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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May 29. 2023

두고 보자

잘 지내

갈치의 가장 맛있는 두 토막을 버렸다. 생물로 사 온 그것을 무를 깔고 생강술과 간장을 넣어 졸였었다. 커다란 접시에 가운데 토막만을 담아 큰아이와 남편이 먹고 나는 무조림을 먹었다. 생선을 좋아하는 둘째 생각이 나서 남은 한 마리의 제일 두툼하고 보드라운 토막을 남겨두었다. 코로나로 학교에 가보지 못하고 군에 입대했던 아이는 제대하고 곧 작업실을 얻었고 개강 후엔 몹시 바빠졌다. 집에 들어와도 좋아하는 우렁된장찌개도 오이소박이도 몇 번 먹지 못하고 학교로 작업실로 나가버렸다.

냄비에 코를 대고 킁킁대다 이제 이런 날이 많겠지라고 생각했다.


잘 지내?

내게 이런 걸 묻는다.


오래전에 내게 아빠가 있었을 때 갔었던 홍은동의 호텔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유럽 어느 나라의 이름을 붙인 호텔이었다. 사촌들과 수영장에서 놀던 기억, 천장에 비치던 물그림자, 베드에 누워 듣던 목소리들. 할머니의 생일파티, 막내고모의 졸업식들이 기억난다. 늦은 오후에 사촌들과 내리막길을 뛰다시피 걸어 내려오던 기분은 늘 근사했었다. 사촌들도 아빠도 고모들도 모두 없지만 어딘가에 갔다가 막히는 내부간선로를 타고 집에 올 때 얼굴을 돌려 아코디언처럼 생긴 그 호텔의 건물을 보면 슬쩍 눈물이 돌기도 했다. 이제 영영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

가끔 로드뷰에 돌려 보는 우리 집의 옛 주소, 160-24 같은 걸 아직도 외우고 있는 미련한 마음은 잘 지내는 사람의 것이 아닐지 모른다.


살아가는 일은 아무도 먹지 않았지만 냄비에 그대로 남겨두는 갈치 토막 같은 것은 아닌가 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냄비의 뚜껑을 열어 보는 일과 같은 것, 오래 거기 있던 산을 가리지 않고 새둥지처럼 야트 막히게 지은 건물을 내버려 두는 일, 거기 유모차를 밀고 성탄절 저녁식사를 하러 들어오는 어린 부부를 기다리는 일, 그러다가 조금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다음에 같은 일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은 통하지 않나 보다.


잘 지내냐고 묻는 내게 대체로라고 대답한다.

샤워하는 물소리가 그쳤다. 아이가 곧 식탁에 앉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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