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축하

by naniverse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유방암 재발도 서서히 익숙해졌다. 절망의 한 달과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아깝지 않은 연기를 보인 스위스 여행 2주는 금세 지나갔다. 수술까지 끝내고 나니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흉터는 얼마나 크게 또 생겼을까. 수술 이후의 추가 치료는 있는가.

수술하고 일주일이 지나 퇴원을 했다. 수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주일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수술 부위 통증은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종종 가슴을 죄어오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뭔가 잘못된 건가 싶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퇴원과 함께 간단히 샤워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병원에 있는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해 더러워진 상태였다. 더운물에 몸을 씻을 생각을 하니 기뻤지만, 씻기 위해서는 벌거벗은 내 몸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절망했다. 압박 브라를 조심히 풀었다. 덧대있던 거즈들도 하나둘씩 모두 제거했다. 놀라운 일이 두 개였다. 수술한 쪽 가슴이 생각보다 너무 컸다. 아직 수술 부기가 빠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분명 가장 작은 크기의 보형물을 넣었다고 했는데 수술 안 한 왼쪽 가슴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였다. 또 하나는 다른 수술 흉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벌써 3번의 수술을 한 불쌍한 나의 가슴은,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의 칼자국을 갖고 있지 않았다. 똑같은 자리를 다시 열어 암도 제거하고 보형물도 넣은 모양이었다. 조금이라도 흉터를 추가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교수님들의 정성이 떠올라 어쩐지 눈물이 났다.


2주가 지나 드디어 운명의 그날이 밝았다. 종교도 없지만, 하나님 부처님을 찾으며 며칠이나 기도를 올렸는지 모르겠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외과 진료실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슴 촉진을 했고, 교수님은 다정한 손으로 내 등을 받쳐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셨다. 여전히 따뜻했다.

“나니 님, 보형물도 예쁘게 자리 잡고 있네요. 암 제거 수술도 물론 잘 됐어요. 나 흉터 더 안 만들려고 고생했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속마음이 내 귓가에 들렸다. ‘압니다. 알아요. 고생하신 것 알아요. 그리고요? 다 끝났다고 어서 말해줘요.’

“0기를 예상했는데 최종 기수는 1기예요. 아주 조금, 티도 안 나는 미세침윤이 있네요.”

한 번도 예상대로 끝난 적이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늘 한기수씩 올라가 있었다. 잔뜩 긴장된 얼굴로 그래서 항암을 하느냐고 마느냐고 마저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내 눈빛을 눈치챘는지 교수님이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미세침윤이 있어서 1기로 기수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추가 치료는 없어요. 수술이 끝이에요. 다 끝났어요. 걱정하던 항암 안 할 거니까 그 걱정된다는 표정 좀 풀어봐요.”

“정말이죠? 진짜 끝이죠?”

“아 끝은 아니다. 타목시펜은 5년 더 먹어서 10년 채워야 해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타목시펜은 유방암 재발을 위해 먹는 호르몬 약으로, 대부분의 유방암 환자가 5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복용한다. 그깟 새끼손톱만 한 약을 5년 더 먹는 것은 별일도 아니었다. 때때로 불면증에 잠을 못 이루게 하고, 감정이 미친년 널뛰듯 바뀌게도 하지만 그 정도쯤은 평생이라도 할 수 있었다. 4월부터 8월까지 지난하게 길었던 내 절망의 시간이 그렇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목이 빠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나의 연인에게 소식을 전했다. 휴대폰 너머로도 그가 우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떨림을 느끼며 나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저녁에 성대하게 열릴 파티를 기다리면서 뭘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고통의 시간 동안 물고 뜯어 너덜너덜해진 내 손톱이 보였다. 스트레스받을 때 또는 걱정이 있을 때마다 피가 나도록 뜯어 멀쩡한 적이 없는 손은 지난 4개월을 견디며 무척이나 불쌍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네일아트를 하면 어쩐지 손톱이 숨을 쉬지 못하는 것 같아 즐겨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쯤, 기분이 울적한 날, 또는 뭔가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날 하게 되는 게 네일아트였다. 바로 오늘이다 싶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1층 네일샵으로 향했다.

“혹시 지금 할 수 있나요?”

“어머 오랜만이시네요. 다음 예약 때문에 복잡한 것은 못 하고 한 가지 색으로 하시면 가능해요. ”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자리를 잡고 손을 내밀고 앉았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어머 근데 손은 아주 너덜너덜하네. 이거 좀 뜯지 말라니까 왜 이렇게 많이 뜯어놨대요. 손이 무슨 죄라고”

무슨 얘기를 들어도 그냥 웃음이 났다. 그냥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요, 하며 나는 한참을 그저 웃었다.

암 환자에게 알코올을 금기라지만, 오늘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남자 친구와 나는 케이크에 초를 꽂았고 노래를 불렀다. 샴페인도 한 병 따고 한가득 따랐다.

“이제 술 먹지 마. 못 먹게 할 거야. 그렇지만 오늘은 한 잔 줄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많이 따라 주세요.”

“손에 그건 뭐야? 네일했네?”

“응 아까 병원에서 오는 길에 들러서 했어. 어때? 예쁘지?”

“그래, 예쁘다. 우리 자기 웃으니까 너무 예쁘다. 이제 우리 웃자. 근데 자기야 화내지 말고 들어.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나도 그동안 힘들었어.”

“맞아 자기도 힘들었지. 미안해”

“아니 자기가 나를 힘들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기 모습을 처음 봐서 그게 참 아프고 힘들었어. 늘 씩씩한 자기가 그렇게까지 무너져 내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 그게 참 힘들었다.”

“알아. 자기가 정말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곁에 있어 줘 정말 고마워. 자기가 없었더라면 견뎌내지 못했을 거야.”

“자기야 우리 이제 행복한 일만 있을 거야. 다신 아프지 말고 꼭 건강 하자.”

오랜만에 집에서 웃음소리가 오래도록 났다.


엄마, 아빠는 수월하게 시차 적응을 하고 있다고 했다. 퇴원 후 2주면 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압박 브라는 최소 2주는 더 차고 있으라고 했다. 얇은 여름 티셔츠로는 티가 안나게 가릴 방법이 없어 한 달이 넘도록 집에 가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쯤 본가에 올 것인지 엄마가 물었다.

“엄마 집에 가면 나는 너무 더워. 여기서는 종일 에어컨 틀고 있는데 엄마는 낮에만 잠깐 틀어줄 거잖아. 더운 거 좀 지나고 갈게.”

여름이라 참 다행이었다. 어지간하면 에어컨을 틀지 않는 엄마, 아빠의 절약 정신은 내가 본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를 대단히 효과적으로 만들어줬다. 엄마, 아빠, 오빠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의 비밀작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여전히 가족 모두에게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라도 더 큰 일이 생겨 가족 누구보다 내가 먼저 죽게 된다면, 그래서 엄마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내가 더 많이 아팠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내 선택이 옳았어, 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언제 내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일 거야. 아무에게도 못했던 말들을 이렇게 글로 표현하니,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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