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간다고 아이들처럼 들떠 잠을 세 시간밖에 못 잤다. 시를 쓰는 K선생님과 C 선생님과의 가을 소풍 나들이었다. 소풍 짐을 꾸렸다.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고 냉동실에 있던 쑥떡을 미리 내놓고, 두유와 학원의 아이들 간식으로 준비해 놓은 과자도 몇 봉 챙겼다.
바람도 살짝 불고 햇볕은 적당했다. 구름은 있지만 기분 좋을 만큼 흐렸다. 하루를 온전히 나들이에만 쏟았다. 원주에 도착하니 웬일인지 너무도 조용했다. 월요일이 대체휴일이라 개관을 해 화요일에 쉬기 때문에 사람이 없었던 거였다. 드라마 <마인>에 나오는 곳도 다 찾아보고 싶었는데 계획이 무산됐다. 양평으로 차를 돌려 추석 때 먹었던 오리 집도 들르고 대학 때 가 봤던 용문사 은행나무도 보고 왔다.
아침에 7시에 출발해 9시에 들어왔다. 노느라고 피곤한 줄도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콧물도 나고 몸이 찌부등했다. 11시에 문체부 인문 멘토링을 하고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잠결에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초로의 노인께서 상담하러 오셨다. 비몽사몽 간에 벌떡 일어나니 며느리가 얼른 “어머니 마스크요.” 한다. 주섬주섬 마스크를 찾아 일어서는 데 노인분이 벌써 들어오셨다.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앉기도 전에 말부터 꺼냈다.
수능 때까지 아이를 돌 봐줄 수 있냐고? 집으로 와서 해줄 수 있냐고 했다.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본인 스스로 정리해야지요.
아니, 과외도 하고 다른 학원도 다녔는데 이제 학원에서 안 가르친단 말이욧. 학원이 끝났다구요. 졸업을 시켰다구요. 그러니 우리 집에 와서 해 주시오. 돈은 내 얼마든지 드리리다.
한 달 앞둔 고3을 누가 맡으려고 해요. 지금은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정리하는 시기입니다. 수능 코앞에 두고 학생을 누가 가르쳐요. 죄송하지만 시간이 안 되겠는데요.
정중히 거절을 했다.
집으로 다른 과목은 선생들이 다 오고 있다니깐요.
그나저나 대학은 어디를 나왔소? 고3 학생들을 얼마나 가르쳤나요.
우리 애가 너무 바빠서 그러는데 집으로 와서 가르쳐 주면 안 되겠소?
작년에 성지랑 현아가 서울대를 가서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건 줄 알았다. 수업 받으려고 하는 아이가 마침 성지 다녔던 학교를 다니고 있어 풍문으로라도 듣고 왔는 줄 알았더니 간판 보고 그냥 들어왔단다.
계속 집으로 오셔서 가르치면 안 되겠냐고 했다.
여긴, 학원인데요. 학원 원장이 누가 집으로까지 가서 가르쳐요.
수능 한 달 앞두고는 학생들을 안 받고 있는데요, 정 그러시다면 학원으로 보내주십시오.
아니, 우리 애가 너무 바빠서 올 수가 없다니깐요.
돈은 맞춰드리리다.
정 안 되면 내일까지 다른 사람이라도 꼭좀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아이구 어쩌지요. 제 주변에는 소개해 드릴 선생님이 없네요. 저 역시 한 달 앞두고는 학생을 받지 않아요. 제가 아는 선생님들도 다 안 받으셔요. 입시가 걸린 문제라 부담이 너무 커서요.
우리 손주인데 막내라 그런지 애가 좀 그래요. 꼭 좀 연락을 주세요.
마스크도 안 하고 들어오셔서는 집으로 오는 선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지나친 손자 사랑으로 애가 타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전해져왔다.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이 분을 내게 안내했던 며느리가 “저분 마스크도 안 끼고 들어왔어요. 요즘 누가 저러고 다녀요?”라며 놀라서 한 마디했다.
나보고 집으로 와서 해달라는데? 돈은 다 맞춰줄 수 있다고.
어머니, 하시지 마세요. 쫌 그래요.
한 달 앞두고 누가 학생을 받아. 그동안에 내 책을 써야지.
살짝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달만에 뭘 새롭게 가르칠 게 아니라 지금 다니고 있는 학생들처럼 수특. 수완 정리하고 취약한 부분만 메꿔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근데 “다른 선생들도 다 집으로 와서들 가르치고 있다”는 그 말이 계속 거슬렸다. 다른 선생들도 다 가르치는데 당신이 못 올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소리로 들렸다. “돈은 내 맞춰드리리다.”라는 말도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난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야. 내 직업은 높고 눈부셔. 천직으로 여기고 있지.”라는 쓸데없는 자부심 아니면 오만함이 있었나? 잠깐 동안이지만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젊은 날의 호기로움도 아니고 중년의 여유로움도 아니었다. 적어도 자본에 종속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가 돈으로부터 자유롭겠냐마는 그동안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었다.
괜스레 기네스 한 캔만 마시게 됐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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