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청 이쁘게 입고 왔네?”
“정말? 엄마 이뻐? 딸이랑 스위스까지 가는데 대충 입고 올 수 없어서 신경 좀 써 봤지.”
엄마는 검은색 귀여운 원피스에 진한 초록빛의 카디건을 걸치고 나타났다. 산속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스위스는 엄마가 가장 가고 싶어 하던 여행지였다. 거의 한 달 동안 감정이 이성을 지배해 나조차 낯선 나로 살아왔던 순간의 기억은 엄마를 만나자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행복해하는 엄마를 슬프게 할 수는 없어. 다신 엄마, 아빠랑 여행을 떠나지 못할지도 몰라.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정신 차려. 잊지 마. 이 여행을 행복하게 끝내고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엄마만큼은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했다. 혼자 조용히 주문을 외워 봤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을 엄마와 아빠에게 꼭 만들어주겠다는, 작지만 슬픈 주문이었다.
우리는 12일 동안 스위스 여기저기를 다녔다. 유럽에서 가장 높다는 융프라우에 올라 찬란하게 빛나는 설산을 배경으로 스위스 국기와 인증사진을 찍었다. 추울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여름 복장으로 올라간 피르스트에서는 아빠와 함께 덜덜 떨다가, 엄마는 빼고 아빠와만 둘이서 커플티를 맞춰 입었다. 마터호른에 가서는 구름에 가려진 마터호른을 보기 위해 엄마가 아침부터 정성껏 싼 주먹밥을 먹으며 2시간이 넘게 기다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비싸다고 잘 사 먹지도 않는 복숭아가 맛있다고 했다. 그럼 3개만 살까, 라고 묻는 내게 아빠는 맛있는 데다 싸니까 2개씩 먹게 6개를 사자고 말했다. 급한 일도 없었고 바쁜 것도 없었다. 딸내미를 잘 둬서 엄마 아빠는 참 복도 많다며 날 추켜세웠다. 모든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스위스에 가기 전부터 꼭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패러글라이딩! 에메랄드빛 호수 위를 날아볼까? 설산 위를 날아볼까, 하며 고민했다. 아무도 할 리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패러글라이딩할 사람?”
“엄마 할래. 해 보고 싶어, 해 보고 싶었어.”
“엄마, 패러글라이딩이 뭔지는 알고 한다고 하는 거야?”
“그거 아냐?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거? 너 프라하에서 했던 그거?”
“엄마, 그건 스카이다이빙이고. 패러글라이딩은 낙하산 타고 산에서 뛰어내리는 거야.”
“그럼, 그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는 안 무섭겠네? 근데 그건 비싸? 안 비싸면 엄마도 한번 해 보고 싶은데.”
73살 할머니인 엄마가 패러글라이딩한다고? 오해가 있긴 했지만, 사실은 스카이다이빙해 보고 싶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꿈에서라도 상상할 수 있는 답변도 아니었다. 하늘을 나는 파파 할머니를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내 심장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파란 하늘을 기대했지만 어쩐지 구름이 하늘을 잔뜩 가렸다. 파란 하늘에서 파란 호수 아래로 뛰고 싶은데, 하고 말하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따 우리가 할 땐 하늘이 파랄 거야. 엄마가 날씨 요정이잖아.”
오늘 우리와 함께 패러글라이딩할 사람들은 총 5명이었다. 당연하게도 엄마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이미 예약 전에 연령제한이 없다고 해서 예약하긴 했지만, 정말 칠십이 넘는 우리 엄마도 할 수 있는 것인지 엄마를 담당할 선생님에게 물었다.
“우리 엄마가 일흔세 살 이에요. 진짜 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엄마는 영어를 전혀 못 해요.”
“엄마가 10미터쯤은 뛰실 수 있어요? 엄마가 무릎이 아프지 않아 뛸 수만 있다면 할 수 있어요. 영어를 못해도 괜찮아요.”
“엄마가 무서워할까 봐 너무 걱정돼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위험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날아 주세요.”
“딸! 너무 걱정하지 마요. 엄마는 늘 용감해요. 엄마한테 너무 무서우면 stop이라고 외치라고만 전해줄래요? 혹시라도 엄마가 너무 무서워하면 내가 당장 비행을 멈추고 착륙할게요.”
걱정으로 잔뜩 긴장해 버린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엄마의 선생님은 싱긋 웃었다. 비행을 위해 산꼭대기까지 가는 길은 예상보다 멀었다. 강원도 차령고개보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꼬불꼬불한 멀고 먼 길을 지나 드디어 차에서 내렸다. 딸과 함께 온 것처럼 보인 한국인 아저씨가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어머님 진짜 하신대요?”
“그러게요. 엄마가 진짜 한다고 하네요.”
