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사용 설명서』
『NFT 사용 설명서』에 따르면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이라고 불리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수집품’에 대해 꽤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다라고 소개한다.
『NFT 사용 설명서』를 읽으며 읽는 내내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단 가상 화폐, 비트코인, 암호 화폐와 같은 이런 용어가 익숙지가 않다. 나만 어렵고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나 싶어 리뷰를 검색해봤다.
리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졌는데 하나는 NFT가 뭔지 알고 싶어 읽기 시작했지만 나처럼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과 이것이 책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그렇다. 분명 NFT로 수익을 올리고 있고 아주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NFT에 대한 무지는 기필코 내 문제인 듯 싶다.
또 한 측면은 NFT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쓴 것이 틀림없었다. 기대에 차서 샀지만 상식적이고 다 아는 것만 쓰여 있어 반토막 가격으로 중고서점에 팔았다는 내용이었다. 조금이라도 NFT에 대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을 이 책 살 필요 없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최종 마무리는 ‘어이없다’였다.
그런데 어쩌랴. 기본 지식이 없는 나는 도통 외계어 같아 그냥 글자를 읽는 수준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따박따박 정독하고 있는데, 『NFT 사용 설명서』는 마치 이해하기 어려운 전자 기기 사용설명서 같다. 설명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사용하기 더 어려운 고난도의 설명서라고나 할까. 설명서 읽기보다는 오히려 전자 기기 잘 다루는 사람한테 사용법을 배우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처럼 NFT도 실제 오픈시에 내 작품을 올려보는 실습을 해봐야 제대로 알 것 같다.
설명서라는 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이어야 하는데, 사전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집중해서 읽기가 어려웠다. NFT에 대해 이해를 하려면 우선 디지털 아트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chapter 4 NFT의 역사> 부분이다.
디지털 아트의 시작을 알리는 데즈먼드 폴 헨리의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헨리는 멘체스터의 한 군수품 창고에서 쓸 수 없는 폭격 조준용 컴퓨터를 발견한다. 이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탄을 폭격기에 탑재해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정확한 시점을 계산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거였다. 예술활동에 활용하기 위해 헨리는 폭격 조준용 컴퓨터로 시각화할 계획을 세웠다. 기계 팔 끝에 펜 한 자루가 달린 플로터 한 대를 컴퓨터에 매달고 다양한 실험을 했다. 출력 장치인 플로터는 컴퓨터의 기계 부품에 전적으로 의존한, 말하자면 ‘기계적인 우연’에 의한 ‘헨리 드로잉 머신’이었다. 기계 부품이 바뀔 때마다 그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예술성을 갖게 했다. ‘부정확한 구조’는 헨리의 작품을 복제하거나 대량 생산이 불가능함을 의미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은 하나하나가 유니크했다.
헨리가 1950년대에 헨리 드로잉 머신을 만들었을 대, 헨리는 미술계가 그의 작품을 미술로 인정해줄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헨리는 자신의 작품이 예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초기 디지털 아티스트들은 장벽을 부수고 온몸으로 멸시를 받아냈다.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아트는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도 비로소 디지털아트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NFT 사용 설명서』, 162-163쪽
자신의 작품에 대해 미술계가 예술로 인정해줄지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라든가 자신의 작품이 예술이라는 신념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놀라웠다.
내가 쓰는 시가 제대로 된 시인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는지 늘 나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가 되어 그의 결연한 태도가 부러웠다.
사이버펑크가 NFT를 만난 과정도 꽤 흥미로웠다.
예술가가 살아서 인정을 받는 일은 천운이 따라야 할 정도로 아주 드문 일이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6,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작품을 판매한 비플의 이야기는 눈부시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본명이 마이클 윈켈만인 비플은 퍼듀대학을 졸업하자 사회생활을 웹디자이너로 시작했다. 가상세계와 디지털 창작에 빠져든 그는 예술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2007년경 스케치 아티스트 톰 주드를 벤치마킹했다. 매일 한 장씩 그려 0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실력이 늘어 완성한다는 콘셉트는 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비플은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렸다. <에브리데이즈>의 주제로 사이버펑크를 선택해 굳건한 팬 기반을 구축했다.
자신이 사랑한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성공을 거둔 비플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그리기로 자신만의 리츄얼을 행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아직도 자신의 작품이 부족하다고 겸양을 보이는 그의 태도가 성공을 거둔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미디어 브랜드 더 퓨처 The Futer의 크리스 도 Chris Do는 그의 창작 과정을 1년에 365번의 마라톤을 뛰는 마이클 샤턱Michael Shattuck에 비유하기도 했다.”
“늘 겸손한 마이클 윈켈만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모션 디자인이 형편없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한 명의 예술가가 성장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오픈 채팅방에 NFT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다. 심지어 NFT 방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마치 1637년 1월 튤립 열풍처럼 인식됐다. 하루에 두세 배, 한 달에 몇천 퍼센트가 오른 것처럼 NFT도 하기만 하면 금방 돈을 벌 수 있는 듯이, 안 하면 마치 낙오자가 되는 것인 양 부추긴다.
"황제"라는 튤립 구근은 하나에 2500 길더였다. 이는 살찐 돼지 8마리, 살찐 황소 4마리, 살찐 양 12마리, 밀 24톤, 와인 2통(240~630리터), 맥주 600리터, 버터 2톤, 치즈 450킬로그램, 은 술잔, 옷감 108킬로그램, 그리고 침대 세트까지, 이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나무 위키)
참고로 아래 그림은 황제 튤립(Semper Augustus)이다. 라틴어로 '영원한 황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구근은 2년 만에 뿌리의 가치가 200% 이상 상승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NFT의 미래는 역사 속의 튤립 피버처럼 될 것 같지는 않다. 플라스틱 카드가 지금 완전 자리 잡은 것처럼 NFT의 향후 전망은 긍정적이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디지털 아트가 미술계를 장악할 것이라기보다는 NFT가 디지털 경제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기에.
『NFT 사용 설명서』에서는 “NFT의 가장 중요한 쓰임새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라고 확언한다. NFT는 사실 사업으로 치면 초창기인 셈이다. 사업이 흥할지 망할지는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 신사업이라고 할 수 NFT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NFT에 대한 개념이라도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려고 한다. 마침 운 좋게도 오늘 독서 모임에서는 상당 부분의 NFT 자산을 갖고 계신 분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