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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치기
이영식
내 시에서 향기가 나질 않는다
꽃밭 수런거리는 봄밤 하얗게 갉으며 누에 기어가듯
언어를 밀고 다녀도
누구의 마음 한 자락 얽어매지 못한다
달 그림자 거실 창을 딛고 가는데 내 시에서
무슨 냄새라도 맡은 것일까
파리 한 마리 날아와 주위를 맴돈다
앞 뒷발 궁둥이까지 달싹거리며 뽕잎처럼 펼쳐진
원고지 위를 기어다닌다
단어 하나 하나 몸으로 짚어가다가 전환부에서 멈칫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시斜視 안경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무슨 결심이라도 굳힌 듯
허리에 힘 한번 쓰고 훌쩍 달아난다, 놈이
큰 머리 눌러 붙이고 고심하던 자리
무얼가, 까맣게 흘려놓은 점 하나
오디 씨눈만한 파리똥 꽃이 피었다
내 심상心象을 지긋이 눌러 다졌던
바로, 그 자리에―
나는 원고를 책상서랍 속에 깊이 넣고
다섯 잠 더 재우기로 했다.
- 이영식 시집 『공갈빵이 먹고 싶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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