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는 누구로 하시겠어요? 이전 입원 기록을 보니까 오빠분이 보호자로 되어 있으시네요. 그대로 할까요?”
“아, 오빠는 삭제해 주시고요. 남편으로 할게요. 이분이요.”
경험치가 쌓였다는 것에는 이런 장점도 있었다. 지난번 수술에서도 남자 친구를 보호자로 해 입원 절차를 밟으려고 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가족이 아니면 보호자로 등록해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입원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오빠의 전화번호를 등록했고, 절대 오빠에게 연락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결국 오빠에게 연락이 가는 것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번 작전은 더 철두철미해야 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당신을 남편이라고 해도 될까? 하는 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는 당연한 것을 뭘 그리 조심스럽게 물어, 하며 나를 향해 웃었다. 남자 친구는 남편으로 둔갑해 내 공식 보호자가 됐다.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없는 날 지켜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1인실 배정을 요청했지만 안타깝게도 병실이 없다고 했다. 하 잠은 다 잤네, 하는 생각에 만만치 않은 입원 생활이 되겠군, 싶었다. 부모님 집에 가면 잠 들기 전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엄마의 오래된 문갑 위에 있는 탁상시계의 건전지를 빼는 일이다. 아주 작은 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없애야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나는 소리에 예민했다. 사람들의 기침 소리, 화장실 왔다 갔다 하는 소리, 전화로 대화하는 소리, 병실 여기저기서 나는 모든 소리는 내게는 고통이었다. 옆 침대 환자분은 간병인을 쓰고 있었다. 모두가 숨죽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조용한 병실의 밤, 그녀가 보는 유튜브 소리가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게 들어왔다. 한참을 참고 참았지만, 어쩐지 간병인은 잠을 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저기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요. 이어폰을 끼고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하는 대답과 함께 그녀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어휴 크게 틀지도 않았는데 뭘 들린다고 그래.”
입원 생활이라는 것은 영 슬기롭지 않았다. 불편한 것투성이다. 입원 첫날부터 나는 커튼 안에 나를 내려놓고 꼭꼭 숨어 있었다. 의료진이 드나들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커튼을 열지 않았다. 4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절대 어리지 않지만, 암 병동에서는 늘 예외였다. 어쩐지 어려 보이는 환자에게 같은 방 환자들은 어쩌다 가끔 커튼이 열리는 틈을 타 꼭 말을 걸었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또 실패하고 말았다.
“어머 젊은 사람이 어디가 아파요? 수술해요? 난 유방암이에요”
“아 네. 저도 유방암이에요. 내일 수술해요.”
“몇 기예요? 난 1기래요. 나 너무 무서워요. 항암은 열흘은 지나서 수술 결과가 나와야 할지 말지 결정된다고 하던데, 항암 하면 엄청 힘들다고 해서 걱정돼서 잠이 안 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항암은 안 하시게 될 거예요”
“아가씨는 부분절제에요? 나는 전절제했어요.”
“전 이전에 부분절제 했고, 이번에는 전절제에요.”
“두 번째 수술이에요? 재발했어요? 전이됐어요?”
”아 세 번째 수술이에요. 재발했고요. 암튼 그렇게 됐어요.”
끝없이 쏟아지는 창문 앞 침대의 환자 질문에 마지막 진실까지 모두 토해내고 만다. 굳이 말할 이유도 없지만, 굳이 숨길 이유도 없다. 대부분의 환자가 자신이 마주해 있는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믿는다.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걱정이 많은지, 오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나보다 더 한 상황의 환자가 내게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다. 나보다 복잡하고 심각한 상황의 환자라면 누군가에게 말을 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다. 아직도 기운이 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쩐지 지고 싶지 않아진다. 더 아픈 것이 이기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내가 당신보다 더 아프니까 인제 그만 힘들다고 해요, 하는 심통 난 마음이 불끈불끈 치솟는다. 오늘도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켰다.
’아줌마. 겨우 암 수술 한 번 한 것 가지고 그만 말해요. 내 얘기 더 해줘요? ‘
4번째로 향하는 수술실이다. 어딘가에 곱게 접어 숨겨 두었던 익숙한 냄새와 풍경이었다. 어쩐지 수술이 잘될 것만 같아, 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조금 달라진 수술실의 모습 때문이었다.
4년 전 수술실에서 가장 비참했던 것은 이곳 수술방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수술방 침대에 앉아 잠시 대기하는 나에게 간호사가 말했다.
“가운 벗고 잠시 대기해 주세요”
가운을 벗는다는 것은 내 가슴을 드러낸 채 발가벗었다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난 그저 환자일 뿐이겠지만 그래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있는다는 것은 아무리 내가 환자라고 해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내 가슴이 보이지 않게 뭐라도 좀 가려주지,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상했다. 내 주위에 있는 의료진들이 어떤 표정과 어떤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눈이 나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술이 끝나고 진행된 입원 경험 만족도 조사에서 나는 꽤 솔직한 의견을 냈다.
’의료진들이 매우 친절함. 다만 수술실에서 환자의 인권, 존엄이 보호되지 않는 경험을 함. 의료진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 맨정신으로 수술을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임. 환자가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게 최소한 몸을 가릴 수 있는 조치가 있길 희망함.”
수술방에 다신 올 일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그만이었지만, 다른 환자들은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내 인생 마지막 수술이어야 하는 네 번째 수술을 위해, 침대에 걸터앉아 대기하는 내게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
“가운 벗고 잠시 기다리셔야 해요. 제가 시트로 앞을 가려 드릴 테니, 천천히 가운을 벗어보시겠어요?”
간호사는 시트로 내 몸을 가려 곧 없어질 내 가슴을 그 아무도 볼 수 없게 해 줬다. 마취약이 들어가 내가 조용히 잠들 때까지, 가슴은 시트 아래 꼭꼭 숨어 기다렸다. 4년 전 낸 내 의견이 받아들여졌는지, 단지 따뜻한 수술실 간호사를 만나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은 조치 하나로 어쩐지 편안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수술은 예정된 2시간을 꽉 채워 끝이 났다. 가슴에는 익숙한 압박 브라가 채워져 있었다. 어쩐지 너무 커진 것 같은 가슴에 당황스러워졌다. 붕대를 잔뜩 감아 그렇다고 교수님이 설명해 줬지만, 작고 귀여운 내 왼쪽 가슴에 비해 새롭게 생긴 오른쪽 가슴이 너무 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됐다. 통증은 생각보다 심했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싶게 아팠던 개복수술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타이레놀 하나면 싹 사라졌던 부분절제와는 다르게 무통 주사를 맞고 있는데도 가시지 않는 통증이었다. 배액관은 또 왜 이리 큰지. 아기 주먹만 한 배액관은 몸에 달랑달랑 달고 있어도 봐줄 만한데. 한 뼘은 족히 넘을 넙데데한 접시만 한 배액관은 영 움직임을 불편하게 했다. 꽁꽁 싸맨 압박 붕대 솜 가슴이 점점 궁금해졌다. 흉터는 또 얼마가 크게 생겼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어쩐지 내 몸의 일부가 된 새로운 가슴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까지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