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마음을 스친 날

by naniverse

3년 전쯤 어느 날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려 화면을 보니 ‘새언니’라는 이름이 보였다. 우리는 명절과 가족 행사 때에나 얼굴을 보는 정도의,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전형적인 시누이·올케 사이였다. 언니가 내게 연락 해 오는 일은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생겼거나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자기, 잘 지내? 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전화했어.”

“언니, 전 잘 지내요. 별일 없죠? 뭐든지요.”

“자기 유방암 수술한 ** 병원 말이야. 거기 교수님이 괜찮으시다고 했잖아. 그분 성함이 혹시 어떻게 돼? ”

“유방암 교수님이요? 산부인과 교수님이 아니고요?”

언니는 내가 자신에게 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는 걸 안다. 언니가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어지러운 내 머릿속은 이런 질문들로 가득 찼다.

‘언니는 내가 자궁경부암에 걸렸다는 것밖에 모르고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 유방암에 대해 어떻게 물어볼 수 있는 거지? 오빠가 말했나? 우리 둘만 알고 절대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언니한테는 말한 건가. 부부는 한 몸이라더니 이런 건가?’

“어. 유방암 교수님 물어보는 거 맞아. 내 친구 은이 알지? 내 제일 친한 친구. 걔가 유방암이 의심된대. 그래서 지금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데 자기 생각이 나서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진짜 너무 속상해 죽을 것 같아.”

“신oo 교수님이에요. 수술도 잘하시고 좋은 분이에요. 언니 근데 저 유방암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오빠한테 들었어요? ”

“자기, 예전에 자기 블로그에 자기 투병기 기록한 적 있지 않아? 나 그때 봤어. 그래서 알고 있었어. 오빠한테 물어보니 오빠는 자기한테 들어서 알고 있더라고. ”

“아, 그거 보셨구나. 은언니 치료 잘 받으실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힘이 되어 주세요.”


전화를 끊고 끝도 없이 올라오는 씁쓸함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내 유방암 치료를 담당한 의사 이름을 묻는 그 질문 한마디가, 내가 깊이 덮어두었던 상처를 끄집어내, 불쑥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가족에게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 했던 나의 유방암 투병기는 사실 치료를 다 마치고 오빠에게 이미 공유가 된 상태였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지 하고 작심했지만,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에게는 나의 두 번째 암 투병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보다는 오빠에게 알리는 편이 나았다. 물론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양쪽 가슴의 각기 다른 유방암과 2번의 수술은 하나의 유방암과 한 번의 수술로 포장됐다. 오빠의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마음으로 절반이나 심각성을 줄여줬지만, 오빠는 마음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그런 얘기를 지금 하면 어떡해, 하고 크게 화를 냈다. 그렇지만 이내 미안해하는 나를 토닥이며, 다신 아무것도 속이지 말고 다 얘기해, 하고 나를 단속했다. 부모님께 말하는 것이 맞을까 한참을 이야기했던 우리는 결국 부모님께는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로 약속했다. 새언니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한 터였다. 당연히 오빠에게서 비밀이 새 나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언니는 의외의 통로를 통해 이미 내가 유방암에도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방암 투병 사실이 가족들에게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던 나이기에 그녀가 그동안 알고도 모른 척해왔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나의 고통은 지나간 일이고, 지금 당장 급한 건 자신만의 문제였을까? 내가 끝내 숨기고 싶었던 아픈 기억이, 새언니에게는 급할 때 꺼내 쓰는 정보였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새언니를 내 마음속 가장 먼 자리에 두기로 한 것은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일어나고 난 후였다. 유방암 재발 의심으로 조직검사를 하며 병원을 왔다 갔다 하고 있던 심란했던 지난 5월의 어느 날,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용은 같았다. 지인 중 한 명이 유방암인데 그때 알려준 교수님 성함을 알려달라는 내용. 실망과 서운함으로 손이 가늘게 떨렸지만, 나는 최대한 예의를 지켜 이렇게 답했다.

‘**병원 신** 교수님 시크한 편이지만 좋은 분 같음. 그런데 언니, 미안하지만, 유방암 관련 질문은 조금 자제해줬으면 해요. 나도 아직 추적 관찰 중인 환자고, 가족들에겐 말도 못 하지만 재발 의심으로 조직검사를 반복하는 상황이거든요. 언니 지인분이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벌써 두 번째 이런 식의 문의를 받으니 좀 서운하네요. 교수님 이름을 묻기 전에 “넌 요즘 어때? 건강은 어떠니?” 정도의 말이라도 먼저 들었다면 좀 덜 서운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가족인데. 문득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조심스레 말해 봅니다. 언니 지인이 치료 잘 받고 완쾌하길 바라요.’

미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고 언니는 사과했지만, 나는 그 사과 어디에서도 대단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느냐는 안부 한 마디를 묻지 않는 새언니를 더 이상 내 가족의 테두리 안에 두지 않겠다는 생각은 그렇게 굳어져 갔다.


아프고 나서 가까운 사람에 대해 대단한 실망을 하곤 했다. 새언니뿐 아니라 나의 암 투병 사실을 알게 된 후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요즘 암은 별것 아니래. 치료만 잘 받으면 다 잘 산대.”

“3명 중 한 명은 암에 걸린대. 그러니 잘 이겨내 봐.”

“금방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모두 제 딴에는 나를 위로하는 말이었겠지만, 어떠한 위로도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어딘가가 아주 천천히, 그러나 강한 분노가 나를 집어삼켰다.

‘네가 암에 걸리면 괜찮을 것 같니? 네가 항암치료를 받아 봤니? 매일 아침 가슴과 배에 커다랗게 나 있는 상처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이 쉬운 줄 아니?’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하기 쉬운 말에 상처받았고 되받아치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일을 거의 멈추기 시작했다. 기대는 늘 상처를 만들었고, 상처는 조용히 나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마음이 흔들리는 나를 지키기 위해,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법은 점점 더 익숙해졌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바랐던 위로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많이 힘들지. 얼마나 힘들지 상상할 수도 없다. 힘들겠지만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 언제라도 힘들 땐 날 찾아 줘. 늘 곁에 있을게.”

내가 쉽게 했던 말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었을까.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나도 크고 작은 상처를 주며 이 세상을 살아왔을 테다. 말 한마디가 마음을 건드리고,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사람을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한 번 더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를,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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