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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허공을 떠돌지 않으려면

-대화하는 사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by 진순희
붙통-1.jpg https://blog.naver.com/ggccw/220318244242

절대로 맞출 수 없어서 자신들의 남편이나 아내를 세간에 떠도는 말로는 '로또'라고 한단다.

휴일을 맞아 모처럼 우리 집의 '로또'랑 함께 있게 됐다. 정적의 한낮 그냥 있기에도 갑갑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색한 고요를 낚아


"당신 공돈 생기면 지금 당장 뭘 하고 싶어요? 만약에 로또라도 당첨되면요?" 했더니


"임실 아지메 조카가 현대건설 과장으로 갔대." 한다. 묻는 말을 잘 못 들었나 싶어


"정말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했더니


":갸 큰일이네 아직도 놀고 있어서."


고시에 실패해 나이 먹고 있는 친정 조카만 애써 들먹인다.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져 말의 끈은 풀어져 내린다.


우리 집 '로또'의 생각은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까지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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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가 고소장 넣었대."


뜬금없이 대기업 회장 타령이다. 말이 비껴가고 있었다.


"이번 생일에 선물 뭐 받고 싶어요?"


재차 물어봤다. 한참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어! 잠깐잠깐, 언제 싱크대 틈새가 이렇게 벌어졌지."


하면서 싱크대로 쪼르르 달려간다. 글루건을 꺼내 틈새를 메운 다음 온 힘을 다해 마무리를 한다. 자기가 봐도 훌륭하게 됐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뚱딴지같은 말을 건넨다.


"당신, 서래마을에 155평짜리 빌라가 있는 거 알아? 지하가 80 미터나 되는데 대기업 회장이 산대."


같은 시공간에 함께 있어도 말은 요리조리 과녁을 빗나가 버린다. 허공을 둥둥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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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떠다니는 말들을 가까운 거리에 앉혀 놓게 할 수는 없을까?

대화를 아니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유대인의 밥상머리 자녀교육법>>에 성인들에게도 참고할 만한 대화법이 있어 몇 자 적어본다.

무거운 주제보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대화하기, 상대방에게 배우는 마음으로 대화 나누기, 먼저 경청하기, 적절하게 침묵하기, 공통점을 찾아 대화 하기, 입장 바꿔 생각하며 대화하기, 반응하고 공감해주기,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기, 격려하고 용기를 주며 칭찬하기,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의사소통방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천하기 쉽지 않은 방식이 바로 "경청하기"이다. 이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원활한 대화를 위한 필수 코스이다. 경청은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는 대화를 할 수 있게 한다.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서로 간의 공통점도 찾아낼 수 있어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울러 친밀감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또 잘 들음으로써 말로 인한 실수를 줄일 수 있게 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달변가가 아니라 경청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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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대화에 반응하고 공감해 주기이다. 반응과 공감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전폭적인 공감은 상대방과의 라포가 형성되어 말하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대화에 물이 오를 수밖에 없다. 공감의 부재 시대에 자신의 말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을 어느 누가 멀리하겠는가.


헤겔은 "마음의 문은 안에서만 열린다."라고 했다. 문을 열 수 있는 문고리는 밖이 아닌 내 안에 있음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만날 때 심리적인 방어벽을 치고 마주한다. 대문을 내가 먼저 열지 않으면 문고리를 꽉 부여잡고 오히려 열어주지 않는다. 반응하고 공감하지 않는 한 상대의 마음 문을 열기란 쉽지가 않다. 그나마 문고리를 부셔버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고, 공감하며 반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필요한 것이 역지사지하는 마음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다 보면 말의 홍수를 피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거리를 두고 적절하게 침묵하는 것이다. 대화의 뜸씨와 같은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절한 반응과 마음 깊은 공감을 넘어서는 침묵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오히려 소통이 더 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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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라일의 명언 중 '침묵은 말보다 더 큰 웅변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수다스러운 것보다 오히려 말 한하고 묵묵히 있는 사람의 말이 더 효과적임을 의미한다. 일례로 유명한 사상가인 에머슨과 역사가인 카알라일은 침묵으로 완벽한 대화를 했다고 회자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처음 만나서 한마디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있기만 했다. 약속한 1시간이 지나자,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정중하게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에머슨은 카알라일의 말에 동감의 표시로, 카알라일 역시 에머슨을 진정한 친구로 여기어 침묵했던 것이다.


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침묵은 대화의 숨겨진 카드다.

모른척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닌 한, 침묵에는 경청의 자세가 포함되어 있다. 공감과 수용의 태도를 안고 있다. 적절한 침묵이야말로 대화를 위한 비장의 무기이다.


말이 허공을 떠돌지 않게 하려면 대화하는 사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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