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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Feb 21. 2023

지금 나는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후기-[은유의 문장들]-지금 나는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벽에 공부하는 이! 지혜를 얻을 지어다.      

 

일요일 아침 7시마다 5주 동안 한근태 박사님의 고수 독서에 참여하고 있다.  

 ‘고수 독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독서 모임의 정점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동안 참여해온 독서 모임과 차원이 다르다. 일단 수업 이틀 전에 정해진 필독서를 <본 것 ․ 깨달은 것․ 적용할 것>이라는 포맷에 채워 넣어야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후속 질문까지 있다. 수업 후에는 참여하고 나서의 후기까지 3줄 이상 올려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상하게도 내가 참여하는 모임마다 열정을 몸 곳곳에 장착한 활화산 같은 분들만 모인다. 3줄 이상만 쓰면 된다는 데도 10줄 이상 심지어 아예 한 편의 글을 써 버리는 사람도 있다.       

 

한근태 교수님의 독서 모임 진행 상황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수 독서 모임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독서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냥 깔끔하게 남과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란다. ‘차별화’이다.  

  

일년에 5권씩 책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지식 냉장고가 있기 때문이다. 1000개의 폴더에 쌓여 있는 메모더미를 반복해서 읽으며 정리한다. ‘메모’하는 목적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다. 어딘가에 정리해 놓았다는 안도감 이다. 책, 신문 등을 읽자마자 메모장에 쓴다. 메모더미에 정리하면서 글을 쓴다. 1000개의 폴더를 Ctrl+c, Ctrl+v 하면서 체계를 잡는다. 필사하고 다시 보고 말로 해보면서 내가 원할 때 쓸 수 있는 정보를 만든다. 글은 생각으로 쓰는 게 아니었다. 메모더미에 있는 정보들을 주제에 맞게 분류해 책으로 출간한다. 책이 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책이 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저자로서 퍼스널 브랜딩이 되기 때문이리라. 독서 모임으로, 컨설팅으로 강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에버 노트를 잘 못해서, 노션을 익숙하게 잘 활용 못해서 1년에 책 한 권도 못 내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소장님의 방식은 아주 심플했다. 폴더 만들어서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하는 거, 그게 다였다. 일껏 정리해 놓고도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나와 달랐다. 수집한 자료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필요한 곳으로 옮기거나 다시 묶는다는 데 있었다. 반복만이 탁월해 지는 비결이었다.  

아휴, 가르치는 아이들한테는 “짧게 자주 여러 번 반복해야만 탁월해질 거야”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정작 나는 안 하고 있었다.       



1년에 5권씩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제텔카스텐을 활용한 지식냉장고였다. 

독일의 니클라스 루만 사회학 교수가 사용했다는 노트 기록 시스템인 제텔카스텐(Zettelkasten)은 일종의 카드 색인과 같다. “노트 상자” 또는 “메모 상자” “아이디어 상자”를 뜻하는 제텔카스텐을 활용했을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필요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작성되는 하이퍼텍스트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Hub를 통해 재분배되는 “Hub & Spoke” 시스템이 구축된다. 





박사논문을 제대로 써보겠다고 독일에서 유학한 교수님께 논문 쓰기 지도를 받을 때였다. 당신이 독일에서 활용하시던 나무 카드 함을 갖고 와서 설명하셨다. 나무 함에는 종이 카드가 가지런히 들어있었고, 그 카드를 필요에 따라 이쪽저쪽 옮기며 쓰면 된다고 했다. 안 되려고 했는지, 보면서 크게 와 닿지가 않았다. 효율적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키워드를 엑셀로 정리하면 더 낫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이후 내가 엑셀로 정리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저 효율성만 따지고 있었다.   

 

근래들어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진 느낌이다. 강사 학교가 잘 만들어져서 1주차도 끝났다. 수강하는 강사분들의 열망을 알기에 책임감이 막중하다. 8주 과정이 끝남과 동시에 투입한 비용만큼 수익을 만들어드려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할 것이 너무 많다 보니 마음만 바쁘다. 전화로 응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막상 하루를 정리하면 크게 결과물이 없었다. 모두 진행 중인 과정으로 과정, 과정의 연속이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의 미진한 느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명료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오늘 한교수님으로부터 ‘가짜 노동’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새벽 시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결코 들어보지 못할 내용이었다.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라는 부제를 단 『가짜 노동』은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의 관점을 담아낸 책이다. 이 책 「3장 노동의 본질과 변화」 에 보면 ‘가짜 노동’이란 용어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괄할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이 필요했단다. 



