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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Feb 16. 20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파뿌리 하나씩은 갖고 있지

방학이라 문법 특강반을 개설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예비 중2인 애리가 수업 시간보다 20분이 훌쩍 지나서 왔다. 

왜 늦게 왔는지 눈으로 물어보고 있는데, 가방에서 책을 한가득 쏟아냈다. 책 무더기를 옆에 앉은 수지 쪽으로 밀어 넣으면서 푸념을 했다. 


제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거지요?


애리 어머니께서 애리 친구들을 몇 명 데려왔는데, 감사하게도 그 아이들이 읽어야 될 책을 한 번에 애리네 집으로 주문해 나눠주고 있다. 애리 어머니도 바깥일을 하고 있음에도 다른 어머니들이 일하느라 바쁘다며 당신이 매번 수고를 한다. 그것을 알기에 짐짓 밝은 목소리로 애리에게 말했다. 


애리야, 어머니께서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고 계시네. 우리 아이들 키울 때 주변에 애리 어머니 같은 분만 계셨어도, 편안하게 살았지 싶다. 다른 어머니들께서 무척 고마워하실 거야.


듣고 있던 애리가 수지를 보며 뾰로통하니 내뱉었다.  


아니~ 이이~ 그 착한 일을 엄마만 하면 됐지,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고요.


아이고, 애리가 많이 힘들었구나. 큰 일 하시네. 애리야 네가 애쓴 것은 분명해. 근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투덜대면 너의 수고가 빛이 안 날 것 같은데.


빛이라고요? 빛 따위는 필요 없어요. 


갑자기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가 생각났다. 애리한테 '평판'이나 '빛' 따위는 필요도 없으니 나를 귀찮게만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애리가 계속 툴툴거리다 보니, 듣다 못한 수지가 짜증을 확 냈다. 

"그래, 미안해. 미안하게 됐다고. 그럼 됐어?." 

수지의 가시 돋친 반응에 분위기가 급랭전선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파 뿌리의 지옥,   파 뿌리의 천국」에 나온 일화를 말해줬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파 뿌리와 관련된 두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는 욕심 사나운 노파에 관한 것이다. 아주 인색하기 짝이 없는 노파가 지옥에 가 지옥불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수호천사가 나타난다. 살아생전에 저 노파가 거지에게 파 한 뿌리를 주며 선행한 적이 있으니 선처해달라고 하나님께 청을 한다. 

하나님은 수전노 같은 노파가 그래도 파 한 뿌리의 작은 선행이라고 베푼 적이 있으니 기억하고 있다며 천국행을 허락한다. 의기양양해진 노파가 파 뿌리를 붙잡고 지옥불에서 빠져나오려는 찰나에 지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 파뿌리에 아귀처럼 달라붙는다. 이기심이 발동한 노파가 달라붙는 손길을 뿌리치며 "내 파 뿌리야"라고 소리친다. 그  순간 파 뿌리는 끊어지고 모두들 지옥불에 떨어져 버린다. 


두 번째 이야기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셋째 아들 알료사와 관한 것이다.

수도원에서 견습 수도사의 길을 걷는 그는 장차 수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던 알료샤는 존경하던 조시마 장로가 죽은 뒤 몸이 썩는 것을 보자 창녀를 찾아가 고백한다. 수사가 되기는 틀렸다고. 고결한 성자도 저렇게 되는데 이미 자신은 죄인이기에 다 글러먹었다고 체념한다. 이때 창녀는 알료사에게 파 뿌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날 밤 알료사의 꿈에 조시마 장로가 나타나 천국에서 잔치가 열렸다며 알료사를 초대한다. 

거기는 천국이라 못 가겠다고 버티는 그에게 조시마 장로는 단언한다. 


"무슨 소리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파뿌리들"이라고.



구제불능이고 이기적인 인간들도 각자가 붙들어 둘 파 뿌리 하나씩은 있었던 거라고. 지극히 선량하지도 않는 보통의 인간들도 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고 지나치지 않기에 천국은 지금 만원이다. 가까스로 파 뿌리 붙잡고 올라온 평범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발 디딜 틈이 없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성으로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기에 사람들이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거라고 이어령 교수는 말한다.  


김지수 작가는 도움을 요청하는 '리퀘스터 Requeter'의 중요성을 말한다. 성공한 사람 중에는 도움을 받기만 하는 '테이커 taker' 보다는 도움을 주는 '기버 giver'가 많다. 하지만 그는 '기버' 못지않게 '리퀘스터'로서의 역할에 더 큰 방점을 찍는다. 부탁하고  도움을 청하는 일은 도움을 주는 그 사람들의 천국행 티켓을 따게 하는 일이기에 오히려 역동적인 것이란다.  


한참을 '파 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평소의 수지답지 않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음이 상해버린 수지가 애리하고 눈도 맞추지도 않고 그냥 책만 봤다. 다시 한번 집중하도록 나의 경험을 늘어놨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첫사랑이나 가르치는 선생의 개인적인 일에 관심이 많다. 분위기를 잡기 위해 어찌 보면 쓸데없는 강수를 뒀다.

   

얘들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엄청 친절해. 말 그대로 주책일 정도로 오지랖이 넓어. 어떤 때는 내가 왜 이럴까 나 조차도 싫어질 만큼 친절하거든.  최근에 있었던 그 일은 내게 큰 상처를 남겼어. 

신호등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건너지를 않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할머니께 "제가 이 동네 살아서 지리를 잘 아는데, 혹시 찾으시는 데 있으시냐"라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물었지. 그렇도 미소 띤 얼굴로 말이야. 그렇게 물었다가 사람들 많은 데서 그 할머니에게 쌍욕을 들었거든.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말 시키냐"라고. 괜한 친절 베풀었다가 봉변을 당했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주변의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할 정로도 창피를 당했어. 도망치듯 뛰어가면서 내 발등을 찍었지. 그럼에도 나는 타인에게 친절하는 것을 멈추지 못해. 그냥 예전처럼 환대하며 사람들을 맞이하지. 


내가 특별히 이타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성'으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야. 남들에게 베풀면 우리 아들들에게 복은 아니어도 적어도 해는 피해 갈 거라는 믿음이 있어. 얄팍하지만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베풀고 있는지도 몰라. 


오늘 누군가의 요청을 들어준 것, 
친절하게 누군가를 맞이한 것
내가 가진 재능과 물질을 나눠준 것
도움을 청하는 '리퀘스터 Requeter'는  한 가닥 파 뿌리로서의 기회를 내게 주는 셈이지.  


얘들아, 너무 교훈적인 이야기인 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행하는 이에게 축복이 되는 삶이라고  봐. 


수업이 끝날 때쯤 마지못해 수지가 애리한테 말을 붙였다.

먼저 가겠노라고. 

남겨진 애리가 어찌할 지 모르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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