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더 많이 보이는 집

by naniverse

이사 가야겠다, 는 나의 말에 엄마가 물었다.

“왜? 지금 집 좋잖아. 오래 살고 싶다며.”

오피스텔 30층, 방 3개짜리 내 집은 혼자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거실과 안방 창 너머로 호수공원이 한눈에 보였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여름이면 나무가 초록빛으로 무성했고, 호수에는 윤슬이 반짝였다. 가을이 되면 온 호수가 붉게 물들고, 겨울이면 눈 내린 호수가 눈이 부시도록 예뻤다. 나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지만 이사하고 싶어졌다. 4년 동안 질리도록 내려다본 호수보다, 이제는 초록한 나무가 더 많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이 집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같은 건물에 있는 전혀 다른 구조로 되어 있는 집을 사이에 두고 고민했다. 거실과 방 세 개가 모두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집과 거실과 안방만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집, 똑같이 방 세 개가 있는 집이 있었지만, 4베이 집은 어쩐지 내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방들을 모두 채울 가구도 없었다. 방 세 개가 내게 정말 다 필요하지 않은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사는 집을 선택하기로 했다. 호수 반대편에 있는 방 두 개는 북향이었다. 햇살 하나 들지 않는 방이니 창고로 쓰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필요도 없는 방 두 개가 한눈에 보이지 않는 지금 이 구조라면, 어쩐지 작은 집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것 같았다. 낭비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호수가 잘 보이는 이 집에 살고 싶었다.

대부분의 가구는 가성비가 넘치는 것들로 골랐다. 돈이 있어 본 적도 돈을 써 본 적도 없으니 당연했다. 나의 선택은 늘 내가 가진 예산에서 가장 적당한 것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큰마음 먹고 옮기는 호수뷰 집에 어울리는 소파 하나쯤은 가지고 싶었다. 하나쯤은 욕심을 내 조금 비싸더라도 내 맘에 쏙 드는 것을 사고 싶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적당한 가격대의 그러나 조금은 마음에 드는 것 같은 소파를 인터넷에서 골랐다. 양재 쪽에 쇼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파를 보러 갔다. 미리 봐 두었던 소파가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전에 내 시선을 사로잡는 소파가 하나 있었다. 짙은 갈색의 아주 단순한 디자인.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소파는 한눈에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와 버렸다. 가죽은 윤기가 흘렀고, 세월이 묻으면 얼마나 더 자연스럽게 길이 들어 멋질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건 얼마예요? 하고 물었더니 내가 봐 둔 소파보다 100만 원이나 더 비싸다. 이런 비싼 소파는 역시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그 소파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미리 봐 둔 소파를 사면 금방 후회할 것 같았다. 한 번 사면 십 년은 쓸 텐데, 이 정도는 과소비도 아니야, 뭐 어때, 하는 마음의 소리가 점점 세게 들려왔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300만 원이 훌쩍 넘는 소파를 샀다.

소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구는 대신 가성비가 넘치는 것들로 골랐다. 썩 마음에 드는 것들은 없었지만, 내가 가진 예산안에서 적당한 물건들을 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이 집에서 살아오면서 내 마음을 거슬리지 않은 것은 내가 정말 좋아서 사 소파 하나뿐이었다. 가격만 보고 적당히 고른 온 집안의 물건들이 영 거슬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눈엣가시 같은 이 가성비 넘치는 물건들과 작별하려면 선택해야 했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사라면 이 물건들을 내다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싸게 팔아치워도 죄책감이 덜 할 것 같았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 같은 건물 8층에 내가 원했던 4베이 구조의 집이 나왔다. 30층보다 호수는 덜 보였다. 하지만 창문을 열어도 되는 따뜻한 봄이 되면 나무들을 향해 가만히 손을 뻗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무가 한결 가까이 보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는 창고로 쓰고 있는 작은 방들도 모두 호수와 나무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곳에 예쁜 책상을 두고 서재로 꾸미면, 매일 쓰는 글쓰기가 어쩐지 더 잘될 것만 같았다. 예산과 상관없이 내 취향에 맞는 가구가 있으려나 인터넷을 뒤지고 뒤졌다. 백화점에도 가보고 매장에도 가 봤다. 금액과 상관없이 맘에 쏙 드는 가구들을 하나둘씩 골랐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가격의 가구를 고른 적은 없으니, 내 안목을 4년 동안 대단하게 올라가지는 않은 모양이니 다행이었다. 카드값은 점점 늘어갔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가구들로 집을 가득 채울 생각을 하니 어쩐지 자꾸 웃음이 났다.

4년 동안 우리 집 거실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던 텔레비전장을 현관 앞으로 옮겨달라는 내게 남자 친구가 물었다.

“이것도 팔 거야? 이건 진짜 새것인데.”

“팔 거야, 가 아니라 이미 팔았어. 오늘 저녁에 가지러 오신대.”

“이건 얼마에 팔았어? 10만 원?”

“아, 맞다. 못 팔았어. 크기가 커서 그런가, 아무도 안 사 가길래 무료로 나눴어.”

“아이고, 자기야. 이렇게 다 나누면 우리 살림 거덜 나겠어. ”

하루가 멀다고 온갖 가구들과 물건을 내다 팔거나 무료 나눔을 하는 내가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이사 가서 천천히 정리해도 되잖아, 라고 나를 말리고 싶은 그의 말은 내 귓가에 잠시 스쳤다 어느새 공기 중에 흩어졌다.


새로 이사 가는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나의 취향들로만 가득 채우고 싶었다. 지나친 낭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전업 백수에게 집은 그토록 중요했다. 내가 머무는 이 공간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만 채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집도, 가구도, 삶도, 나는 나를 중심에 두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그때부터 삶이 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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