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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r 23. 2022

『이어령, 80년 생각』,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이 사라졌다

『이어령, 80년 생각』을 읽으며 떠오른 단어는 ‘도서관’이었다.

그것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말이다.


 “노인 한 명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너무도 유명한 이 구절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소설가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ete Ba)가 1962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한 말이다. ‘어른’을 지식의 보고로 인식한 아프리카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도서관’은 지적인 행위를 할 수 있게 하는 곳으로, 인류 지성의 결과물들이 결집된 곳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불타 없어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코스모스』에는 고대의 과학과 탐구 정신의 본령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곳곳에 묻어난다.  


    

내게 이어령 선생의 별세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 것처럼 다가왔다.

『이어령, 80년 생각』은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 김민희 편집장이 이어령 교수를 5년 동안 100시간 넘게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이어령 교수하면 ‘창조’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데, 그 근간을 이룬 것은 ‘자기 머리로 생각해내는 것에 있었다.   




   

70억 지구인 중에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모든 사람은 각자 고유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은 제각각 소중해요. 내 생각도 내 머리로 하는 고유의 생각 중 하나라는 거지.  60~61쪽     



이 글에서는 자기 머리로 생각해 낸 사람으로서 ‘백락’의 입장이 되어 대응한 사례에 대해 소개해 볼까 한다.       

창조적 생각의 지도를 그려왔던 이어령 선생은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 되기를 자처했다.

작가 이상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나에게 감동을 준 최초의 작가”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상을 높이 평가했다.


 “다른 작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지만 이상은 달랐어요. 도시의 문패와 번지수로 설명되는 자아를 노래했지.”

『이어령, 80년 생각』, 73쪽



작가 이상이 활동하던 당시에 기존 소설가들은 농촌을 기반으로 글을 쓴 것에 비해 이상은 도시 문명, 갈등과 자의식을 노래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중시한 이어령 선생은 이상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자신에게 감동을 안겨 준 최초의 작가로 인식했다. 이상의 작품 상당수를 발굴해 《문학사상》에 실었음은 물론 더벅머리 이상의 사진도 찾아내 올렸다.  


    

잊힐 뻔했던 천재 작가 이상을 발굴해 냈그의 혜안은 문화 예술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080년대 말 뉴욕에서 연구생활 중이던 이어령 선생은 한글 프로그램 ‘글’의 초판을 접하고 난 직후 개발자인 당시 서울대 기계공학과 3학년이던 이찬진에게 전화를 걸어 “번들로 대기업에 팔지 말고 독자적으로 키워보라고 당부”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시 과학기술처 이상희 장관과 식사 자리를 주선해 이찬진을 직접 챙기며 결실을 맺도록 도움을 준다.       



이어령 선생작가로서 학자와 예술가, 경영자와 문화 창조자로서의 창조력과 통찰력이 드러난 사례 등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어령 선생의 언어에 대한 탁월함은 뭐니 뭐니 해도 “말에 양념하는 솜씨의 비법”에 있을 것이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이어령 선생이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한국의 문화 풍토’에 대해 연재 형식의 글을 써달라고 했을 때 쓴 글이다. 당시엔 신문이나 책 제목이 으레 한자 투였단다. 지리 교과서 같이 딱딱한 ‘풍토(風土)’라는 말을 우리말로 풀어서 ‘풍’을 ‘바람’으로 ‘토’를 ‘흙’으로 바꿨다. 흙냄새, 바람결이 몸에 와닿는 것 같은 말이 됐지만 이어령 선생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바람 속에 흙 속에’로 하지 않고 ‘풍토’의 순서를 바꿔서 ‘흙 속에 바람 속에’라는 시적 감각어로 변신을 했다.    


  


“‘풍토’의 어순을 바꾸고, 한자어를 토착어로 바꿔 숨결을 불어넣기”는 ‘갓길’이라는 언어의 탄생 과정에도 적용됐다.

‘갓길’의 원래의 말은 ‘길어깨(노견(路肩)’이었다. 길어깨는 영어의 ‘Road Shoulder'를 일본에서 직역한 말인 ‘노견’인데, 이것을 ‘갓길’, ‘길섶’, ‘곁길’의 ‘노변(路邊)’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 다음 ‘노변’의 순서를 뒤집어 ‘변로’로 생각한 다음 다시 한번 순우리말로 바꿔 ‘갓길’이 탄생됐다.  


          

‘내 머리로 생각하기’의 하이라이트는 소설가 남정현의 『분지(糞地) 』 사건이다.

『분지(糞地) 』는 미군의 패권의식과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도발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소설의 내용과 관련해서 가만히 있을 리 없던 정부는 급기야 남정현 작가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기에 이른다.

1967년 군부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이어령 교수는 증인으로 나섰다. 이어령 선생은 이 소설은 반미도, 친미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 유명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발언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작가는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작가 남 씨가 가리키는 달은 주체적인 한국 문화이며 어머니로 상징되는 조국이다. 장미의 뿌리는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 있는 것이므로, 설령 어느 신사가 애용하는 파이프를 만드는 데 장미 뿌리가 쓰였다고 해서 ‘장이 뿌리는 파이프를 위해서 자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어령, 80년 생각』, 121쪽          



반전된 분위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검사는 “이 소설을 읽고 엄청난 용공성에 놀랐는데 증인은 놀라지 않냐고” 다그쳤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신문기사가 아니다.”


라고 순발력 있는 멋진 은유로 대응해 분위기를 역전시 장내를 휘어잡았다.


출처: https://bit.ly/3IFJVJm- 김정운의 남자의 물건① 李御寧의 책상:   李御寧은 책상에서 언어의 사열을 받는다.


이어령 선생의 모든 활동과 대응 능력이 “무엇이든 내 머리로 생각”해온 결과이다. ‘독립된 주체로’ 우뚝 서는 삶은 “하루를 살아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삶”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갓길 장관이요’하고 소개하는 선생의 ‘창조’와 관련된 생각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개인적인 창조보다는 그것이 사회성을 얻고, 역사성을 얻었을 때 티끌만 한 것도 자랑스러워. ‘창조’를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역사와 사회의 일각을 바꿀 수 있는 창조야말로 의미 있는 창조지. 그런 창조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이어령, 80년 생각』, 354쪽     



이어령 선생의 별세 소식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처럼 이어령 선생의 생각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책으로 영상으로 살아 움직이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출처: http://www.economyf.com/m/view.asp?idx=6422


『이어령, 80년 생각』에 나타난 이어령 선생처럼

젊은 사람들의 백락이 되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반드시 될 것이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삶을 살아내면서 “뜬소문이나 가짜 뉴스, 음모론에 휩쓸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의 힘을 가진 지식인”으로 살아갈 터이다.

“독립된 주체”로 우뚝 서서 내게 알맞은 걸음으로 걸어갈 것이다.

이어령 선생의 창조의 기록을 되짚어가며 다시 한번 결의를 다져본다.           


  




내 마음에 남은 글귀들    

 "평탄할 때에는 만인이 평등해. 욕망도 비슷하고 별 차이가 없어. 그런데 위기의 순간이 오면 창조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커지지." (p.24)   

 "질투 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내가 비참해지잖아. 대신 그 사람을 돕는 거지. 그러면 천재의 작업을 같이 하는 거니까."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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