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0대 젊은 유방암 환우들이 모여있는 단체채팅방이 있다. 채팅방에서 나오는 가장 많은 빈도수의 불만은 이것이었다.
“미치겠어요. 내가 치료에 대하 뭘 안다고 자꾸 나한테 선택하라 해요. 부분절제를 할지 전절제할지 다른 분들도 담당 의사가 선택하라고 하던가요? 어떤 보형물로 할지도 나한테 선택하래요. 내가 뭐가 좋은지 도대체 어떻게 알아요? 항암을 할지 말지도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진짜 너무 책임감 없는 것 아닌가요?”
많은 암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 중 하나가 환자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다. 의사들은 늘 여러 개의 옵션을 주고 환자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의학적 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이 도대체 뭘 알아서 선택한다고. 혹시 모를 나중의 책임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은 의사들의 심정을 이해해 보려 노력할 수 있지만, 원망을 듣지 않으려는 그 속내가 보여 감정이 상하는 때도 있다고 했다. 유방암 보형물에 대해 하나도 공부를 안 했는데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며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때 내 이름이 불렸다.
성형외과 진료가 시작됐다. 마스크를 끼고 파란색 수술복을 입은 교수님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젊어 보인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려나? 비슷하려나? 샤워한 지 오래되었는지 머리는 며칠쯤 안감은 모양이다. 드라마에서 보던 레지던트들이나 저런 엉겨 붙은 머리를 하고 있던데, 하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난 건 어쩌면 떡 진 머리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온 배우들 뺨치게 잘생긴 교수님의 얼굴을(비록 마스크로 가려져 반밖에 안 보이지만) 마주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서 교수님들이 온갖 진료와 수술을 담당하고 있다더니 이분도 그중 한 분이시구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교수님 앞에 또다시 가슴을 훤히 드러내려니 어쩐지 조금 더 부끄러움 마음이 들었다.
“나니 님, 가운을 좀 열어주시겠어요? 놀라지 마세요. 제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만난 대부분 의료진은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과 무관하게 나의 흉터라는 치부를 보여야 하는 매 순간, 그들 눈에 내가 과연 한 명의 사람처럼 느껴지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매일 수십, 수백 명의 환자를 보살펴야 하는 의료진들에게 따뜻함이나 다정함을 바라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익숙하게 환자를 보는 의료진들의 기계적인 손길은 늘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이나 다정함을 느끼면 얼어붙은 내 몸과 마음이 그대로 사르르 녹아버리곤 했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운 속을 들여다보는 교수님의 손길은 어쩐지 다정했다. 이제 곧 없어질 운명에 처해있는 나의 가슴을 요리조리 살펴본 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유방 외과에서 먼저 암 제거 수술을 하실 거예요. 아마 1시간쯤 걸릴 것 같아요. 그 후에 제가 유방 재건 수술할게요. 제 수술도 1시간쯤 걸릴 거예요. 보형물은 여러 크기가 있는데, 나니 님에게는 가장 작은 크기를 쓸게요. 보형물이 유방암 환자를 위해 따로 만들어진 것은 없어요. 그래서 유방확대술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을 저희가 써요. 그래서 가장 작은 크기를 써도 반대쪽 유방이랑은 차이가 나게 돼요. 이번에 수술한 쪽이 조금 더 크게 될 거예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비슷하게 해 볼게요.”
어떤 보형물을 선택할 것인지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의사의 재촉에, ‘멘붕’에 빠졌던 환우들이 여럿 있었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잘생긴 데다 결단력과 추진력까지 갖춘 교수님이라니! 다행스러웠다.
“교수님, 수술해서 양쪽 가슴 크기 차이가 크게 나면, 혹시 반대쪽도 함께 수술하는 것은 어떤가요? 미용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환자들도 있다고 하던데요.”
“저는 반대해요. 우리는 지금 예쁘게 보이기 위해 미용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에요. 유방암 환자의 유방재건술은 원래의 유방과 유사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으로 이는 환자에게 있어 신체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정서적 안정을 목표로 해요. 멀쩡한 가슴에 손을 댈 필요 없어요. 회복만 더 오래 걸려요. 우리 그건 하지 말기로 해요.”
딱히 큰 가슴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수술하는 김에 양쪽 다 해버리면 조금이라도 수술한 티가 덜 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바랐던 마음이 담긴 질문일 뿐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단호한 의견은 이참에 가슴 확대 수술을 해서 예뻐져 보기라도 할까, 하는 어이없는 마음이 곧 사라졌다.
수술 후 일주일 정도는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번 유방암 부분절제 수술은 수술 다음 날 퇴원했는데 일주일이라니. 개복수술을 했던 첫 번째 수술도 6일 만에 퇴원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 수술 중 가장 오래 병원에 있을 수도 있다는 교수님의 이야기에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수술은 최대한 빨리 잡을게요.”
수술 일정을 체크하러 일정표를 확인하는 교수님을 다급한 목소리로 막아 세웠다.
“교수님 혹시 수술 일정은 제가 가능한 날짜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은 안되고 2달 정도 있다가 7월 말에 하고 싶은데요.”
“7월이요? 지금이 5월인데?”
모든 암 환자가 하루라도 빨리 수술해달라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도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교수님이 물었다.
“부모님이 저 유방암에 걸린 것 모르셔서요. 근데 제가 7월에 부모님이랑 스위스로 여행을 가거든요? 지금 수술하면 그때까지 티 나지 않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모르신다고요? 이번에도 말씀 안 하실 거예요? 지금 해도 그때까지 완벽하게 회복하기 어려울 텐데…”
“안되는군요. 그럼, 저 지금 못해요. 스위스 다녀와서 7월 말에 해야 할 것 같아요.”
엄마에게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스위스를 다녀와야만 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과 표정으로 부모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날 때까지 엄마가 절대 알 수 없도록, 시차 적응도 되기 전에 나는 혼자 병원으로 돌아와 수술받을 계획을 짰다. 어차피 유방 재건 수술보다 중요한 것이 외과 수술이니 수술 날짜에 대한 최종 결정은 유방 외과 결정 사항이라고 했다. 외과에서 허락해 주신다면 가능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유방 외과 교수님이 결정하는 대로 수술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교수님께 잘 말씀드려 볼게요. 요청을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꼬박 하루가 지나 수술 일정이 확정됐다. 다행이었다. 7월 23일 귀국, 7월 27일 입원, 7월 28일 수술. 이보다 완벽한 수술 일정이 있을 리 없다. 시차 적응까지 할 시간도 주어졌다. 긴 여행에서 돌아왔으니 당분간 엄마를 보러 가지 않아도 엄마가 날 찾을 리 없었다. 또 한 번 엄마를 속이는 기막힌 작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