“어머니 연세가 혹시 어떻게 되세요?”
“울 엄마 일흔세 살 이예요. 할머니예요, 할머니.”
“세상에. 진짜 존경스럽네요. 40대인 저도 10대인 제 딸도 지금 너무 떨려서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데. 어머님이 진짜 뛰신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제발 우리 엄마 좀 말려주세요. 제 심장이 멈출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는 낙하산을 멨고, 준비를 모두 마쳤다. 하늘을 향해 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엄마, 진짜 뛸 수 있겠어? 안 무서워?”
“안 무섭다니까 왜 자꾸 물어봐. 죽기 전에 하늘을 날아볼 수 있게 됐는데 뭐가 무서워. 엄마 신나.”
one, two, three 하는 소리와 함께 엄마가 뛰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엄마를 쳐다봤다. 하늘 가까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사람 모두 엄마를 향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 힘내세요! 하며 아까 말을 걸었던 아저씨도 응원을 보탰다. 외국인 크루들도 휘파람을 세게 불며 mama, 파이팅! 이라고 외쳤다. 아뿔싸! 세 걸음도 못 가 엄마가 갑자기 멈춰 섰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시 무서운가보다 싶던 그때 크루가 더더더더 하며 엄마에게 외쳤다. 잠시 숨을 고른 엄마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다시 앞으로 힘껏 달려가 파란 하늘로 뛰어올랐다. 엄마의 발아래, 반짝이는 푸른 호수와 엄마가 꿈에 그리던 산속의 예쁜 집들이 보였다. 엄마는 마치 천국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뒤이어 나도 뛰어내렸다. 15분도 넘게 한참을 날고 나서 드디어 착륙해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아직도 낙하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나는 낙하산을 벗어 던지고 바로 엄마에게 뛰어가 물었다.
“엄마, 괜찮아? 안 무서웠어? 진짜 괜찮아? 어지럽진 않았어? 괜찮은 거야?”
“하나도 안 무섭던데. 엄마 근데 좀 어지러워.”
도대체 어떻게 안 무서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스카이다이빙도 해본 나는 이렇게 무섭고 떨렸는데 말이다.
“엄마, 근데 아까 출발할 때 왜 멈춘 거야? 너무 무서워서 뛰다가 멈춘 거 아이야?”
“아니, 안 무서웠다니까. 나야 계속 뛰고 싶었지. 근데 이 낙하산이 너무 무거워서 앞으로 안 가더라고. 뒤에서 선생님이 밀어주지 않았으면 하늘도 못 날아볼 뻔했네.”
세상에 진짜 하나도 안 무서웠다고 했다. 오히려 아쉬웠다는 엄마의 마지막 말에 난 낄낄대고 웃어버렸다.
“아니, 다른 사람들 낙하산은 막 여기저기로 움직이고 막 산 가까이에도 가고 그러더라고. 내가 노인네라 그런지 우리 선생님은 그냥 하늘에 떠 있기만 하는 거야. 내가 up! up! 하고 말했는데 못 알아듣더라고. 엄마도 하늘 더 가까이 가고 싶었는데.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껄 그랬어. 일주일에 두 번 영어학원 간 게 다리 운동만 됐지, 영어 공부는 하나도 안 됐나 봐.”
체험이 모두 끝나고 받은 사진과 동영상에는 엄마의 말이 정말 거짓이 아닌 것이 확인됐다. 엄마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얼굴로 하늘을 나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여행을 다니며 새롭게 만나게 된 엄마의 다양한 모습이 있다. 엄마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새로운 것을 만나면 엄마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편함을 말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데, 의의를 뒀다. 엄마는 새로운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꽤 훌륭한 여행 동반자였다.
커다란 산처럼 늘 든든해 보였던 아빠의 겁쟁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이번 스위스 여행을 통해서였다.
“아빠, 엄마도 한다니까 아빠도 같이 패러글라이딩하자.”
“싫어. 아빤 안 해. 절대 안 해.”
“아빠, 같이 해요. 죽으면 못 해. 죽기 전에 다 해봐야지.”
“싫어. 죽어도 안 해. 절대 안 해. 아빤 그런 거 하는 거 너무 무서워.”
아빠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데 늘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람이었다. 엄마보다 아빠가 훨씬 더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여행을 다니며 알게 됐다. 엄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시간, 아빠는 땅에서 우리를 지켜봤다. 아빠는 엄마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을 찍겠다며 착륙 지점에 먼저 가 있었다. 겁이 많아 직접 날지는 못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가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주는 사람. 아빠는 엄마와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기 위해, 늘 한 걸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마지막일지 모를 스위스 여행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한 번도 얼굴 붉히지 않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도 슬픈 기억을 안고 네 번째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