텅빈 노동에 적확한 “가짜 노동pseudework”이라는 적당한 용어를 찾아냈다. 이것의 특징을 읽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노동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노동은 아닌 업무’. 가짜 노동의 특질을 이 보다 더 명쾌하게 정리할 순 없을 것 같다. 가짜 노동을 하면 실질적인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진다는 함정이 있다. “무의미하지 않은가 의심되는 업무가 있다면” 이것이 바로 ‘가짜 노동’이란다. ““무의미한 접시 돌리기”, “헛짓거리”, “텅빈 노동”은 빈둥거리기도 하지만 나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서류 정리를 다시 한다든지 하는 일 역시 가짜 노동이라고 지적한다.      





메신저 강사 학교에 필요한 업무이기는 하나 오픈톡방마다 홍보 다니고 댓글 쓰다 보면 정말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8주가 지나야 하기에 아직은 결과물이 뚜렷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일의 완결이 없이 그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익화 하고 싶은 분들게 강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어찌 '텅빈 노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짜 노동은 아니겠지만 단순한 일을 하고 있다보면 허허로운 느낌이 든다.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무를 책임져줄 스텝을 고용했다. 이런 아이디어가 나온 것도 사실은 아침 독서 모임에서 비롯됐다. “공부로 새벽을 깨우는 자, 지혜를 부르나니.”     


존재론적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


'공부'가 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공부의 목적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에리히 프롬을 떠올렸다. 프롬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방식을 '소유적 실존 양식'과 '존재적 실존 양식'으로 구분했다. 소유에서 벗어나 세계와 하나 되는 방식이 존재적 실존 양식이라면 소유적 실존 양식은 소유물과 동일시함으로써 세계와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소유적 실존 양식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공부란 권력추구의 수단이 되지만 존재적 실존 양식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공부는 내면의 새로운 사고를 일으키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소유론적인 공부를 해왔음에 틀림이 없다. 물론 공부하면서 내면의 충만함을 느끼고 성장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내가 해 온 공부는 내면의 새로운 사고를 일으키기 보다는 살아가기 급급한 일차원적인 공부에 지나지 않았다. 내면을 성장시키는 공부가 아닌 그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아내기 위해 생존 공부에 머물렀다.      



한자 공부만 해도 그렇다. 1학기 수시가 있었던 때에는 S대 일부 학과에 한자 자격증 2급만 있어도 내신 성적만 보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나 역시 한자 자격증 1급을 땄다. 40일 동안 하루 16시간씩 독서실에서 머물며 공부했다. 일하기 위해 공부한 셈이다. 영혼이 자유로운 남자와 살다 보니 언제나 2인분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들어앉아 있다. 아이들도 제 앞가림해서 이제는 안 그래도 되는데 아직도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질문의 힘     


챗GPT로 난리다. 검색하기 위한 문장을 쓰거나 키워드만 넣어도 썩 괜찮은 대답을 순식간에 우르르 쏟아낸다고 해서 장안의 화제다. 이제는 오픈톡방에서의 프로그램 개설도 챗GPT가 들어가지 않으면 모객이 되지를 않는다. 글쓰기, 책쓰기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나 역시 챗GPT의 등장은 위기의식을 갖게 한다. 그런데 챗GPT를 몇 번 해보니 좋은 질문을 해야 알찬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질문하는 힘이 답이였다. 질문하는 힘은 읽고 쓰면서 뇌의 역량을 길러놨을 때 강력해진다. 자신의 힘으로 하는 자가동력이 될 때 질문하는 힘도 길러진다.     



새벽을 깨우며 하는 고수 독서 모임을 통해 공부에 대한 생각을 재점검하게 되었다. 가짜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됐다. 심기일전을 하며 시각을 다르게 가졌다. 그동안 내가 해온 공부를 얕은 공부였다고 폄하하기 보다는 생각을 바꾸려 한다. 두루두루 한 공부였기에 다방면에 적용할 수 있다고 태세 전환을 했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강점을 극대화 하면서 개념에 천착해 문사철 인문공부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고. 



참고로 강점과 단점에 대한 한근태 교수님의 명쾌한 정의가 있어 소개한다. 
강점: 돛을 높이 올리는 것'
단점: 배의 바닥에 난 구멍과 같은 것.
 구멍을 막으면 단지 가라앉지 않을 뿐이다. 순풍에 돛을 달 듯이 강점을 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수독서 #은유의문장들 #가짜노동 #제텔카스텐 #HUB & SPOKE



 

     



중앙대 미래교육원의 "진순희의 돈이 되는 책 쓰기"과정이 개설됐습니다~^^


https://bit.ly/3XOV035

미래교육원 능력 개발

lifelong.cau.ac.kr







제 책을 소개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 ItemId=25785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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