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만

by naniverse

어느덧 유방외과 4년 정기검진을 앞두고 있었다. 유방외과 검진은 산부인과 검진보다 조금 지치는 시간일 때가 많았다. 혈액검사와 10분쯤 누워 있다 보면 끝나는 CT 검사만 하면 되는 산부인과 검사와는 다르게 유방외과 검사는 늘 복잡했다. 한번은 유방초음파와 유방X선 검사를 했고, 다음 검사 때는 MRI를 찍곤 했다. 30분이 넘게 엎드려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MRI 검사는 늘 마지막까지 포기한다는 벨을 누를까 말까를 고민하게 할 만큼 어려웠다. 그래도 4년을 반복해 정기 검사를 받다 보니 어느새 4년 마지막 검사를 받게 됐다. 5년이면 완치 판정이 내려지니 이제 거의 끝에 다다랐다는 즐거움에 어쩐지 이번 검사는 병원으로 가는 길도 신이 나는 것 같았다.

늘 그렇듯이 진료는 유방 촉진으로 시작된다. 교수님 앞에서 가운을 풀어 헤치고 촉진 검사를 받는 것은 4년 동안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끄럽고 어색했다. 교수님은 검사를 마치면 늘 아주 좋네요. 하며 가운을 여며주고 내가 일어나기 쉽게 등을 받쳐줬다. 6개월 만에 만난 교수님의 손길을 여전히 따뜻했다. 교수님에게 진료받는 환우들은 그래서 그를 신다정이라 불렀다.

“나니 님, 혈액검사는 아무 이상 없고요. 음 …”

뭔가 조금 잘못된 것 같았다. 보통 교수님은 혈액검사와 MRI 검사 모두 이상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힘들게 받은 MRI 검사는 어쩌고 피검사 얘기만 하는 거지? 하는 생각에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잠시 망설이며 뜸 들인다는 것은 뭔가 할 말이 더 있다는 뜻이었다.

“MRI 검사 결과가 좀 맘에 안 들게 나왔어요. 우리 지난번에도 한 번 오른쪽 가슴에 뭔가 보인다고 조직검사 했었잖아요. 그때랑 비슷하게 보이네. 초음파 보고 와야 할 것 같은데요?”

망할. 2년 전쯤 재발이 의심되어 조직검사를 하고 피 말리는 한 달을 보낸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가 지옥인가 싶은 한 달이 지나갔고, 다행히 암 재발이 아니라 지방이 좀 뭉쳐있는 것이었다는 결과를 받았었다. 한번은 운이 좋게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라는 말에 설마 정말 재발인가 하는 불안함으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초음파 검사는 또 왜 이리 오래 걸리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 많은지 초음파실 선생님은 나의 오른쪽 가슴 여기저기를 헤집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 일주일은 아주 느린 속도로 흘러갔다.

“나니 님, 초음파 검사한 것 보니까 어쩐지 재발 의심이 되네요. 조직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때도 괜찮았잖아. 아마 괜찮을 거예요.”

교수님은 얼굴 한가득 걱정으로 가득한 나를 애써 달랬지만, 나는 늘 불운을 몰고 다니는 환자였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행이 날 휘감기 시작했다. 남들은 평생 살며 하나 걸리기도 힘든 암이 하나도 아닌 두 개였다. 고작 10%가 유방암 재수술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내 것이었다. 발병 2년이 지나면 재발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내려간다고 했지만 어쩐지 나는 그 낮을 확률을 또 뚫을 것만 같았다.

만약 재발이라면 나는 도대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장 다음 주에는 부모님과의 경주 여행이 잡혀 있었다. 그다음 주에는 사촌 동생들과의 대만 여행이, 스위스가 가장 아름답다는 7월에는 부모님과 무려 2주 동안의 스위스 여행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완치가 가까워져 오며, 나의 일상들은 온통 나들이 계획으로 가득했다. 당장 나에게 닥쳐올 미래를 알 수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올 불행은 이미 다 왔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무엇이 온다면 그건 신이 없다는 뜻이었다. 신이 그렇게 가혹할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

“나니 님. 안타깝게도 재발이 맞네요. 좀 넓게 퍼져있어서… 이번에도 부분절제를 해 볼 수는 없는데 그러다 또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부분절제 하면 우리 또 재발할지 걱정해야 하니, 걱정 없도록 아예 전절제 수술을 하는 것이 어때요?”

유방암에 걸렸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 머리카락을 잃지 않은 것, 그리고 부분절제 수술을 해서 내 귀여운 가슴을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비록 암이 있던 부위를 크게 도려내 여기저기 움푹 팬 못생긴 가슴이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종종 내 가슴을 어루만지며 속삭이곤 했었다.

“주인 잘못 만나서 얼마나 고생이 많니. 그래도 남아줘서 고마워.”

부분절제고 전절제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딱히 엉망으로 살지 않았다. 매일 시간 맞춰 먹어야 하는 항암제도 빠트리지 않고 먹었다. 일주일에 3일 이상은 땀이 나도록 운동했고, 음식도 신경 써서 먹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가끔 술도 먹었다. 하지만 고작 한두 잔이었고 나의 스트레스 관리에 큰 도움을 줬으니 그것 때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두 개의 암도 부족해서 재발까지 된다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나는 뭘 그렇게 잘못 살았던 걸까.

“교수님, 수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지난번에도 한 번으로 끝날 거라고 했는데 재수술했고, 두 번이나 수술했는데도 결국 재발 됐잖아요. 또 수술한다고 완치되리란 보장도 없잖아요.”

누구에게라도 따지고 싶었다. 신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은 말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암이 재발하라고 빈 적도 없는 교수님을 향해 억울한 마음의 말이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다. 날카롭게 쏘아 붓는 나의 말에 교수님은 잠시 뒤로 물러나 팔짱을 끼며 내게 말했다.

“그래요. 수술한다고 재발 안 되란 보장은 없어요. 그래도 수술해야지. 수술 안 해서 기수가 더 높아지면 또 항암 해야 하고 그땐 답도 없어요. 이번이 마지막이야. 수술로 끝나. 그러니까 수술합시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또 항암 안 하려면 지금 수술해야 한다고 나를 협박하다니.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건네는 몇 장의 휴지 따위로는 해결할 수 없는 눈물의 바다였다.

“가서 성형외과 만나보고 와요. 전 절제 하더라도 임플란트 넣어야지.”

세상에 가슴 수술을 하러 성형외과라니. 가슴에 보형물을 넣기 위해 성형외과라는 데에 것을 가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겨우 남긴 작은 가슴마저도 이제 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까지 모조리 뺏고 나서야 나의 불행이 끝이 나는 것일까 싶어 서러운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진료실에서 내 연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대놓고 힐끗거리는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었다. 보형물은 넣어서 뭐 해, 이제 난 가슴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하며 목 놓아 우는 나를 그는 그저 깊게 안아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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