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쓴 소녀

by naniverse

엄마 몰래 2번의 유방암 수술과 19번의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몹시 거추장스러웠던 배액관을 모두 빼고 압박 브라를 벗어던지고 나니 마음 편히 엄마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고모네 집에 잠시 들르자고 했다. 고모는 아빠의 사촌 동생이다. 나와는 5촌 간으로 당숙이라는 호칭이 맞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워낙 어릴 적부터 한 가족처럼 지내왔기에 나는 그녀를 고모라고 불렀다. 고모는 결혼해 살다가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됐다. 엄마는 가끔 고모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며, 어휴 돈 달라는 거지 뭐, 하며 아빠 몰래 내게 일러바쳤다. 가족들을 위한 기도에 필요한 돈이라며, 거절할 수도 없게 부탁한다고, 조용히 욕하곤 했다. 이미 성당에 다닌 지 오래되어 굿이나 무속신앙 같은 것은 믿지 않는 엄마였다. 아빠가 알면 불호령이 떨어질 일이었다. 그래도 가족을 위한 기도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성의 표시를 하곤 했던 모양이다. 그날도 기도가 끝났다고 아빠가 좋아하는 떡 좀 가져가라는 고모의 연락에 우리는 고모 집으로 향했다.


대단히 큰 행사를 벌였는지 고모 집은 온통 향냄새로 가득했다. 거실 천장에는 색색의 연꽃들이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의 이름표를 달고 걸려있었다. 도대체 누가 저 꽃들을 다 달았는지 궁금했는데, 사촌 동생이 자기 엄마를 쳐다보며 눈을 흘기는 것을 보니 아마 동생이 고생한 모양이었다. 늘 문을 닫아 두어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작은 방문이 열려 있었다. 슬며시 들여다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점집 그 자체가 아니던가. 넓게 펼쳐진 상 위는 온갖 과일, 떡, 고기, 나물 등 음식들이 한가득했다. 고모는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옷자락을 잡아끌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방으로 가 엄마에게 말했다.

“언니, 올해 나니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삼재이기도 한데, 특히 건강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해. 기 봐요. 이게 나니를 위한 기도문이에요. 내가 열심히 기도했어요.”

고모는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제사 때나 보던 명패 같은 것을 가리키며 엄마에게 말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딸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칭찬이라도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였다.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고모가 혹시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고, 엄마의 표정은 이내 싸늘하게 굳어 버렸다. 엄마는 고모에게 언성을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고모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멀쩡한 애가 아플 것이라고 말해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나랑 오빠가 성당 다니는 것 몰라요? 이제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 안 해줘도 돼요. 제발 하지 마요. 우리 이런 곳에 드나들고 그럼 안되는 거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고모”

가족들 사이에서 날개 없는 천사라고 불리는 엄마였다. 특히나 아빠 쪽 가족들은 천사 같은 엄마가 우리 집에 시집오는 바람에 집이 비로소 집 같아졌다며, 아빠보다 더 엄마를 좋아했다. 우리 새언니가 최고야, 라고 엄마를 하늘까지 추켜세우는 것은 특히 고모였다. 자신에 대한 애정을 모든 사람이 알게 떠벌리는 고모를 사랑으로 감싸왔던 엄마가 내뱉는 날 선 이야기에 고모는 꽤 당황한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언니, 그게 아니라요…그냥 혼자 기도하는 거야. 내 조카를 위해서.”

엄마는 고모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차갑게 돌아섰다. 언니, 오빠 드릴 떡은 가지고 가셔야죠, 하고 엄마를 붙잡는 고모의 손길을 엄마는 매몰차게 뿌리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엄마를 보는 고모에게 나는 눈인사를 하고 황급히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 엄마는 집으로 오는 내내 분이 풀리지 않는지 끊임없이 욕했다.

“망할. 어디라고 내 딸이 아플 거라고 말해. 아주 듣기 싫어 죽겠어. 그렇게 잘 알면 자기 인생은 왜 그따위야.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면서 입이 방정이야. 내가 다신 돈 주나 봐.”

