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동안 지킨 직업상담사의 자리에서 다시 바라본 본질
1. “그냥 뭐 직업 하나 추천해 주세요”라는 말 앞에서
“요즘 취업 잘 되는 자격증이 뭐예요?”
“이력서 좀 봐주세요”
“알바라도 있으면 알려주세요.”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처음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누군가의 인생이 걸려 있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 나를 마치 ‘정보 제공자’처럼 생각하는 그 시선이 조금 서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들 속에는 그만큼의 ‘지침’이 숨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래서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이 사람이 정말 필요한 건 ‘정보’일까? 아니면, ‘나를 들어주는 한 사람’일까?
직업상담은 단순히 정보나 제도를 ‘알려주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에서 상담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사무직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내담자가 있다면, 나는 그 말 뒤에 숨겨진 질문을 던진다. 왜 사무직인가요? 예전에 어떤 경험이 있었나요? 그 선택은 본인의 진심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말에 흔들린 결과인가요? 그런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진짜 이유가 드러나고, 진짜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가 진짜 상담의 시작이다. 정보를 주는 건 그 이후의 일이다. 그 사람의 말과 표정, 감정과 경험을 통해 삶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 위에 가장 적절한 선택지를 얹어주는 일. 그래서 우리는 ‘듣고, 해석하고, 연결하는 사람’이다.
2. 정보는 누구나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사실 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채용공고, 훈련과정, 자격증 취득 요건, 면접 질문 예시. 다 검색만 하면 나온다. 그렇다면 직업상담사는 무엇을 더할 수 있어야 할까? 나는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정보가 ‘당신에게 맞는 정보’인지 알려주는 일. 같은 공고라도 누구에겐 기회고, 누구에겐 의미 없는 정보일 수 있다. 같은 자격증이라도 누구에겐 도약이지만, 누구에겐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정보’가 아니라 ‘맥락’이다. 그 사람의 삶에 그 정보가 어떤 의미로 작동할지를 함께 보는 것. 결국 직업상담사는 ‘정보를 해석하는 사람’이자 ‘의사결정을 돕는 사람’이다.
가끔 내담자는 조급한 표정으로 말한다. “뭐가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냥 빨리 되는 거 하나 알려주세요.” 그 말이 처음엔 나를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다르게 느낀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되묻는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두려운 건 무엇인가요? 선택을 미루게 되는 이유는 뭔가요? 어떤 일이 가능성처럼 느껴지고, 어떤 건 너무 벅차게 느껴지나요? 이런 질문들 속에서 ‘그 사람만의 답’이 나온다. 빠르게 추천해주는 것보다, 함께 정리하고 함께 판단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직업상담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공감 기반의 의사결정 지원’이라고 나는 믿는다.
3. 사람을 중심에 두는 직업, 직업상담사
나는 매일같이 제도와 정책을 공부하고, 변화하는 시장을 읽기 위해 애쓴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읽고, 기업 채용 공고를 분석하고, 새로운 자격과 훈련 과정을 정리한다. 때론 법령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허덕이기도 하고, 내담자에게 더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몇 시간씩 자료를 들여다볼 때도 있다. 그렇게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직업상담사의 책임이고, 최소한의 전문성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나는 늘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단지 ‘정보 수신자’가 아니라는 것. ‘이력서 한 장’으로, ‘자격증 몇 개’로 절대 설명되지 않는 삶의 맥락이 있다는 것. 누구나 각자의 시간과 사연을 안고, 때로는 눈치 보며, 때로는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럴 때 나는 묻는다. 지금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직업인가, 위로인가, 아니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자리 하나일까? 내가 이 자리에서 줄 수 있는 건 정보와 조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건네는 배려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빠르게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고, 누군가는 아직 자신의 방향조차 정리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정보, 똑같은 조언이 의미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속도에 맞추고, 그 사람의 맥락을 따라가야 한다. 그게 진짜 상담이라고 나는 믿는다.
상담사는 ‘이 길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다. 삶의 다음 챕터를 함께 여는 동료로서, 당신 옆에 조용히 걸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직업상담은 정보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 정보를 받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비로소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전달된다. 사람을 중심에 둔 상담,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진짜 일이다. 그리고 그걸 잊지 않는 사람이 진짜 직업상담사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