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냐 Jul 03. 2023

엄마 미안해

아들 아니고 딸

올 때 간이의자 좀 가져와, 너네 집 그 화분 올려 둔 거.

아이들이 어릴 때만큼 밥을 먹지 않아서 여름김치를 담지 않아도 된 지가 조금 되었다. 게다가 작년엔 속을 너무 많이 무쳐 배추를 사다 김장을 한 번 더 했기에 김치냉장고에 아직 두 통이나 김장김치가 남아있다.

 작년에 엄마는 집을 고쳐 이사하면서 식탁의자를 하나 멋으로 넣었었다. 아일랜드 식탁에 놓는 것이라 바스툴처럼 높은 의자다. 지난번엔 고춧가루를 가져다 드렸다. 외숙모가 아파 혼자 지내는 외삼촌의 반찬을 해 나르느라 엄마는 봄부터 열무며 오이김치 같은 것을 담느라 바빴다.  작년가을에 사드린 고춧가루를 다 썼다고 했다. 삼촌이 자주 들러 같이 시간을 보내니 의자 하나가 부족했었나 보다. 김치 가지러 오라는 말끝에 집에 있는 의자를 하나 들고 오라는 것이다.

구색도 맞지 않는 의자를 가져가는 게 마뜩잖아서 가구 매장에 뛰어내려 가서 겨우 거의 비슷한 의자를 사서 가져갔다.

끙끙대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쓰면서 큰소리로 있는 거 가져오랬지, 뭐 하러 돈을 쓰고 사 왔냐고 한다.


왜 그랬을까, 맨날 집에 있으면 무엇 좀 가져와라,  안 쓰는 무엇 무엇 없느냐... 하는 엄마말이 싫었을까. 미안하고 겸연쩍어 그러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짜증을 내고 말았다.

엄마, 그냥 좋네. 사 오느라 고생했네. 그럼 안돼? 갑자기 필요하다는 말에 기껏 헐레벌떡 나가 사가지고 온 사람한테 꼭 그래야 해? 그럼 다음부턴 아들한테 사 오라고 해

내가 가져온 마트장바구니엔 엄마가 좋아하는 참외랑 있으면 가져오라던 국물멸치, 호두, 밀폐용기... 같은 것들이 또 한가득이다.

무심코 화를 내놓고 나도 제풀에 놀라 수박을 잘라먹으면서 몇 마디 말을 건네니 엄마는 안 들리는 사람처럼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슬떨이. 아침에 이슬이 잔뜩 내린 풀밭을 먼저 걸어간 그이로 인해 다음에 걷는 이의 옷은 젖지 않는다. 평생을 안간힘을 쓰고 새벽길을 먼저 일어나 나 대신 이슬에 기꺼이 젖던 엄마다.

 다 알면서 왜 나는 참지 못하고 그랬을까.

아마도 다음부터 아들한테 말하라는 그 말이 제일 속상했을 거다. 그렇다고 내 동생이 엄마에게 불효자라든가 무심하게 구는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결혼한 아들은 평생 짝사랑해 온 어려운 존재라서 그렇다. 우리 집에서 쓰지 않는 무엇은 아들집에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가져오라는 것이 대단한 것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저녁 먹으러 오라는 말도 김치 가져가란 말도 엄마는 아들에게는 잘하지 않는다.

괜히 엄마집을 이 방 저 방 돌며 중얼거리다가 엄마가 사주는 저녁밥을 먹으러 나갔다. 전복이며 낙지를 잘라 엄마 접시에 덜어 놓고 별말 없이 밥을 먹었다. 들어와 엄마가 깎아주는 참외를 먹으며 티브이를 보았다.

저렇게 놓으니 꼭 맞춤이네, 삼촌이 오면 식탁보다 저기 앉아있을 때가 많아서 나는 서 있곤 했는데 참 좋다.

일부러 들으라고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엄마는 우리 둘째 좋아하는 식혜에 큰아이가 좋아하는 깍두기랑 새로 담은 배추포기김치, 살구쨈, 마늘 찧어 얼려놓은 것들을 보자기로 묶어 담는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그것들을 겨우 밀어 넣고 자려고 보니 엄마한테 카톡이 없다. 늘 도착할 쯤에 잘 들어갔니? 하던 엄마의 카톡.


바짓단이 늘 젖어 있어도 여태 축축하다는 한마디 없이 꿋꿋했던 우리 엄마를 내가 흔들어 놓고 왔나 보다. 엄마가 이번에는 엿기름이 좋지 않았는지 별맛이 없다며 담아 준 식혜를 꺼내 마신다.

정말 별맛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다정하기 그렇게 어려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