고모 귀가 아주 오랫동안 간지러울 것 같았다.


엄마는 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삼촌과 작은엄마들과 사촌 동생들, 친가 쪽 아주 가까운 친척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모들에게도 숨길 정도였으니, 더 먼 친척인 고모가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혹시라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굳게 약속했던 사촌 동생이 말한 것인가 싶어 연락해 봤지만, 동생의 대답은 단호했다.

“언니, 난 엄마한테 말한 적 없어. 언니가 절대 얘기하지 말라며. 외숙모가 싫어하신다고. 날 의심하다니 용서할 수 없어.”

사촌 동생도 아니라면, 내가 암에 걸린다는 것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졌었던 것일까? 고모는 도대체 어떻게 내가 아플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모네 집에 다녀간 지 며칠이 되지 않아 고모에게 전화가 왔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까지 하지, 하는 생각에 내키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또 할지 궁금함을 찾지 못하고 전화받았다. 전화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전화하는 고모의 성질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 리 없어야 하는 고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말했다.

"나니야, 너 진짜 별일 없니? 고모가 자꾸 네 꿈을 꾼다. 왜 자꾸 그런 꿈을 꾸는지 정말 모르겠어. 우리 집에서 장례를 치러. 꽃상여도 보이고… 근데 거기서 네가 맨날 검은 보자기를 쓰고 있잖아. 검은 보자기를 쓰고 있는 것은 진짜 안 좋은 것을 뜻하는 거거든? 죽거나 크게 아프거나 암튼 그런. 넌 잘살고 있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그런 게 꿈에 보이는지 고모도 참 미치겠다. 네 엄마는 그 말 했다고 고모를 아주 잡아먹으려고 하고 말이야. 네 엄마 그렇게 사나운 거 처음 봤어. 너 진짜 별일 없니?”

"고모, 저 잘 지내고 있다니까요. 왜 자꾸 그런 무서운 말을 하고 그런대?

천사 같은 엄마가 이 말을 들었다면, 엄마의 불호령에 고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이야, 너를 위한 기도를 더 해야 할 것 같아."

"고모, 돈 보내드릴게요. 많이는 말고요. 조금요. 아프지 말라고 기도 많이 해주세요.”

”고모가 너 걱정돼서 전화 한 거야. 돈 달라고 전화한 것 아닌 거 알지?”

돈 때문이었든 내가 걱정되어서였든 크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내 안에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듣지 말았어야 하는 말이다. 고모는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했다.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난 그저 나를 위해 정성껏 기도해달라고 한 번 더 부탁하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누구라도 한 명이라도 더 나를 위해 기도해 주면, 내가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고모의 기도는 아무래도 아무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재발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고모였다. 당장이라도 전화해 고모에게 묻고 싶었다.

“고모 나 진짜 금방 죽나요? 나 살 수 있나요? 아직도 나는 여전히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있나요?”

고모가 했던 말들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핸드폰을 열어 켜고 달력을 확인했다. 달력을 꽉 채웠던 일정을 하나씩 보며 정리해야 할 것들을 확인했다. 지난 4년 동안 일정표를 꽉 채우는 일이 참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매일 매일을 채워나갔다. 일주일에 3번씩은 필라테스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영어 과외를 받았다. 피아노도, 가야금도 배웠다. 골프를 치며 어느새 양쪽 뺨에 가득 올라와 버린 흑자를 빼기 위해 피부과에 가는 일정도 많았다. 더 이상 다 쓸데없는 일정들이었다. 일정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갔다. 깨끗하게 비워 놓은 달력은 이제 병원을 오 가는 일정들로만 가득 찰 테다. 검사, 성형외과, 외과. 수술 등만으로 가득 찬 일정표를 오랜만에 다시 마주했다. 더 이상 내가 웃을 수 있는 일정 같은 것은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전 19화왜 나에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