나고 몸이 찌부등했다. 11시에 문체부 인문 멘토링을 하고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잠결에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초로의 노인께서 상담하러 오셨다. 비몽사몽 간에 벌떡 일어나니 며느리가 얼른 “어머니 마스크요.” 한다. 주섬주섬 마스크를 찾아 일어서는 데 노인분이 벌써 들어오셨다.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앉기도 전에 말부터 꺼냈다.


수능 때까지 아이를 돌 봐줄 수 있냐고? 집으로 와서 해줄 수 있냐고 했다.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본인 스스로 정리해야지요.     


아니, 과외도 하고 다른 학원도 다녔는데 이제 학원에서 안 가르친단 말이욧. 학원이 끝났다구요. 졸업을 시켰다구요. 그러니 우리 집에 와서 해 주시오. 돈은 내 얼마든지 드리리다.      


한 달 앞둔 고3을 누가 맡으려고 해요. 지금은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정리하는 시기입니다. 수능 코앞에 두고 학생을 누가 가르쳐요. 죄송하지만 시간이 안 되겠는데요.     


정중히 거절을 했다.      


집으로 다른 과목은 선생들이 다 오고 있다니깐요.

그나저나 대학은 어디를 나왔소? 고3 학생들을 얼마나 가르쳤나요.

우리 애가 너무 바빠서 그러는데 집으로 와서 가르쳐 주면 안 되겠소?


작년에 성지랑 현아가 서울대를 가서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건 줄 알았다. 수업 받으려고 하는 아이가 마침 성지 다녔던 학교를 다니고 있어 풍문으로라도 듣고 왔는 줄 알았더니 간판 보고 그냥 들어왔단다.

계속 집으로 오셔서 가르치면 안 되겠냐고 했다.   

 

여긴, 학원인데요. 학원 원장이 누가 집으로까지 가서 가르쳐요.  

수능 한 달 앞두고는 학생들을 안 받고 있는데, 정 그러시다면 학원으로 보내주십시오.   

  

아니, 우리 애가 너무 바빠서 올 수가 없다니깐요.

돈은 맞춰드리리다.

정 안 되면 내일까지 다른 사람이라도 꼭좀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아이구 어쩌지요. 제 주변에는 소개해 드릴 선생님이 없네요. 저 역시 한 달 앞두고는 학생을 받지 않아요. 제가 아는 선생님들도 다 안 받으셔요. 입시가 걸린 문제라 부담이 너무 커서요.


우리 손주인데 막내라 그런지 애가 좀 그래요. 꼭 좀 연락을 주세요.     


마스크도 안 하고 들어오셔서는 집으로 오는 선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지나친 손자 사랑으로 애가 타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전해져왔다.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이 분을 내게 안내했던 며느리가 “저분 마스크도 안 끼고 들어왔어요. 요즘 누가 저러고 다녀요?”라며 놀라서 한 마디했다.      


나보고 집으로 와서 해달라는데? 돈은 다 맞춰줄 수 있다고.    

 

어머니, 하시지 마세요. 쫌 그래요.   

   

한 달 앞두고 누가 학생을 받아. 그동안에 내 책을 써야지.    

  

살짝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달만에 뭘 새롭게 가르칠 게 아니라 지금 다니고 있는 학생들처럼 수특. 수완 정리하고 취약한 부분만 메꿔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근데 “다른 선생들도 다 집으로 와서들 가르치고 있다”는 그 말이 계속 거슬렸다. 다른 선생들도 다 가르치는데 당신이 못 올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소리로 들렸다. “돈은 내 맞춰드리리다.”라는 말도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난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야. 내 직업은 높고 눈부셔. 천직으로 여기고 있지.”라는 쓸데없는 자부심 아니면 오만함이 있었나? 잠깐 동안이지만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젊은 날의 호기로움도 아니고 중년의 여유로움도 아니었다. 적어도 자본에 종속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가 돈으로부터 자유롭겠냐마는 그동안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었다.      


괜스레 기네스 한 캔만 마시게 됐다.                               


출처: Pixabay








제 책을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7855049    

http://www.yes24.com/Product/Goods/96006050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sc.prdNo=344141269&sc.saNo=003002001&bid1=search&bid2=product&bid3=title&bid4=001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88700745&orderClick=LEa&Kc=         




#부르는대로값을주리다 #뮤지엄산 #마인 #방문교사 #상담 #용문산은행나무

#진순희 #명문대합격글쓰기 #극강의공부PT

매거진의 이전글 쑤니 쑤니 쑤니이, 취향 확실한 여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