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고 나서 아주 가끔 아빠의 형제들과 점심을 먹는다. 아빠, 엄마, 큰삼촌, 작은삼촌, 그리고 작은엄마들이 멤버다. 아빠는 나와 함께 일 년에 한두 번씩은 해외여행을 간다. 큰삼촌은 작은엄마와 일 년에 서너 번은 해외여행을 간다. 하지만 막내 삼촌만은 그러지 못했고, 아빠와 큰삼촌은 늘 그런 막내 삼촌을 안타까워했다. 아빠와 큰삼촌이 여러 번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해 봤지만, 그때마다 막내 삼촌은 괜찮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함께 여행을 떠날 사이좋은 아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부부 동반이 아닌 삼 형제들만의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지 생각했다. 내가 가이드가 되어 떠나는 형제들끼리의 여행이라면 막내 삼촌도 흔쾌히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삼촌, 해외여행 가보긴 하셨어요?”
”가보긴 했어. 한 30년쯤 됐을걸. 백두산 가봤어.”
“아빠랑 삼촌들이랑 나랑 넷이 해외여행 한 번 가볼까요?”
“해외는 좀 그렇고…”
“그럼 국내 여행이라도 가보면 어때요?”
부모님과 여행을 다니면서 늘 느꼈던 것은 우린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삼촌들이 어떤 사람인지 당연히 모른다. 잘 알지도 모르는 할아버지 셋을 모시고 떠나는 여행은 분명 만만치 않을 터였다. 하지만 어느새 설레는 마음으로 반짝이는 할아버지 셋의 눈빛을 마주한 나는 강원도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세 분을 모시고 천안에서부터 출발해 강원도 속초로 향했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쌌다. 삼 형제가 평균 칠십 세가 넘어 평생 처음 함께 떠나는 여행, 집에서 싼 김밥 정도는 있어야 나들이 기분이 날 거라며, 엄마마저도 들뜬 듯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막내 삼촌이 말했다.
“가자고 해서 가긴 가는데 도대체 여행을 왜들 그렇게 다니는지 모르겠어.”
“삼촌 그래도 가보면 좋을 거예요. 삼 형제 처음 떠나는 여행이잖아요.”
“난 여행이 돈지랄 같다고 생각해. 죽어라 일해야 돈 몇 푼 벌기에 바쁜데, 다들 어찌 그리 팔자가 좋은지. 어휴”
아빠와 큰삼촌에게 하는 말인가 싶어 잠깐 당황하며 눈치를 봤지만, 여행의 맛도 모르는 놈이라고 큰삼촌이 막내 삼촌을 놀렸고 우린 함께 웃었다. 과연 이 여행의 끝에서도 막내 삼촌이 괜히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었지만, 이미 출발한 터였다. 되돌아가는 것은 내 옵션에 없었다.
우리는 휴게소에 들러 엄마가 사 준 김밥을 나눠 먹었다.
“세상에, 집에서 싼 김밥도 먹어보네. 형수님이 예전에 나 군대 다니고 할 때도 김밥 싸주시고 그랬는데… 새벽부터 뭘 이런 것을 다 싸주셨대…”
뭐 하러 김밥까지 싸 보냈느냐고 말하는 막내 삼촌이었지만,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어쩐지 표정이 조금은 풀어진 것 같았다. 막내 삼촌은 소위 ‘방위’여서 집에서 출퇴근했다. 무거운 막내 삼촌의 무거운 군복을 빠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세탁기도 없이 엄마의 가녀린 손목으로 군복을 빠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엄마는 삐쩍 마른 막내 삼촌이 늘 안쓰러워 그깟 빨래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을 친동생보다 더 아껴왔던 형수가 온 마음을 다해 김밥을 쌌다는 것을 막내 삼촌이 모를 리 없었다.
우리는 설악산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러 걷다 보니, 입구에 귀여운 곰 동상이 있었다. 사진 찍어드릴 테니 사이좋게 서 보세요, 하고 말했지만 서로 어깨도 닿지 않았고, 얼굴에는 어색함만이 묻어났다. 함께 자란 형제들이었지만 살갗 닿는 것조차 어색한 것 같았다. 어색함이 철철 넘치는 뚝딱거림에 웃음이 났다.
“막내야 이리 와. 여기에 서 봐.”
