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

by naniverse

남자 친구의 지인들과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남자 친구와 오래 만난 만큼, 그들과도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문득,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새언니가 그런 것처럼 잘 지내느냐는 안부를 묻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며칠을 고민했는데,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 아무도 나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혹시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에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자기야, 다들 나 아픈 것 알지 않나? 근데 왜 아무도, 아무것도 묻지 않지?”

“아, 그건 내가 자기 잘 지내고 있으니까 아무 일 없는 듯 대하라고 시켜서 그래.”

“아, 그래? 자기가 친구들에게 아는 티 내지 말라고 했어?”

이상했다. 잘 지내고 있으니 굳이 묻지 말라고 친구들에게 말한 것이, 나를 배려한 선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운한 마음은 감춰지지 않았다.

“근데 왜? 왜 그렇게 말했어?”

“자기가 그런 질문 받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고 평소처럼 대하라고 했는데? 왜?”

남자 친구의 답변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꼭 굳이 그렇게 해야 했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남자 친구뿐만 아니었다. 굳이 나의 건강에 대한 안부를 묻는 이는 거의 없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단 한 번도 아픈 적 없던 거처럼 날 대하고 싶어 했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정기검진 결과 날이 되어서야 이번에도 통과지? 하고 가볍게 묻고 지나갔다. 내가 아팠던 것을 알고 있는 친척들조차, 별일 없지? 하는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들의 침묵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가장 깊은 배려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내 가슴은 그 배려를 어쩐지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근데, 나 좀 이해 안 돼. 왜 나한테 안부를 묻는 것도 못 하게 했어? 난 내가 암 환자인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들 왜 쉬쉬하며 숨겨서, 내가 꼭 죄를 지은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거지?”

암 환자인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은 물론 아니었다. 날 암 환자로만 대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팠던 적조차 없었던 사람으로 날 대해버리면, 나는 내 힘들었던 이야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내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남자 친구가 유일했다. 가족들에조차 숨겨야 했던 많은 비밀의 시간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지인들과의 관계에 가져오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정말 많이 힘들었다고, 때론 절망적이어서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고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남자 친구는 나의 이런 반응이 어쩐지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당연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도대체 누구한테 위로받아? 자기 말고는 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말 못 하고, 지인들한테도 멀쩡한 척해야 하고. 난 누구한테 나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거야?”

날카롭게 내뱉는 나의 말에 남자 친구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억울해 죽겠다는 그의 마음이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 그래도 평정심을 애써 유지하며 그가 내게 물었다.

“사람들이 물어도 괜찮아? 그게 나아? 몰랐어. 난 자기가 사람들이 자기 아팠던 얘기 하면 싫어할 줄 알고 그랬어.”

“내가 윤 오빠가 왜 좋은지 알아? 윤 오빠는 아무도 나한테 괜찮냐고 안 묻는데 꼭 물어봐 줘. 별일 없어?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나니야 건강해야 해, 하고 말이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한 것도 아닌데 꼭 물어봐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알아?”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가족들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해야 하는 내가 가엽고 억울해서 눈물이 또 멈추지 않았다.

“그럼 자기 안부를 좀 물어보라고 사람들한테 얘기할까? 그럼 자기가 더 편해지려나?”

착해 빠진 남자 친구는 또 시키지도 않은 일을 애써하려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고 소리를 빽 질러 그를 말리지만, 나조차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기만 했다.


암 환자로 대하는 것은 싫은데, 정상인으로 대하는 것은 더 서운했다. 모든 사람이 괜찮아? 라고 물으면 난 또 사람들을 피해 어디론가 숨고 싶어지게 될 것이 뻔했다. 도대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매일 같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널뛰는 이 마음을 나조차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 나는 아직,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결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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