아빠와 삼촌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위치에서 찍어야 설악산 권금성의 멋진 풍경과 함께 막내 삼촌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지 고심하는 듯했다. 칠십이 다 된 막내 삼촌의 인생 샷을 찍어주기 위해 팔십이 다 된 아빠와 칠십이 넘은 큰 삼촌은 신이 났다. 여행이 거의 처음인 막내 삼촌은 인제 그만 됐다고 여러 번 손사래를 쳤지만, 아빠와 삼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산하는 길에 막내 삼촌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삼촌은 내게 삼촌 먼저 내려갈게, 하고 조용히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삼촌은 과민대장증후군이 있었다. 170이 넘는 키에 50킬로도 넘지 않을 만큼 삐쩍 마른 이유가, 원래도 몹시 예민한 성격인 탓도 있었지만 배가 아픈 것도 큰 이유였다고 했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늘 화장실을 찾는 게 일이다 보다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봐 수십 년 동안 어디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막내 삼촌에게 아빠와 삼촌이 계속 말했다.
“막내야. 저기 화장실 있어. 다녀와, 우리가 여기서 기다릴게.”
화장실을 찾는 막내 삼촌은 이미 할아버지가 됐지만,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은 아빠와 큰삼촌의 모습에 어쩐지 서글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날에는 속초 청초호에서 요트를 타기로 했다. 요트를 예약했다는 내 말에 비싸기만 한데 뭘 그런 것을 타느냐고 타박하는 할아버지들이었지만 그냥 따라오셔요, 하는 내 말에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을 보니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행의 경험이 많은 아빠와 큰삼촌은 의외로 겁이 많았다. 갑판 위로 올라와 사진 한 장 찍으라는 나의 제안에서 요트 안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내 곁으로 온 사람은 막내 삼촌뿐이었다. 삼촌이 내게 먼저 말했다.
“삼촌 저기 요트 끝에 가서 서 볼 테니까 사진 좀 찍어줄래?”
“삼촌 조심해서 가셔야 해요.”
나도 무서워 선뜻 가기 힘들었던 곳이다. 삼촌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삼촌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무서워하는 것이 보였지만, 그래도 삼촌의 용기에 난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삼촌! 제가 엄청 멋지게 한 장 찍었어요! 이리 와서 보세요!”
삼촌이 내 곁으로 와 앉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카, 고마워. 조카딸 덕분에 삼촌이 이런 호강도 해 보네.”
“삼촌, 어떠셨어요? 아빠랑 큰삼촌이랑 같이 여행 오니까 좋죠?”
“그러게. 여행을 왜들 그렇게 다니나 했는데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네. 나중에 은퇴하고 이렇게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사는 삶도 참 좋긴 좋겠다.”
“삼촌, 우리 자주 와요. 아빠도 이제 점점 나이 들고, 삼촌들도 그러시고요. 우리 진짜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게 몇 년 안 남았어요. 그러니 우리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여행 가요.”
“그래. 그러면 참 좋겠다. 데리고만 가줘. 어디든 따라갈게.”
삼촌의 나지막한 짧은 한마디가, 내가 백수가 된 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다시 붙잡아준 것 같았다.
백수가 된 후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어쩐지 그들의 속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행복한 미소 뒤에 슬며시 감춰둔 마음 저 너머 어디에는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스스로가 못마땅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랬다. 아주 오랜 시간 평가받는 삶에 익숙해 있었다. 학생 때는 시험 점수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했고, 회사에 다닐 때는 일 년에 한 번씩 어떤 성과를 냈는지 평가받았다. 대단히 뛰어나 상위 1%가 된 적은 없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았다. 운동을 하면 운동선수를 시켜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피아노를 배우면 피아니스트를 시켜보라고 말했다. 나는 늘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의 인정에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백수가 되니 모든 평가에서 벗어났지만, 대신 ‘나는 지금 누구에게 쓸모 있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남았다. 어쩐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내려놓고 나니,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내게 누가 말했다. 봉사활동이라도 해 보지 그래? 봉사활동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썩 내키지 않았다. 봉사가 싫었던 게 아니라, ‘누구를’ 돕고 싶은지가 달랐다. 나는 멀리 있는 누군가보다, 내 곁의 사람들을 먼저 보고 싶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먼저 도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삼형제와의 여행을 통해 기회를 맞이한 것이었다.
칠십 대 할아버지 셋과 떠난 나의 여행은 많은 가족과 지인에게 알려졌다. 아빠와 엄마, 큰삼촌, 막내 삼촌 누구랄 것 없이 조카딸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디 그런 착한 조카딸이 있느냐고 다들 난리야. 부모님 모시고 가는 것 만해도 기특한데, 아빠와 형제들을 함께 모시고 여행이라니.”
이상했다. 회사에 다니며 받았던 최상등급의 평가보다 가족들을 생각하는 착한 아이라는 사람들의 평가가 더 감격스러웠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좋지? 싶어서, 그날 집에 와서도 몇 번을 곱씹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한 작은 실천일 뿐이었는데, 어쩐지 조금은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세상의 모든 평가에서 자유로운 척, 담담한 척했지만, 나는 역시 내 쓸모를 확인하고 나니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을 원한다.”— 에리히 프롬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사람들의 하루에 작은 기억 하나를 남길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