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딘다는 말로는 부족한 시간

by naniverse

벌써 네 번째 수술이다. 이미 충분한 경험치가 쌓였으니,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오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진단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던 첫 번째 수술, 첫 번째 치료가 종료되기도 전에 알게 된 두 번째 암, 연달아 이루어진 세 번째 수술과 치료들. 이 모든 것들은 몇 달 사이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데 쏟아졌다. 마음의 준비 따위를 할 시간도 없이 매일매일 잡혀버리는 일방적인 병원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빠 무엇인가를 고민하거나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이나, 하는 마음에 의료진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암 환자에게 수술이나 치료 일정이 조금도 밀리지 않고 착착 진행됐다는 것조차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는 모든 치료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수술은 두 달이나 후에 진행될 예정이다. 그때까지 체력도 기르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두 달이란 시간은 내가 네 번째 수술이 되어서야 처음 맞이하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어둠의 터널과도 같았다.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암 환우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다. 환우와 환우 가족들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하루에도 수백 개씩 글을 올린다. 대부분은 몇 달 후에 잡힌 수술과 항암치료들을 기다리는 암 환자들이 그 시간을 견디다 절망하는 글들이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자신을 괴롭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암에 걸려버렸는데 고민하고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매 순간 좌절하고 매 순간 화를 내며 남은 생을 어떻게 살려고 저러지, 하는 생각에 한심한 마음으로 그들의 글을 바라본 적도 있었다. 경험해 보지도 않은 것에 대한 오만한 판단,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난 이미 넘치게 풍부한 경험을 가진 암 환자라고 자신을 생각했지만, 의외로 네 번째 수술을 준비하면서야 처음 맞이하는 많은 순간은 생각보다 날카롭게 내 마음을 후볐다. 그땐 몰랐다. 기다림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고작 4년밖에 안 지났지만, 처음 유방암에 걸렸을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썼던 글이 혹시나 있나 살펴보니, 한 개의 글이 있다.

안녕하세요. 나니입니다.

사람이 참 간사하죠? 2차 암 확진에도 왜 기분이 상콤한지요. : )

4월 초 자궁경부암으로 광범위절제술하고 림프 전이가 발견되어 항암 5번. 방사선 25번. 3기 c 당첨! 이제 내일 마지막 방사선만을 남기고 있어요!

4월 말쯤 찍어본 pet ct에서 유방 이상 소견 발견되어 검사하고…드디어 어제 최종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어용. 처음에 최소 2기 이상 예상된다고 해서 지난 2-3주 우울했었더랬죠. 뭔가를 미리 알기 싫어서 유방암 관련 검색도 안 하고 있었는데요.

암튼 한쪽은 유방암이긴 한데 0기 상피내암. 부분절제, 한쪽은 유방암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부분절제 해서 다 없애고 추가 검사해 보자 하시네요. 교수님이 항암은 안 해도 될 것 같고, 방사선은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항암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얘기가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요. 수술. 방사선은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ㅎ ㅎ

최종 병기야 뭐 수술 후 나오는 건 이미 아니까, 어쨌든, 부분절제라는 것도 기쁘고, 아마 항암 안 할 거란 것도 기쁘고 뭐 그렇습니다 ^_^

내일은 마지막 방사선하고 남자 친구와 파티파티 해야겠어요. 고마웠던 쌤들께 칭찬 편지도 써보려고요. 조금씩 견디니 좋은 일도 생깁니다

동행님들도 힘내세요! 어제보다 행복한 오늘이 될 거예요.

나란 사람은 해맑기도 했다. 두 번째 암을 발견했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밝고 긍정적일 수 있었을까? 그때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것인지 잠시 생각해 봤다. 그럴 리 없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보니 어떻게든 나에게 온 이 암들을 최대한 예뻐해야 이것들이 날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느껴졌다. 이미 와버린 암들을 없앨 방법도 없으니 기꺼이 받아들이고 평생 함께 가야지 어쩌겠어, 하는 절망을 표현한 것 같기도 했다. 두 번째 암 확진이 이토록 별것 아니라는 듯이 쓴 4년 전의 내가 어쩐지 너무 안쓰러워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돌아가 꼭 안아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와는 달랐다. 나는 수술로 이 치료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안다. 수술 후 병기가 높아져 혹시 항암에라도 당첨되게 되면, 지금까지 엄마를 속이며 혼자 견뎌왔던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하고 싶은 취미들로 가득 채워왔던, 따뜻하고 다정했던 나의 일상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떠났던 낯선 곳으로의 여행도 어쩌면 다신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수술 전까지 일상을 유지하려 애써봤다. 필라테스를 가고 가야금 레슨을 받았다. 영어 수업도 들었고 골프 라운딩도 하러 갔다.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도록 계속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무엇을 하던 내 머릿속은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것을 해서 뭐해. 나는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쌓아온 일상이 한꺼번에 무너질까 봐 무서웠다.

뭐 꼭 죽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다만 항암을 시작하고 대머리가 되는 순간 나의 다정한 일상은 이제 내 세계에 존재하지 않게 될 터였다. 하나씩 일정들을 지워나갔다. 나니 님 갑자기 왜요? 라고 묻는 나의 선생님들에게 암이 재발 됐어요, 라고, 솔직히 말해 버렸다. 가족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니, 낯선 누구에게서라도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나니 님 힘내요, 라는 말 한마디가 또 거슬렸다. 힘이 날 리가 없는데 고작 힘내, 라는 말 한마디로 힘이 날 것으로 생각하는지, 야속하고 서운했다. 종일 소파에 누워 아름다운 동행 카페에서 살았다. 전절제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수술을 받고 어떤 회복 과정을 겪었는지 보고 또 봤다. 수술 후 기수가 올라가 결국 항암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처절한 일상을 찾아가는지도 찾고 또 찾았다. 누구랄 것 없이 자신이 가장 힘든 상황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에게서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그들이나 나나 똑같은 것 같았다.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 오늘 가야금 수업 있지 않았어?”

“안 했어. 선생님에게 말하고 당분간 수업 안 하기로 했어.”

“그래도 수술받을 때까지 그냥 하지. 자기 좋아했잖아.”

“가야금 배워 뭐 해. 당장 몇 달 뒤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수술만 받으면 자기는 멀쩡해지는데. ”

“자기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자궁경부암도 1기라고 했어. 근데 수술하고 나니 3기잖아. 유방암도 0기라고 했어. 근데 수술하니 1기잖아. 재수술 확률도 거의 없다고 했어. 근데 나는 재수술도 했잖아. 2년만 지나면 재발 확률도 거의 없다고 했어. 근데 나만 또 재발이야. 난 어차피 일찍 죽을 운명이야. 다 끝났다고.”

“자기야 그러지 마. 이번 수술이 마지막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마지막은 뭐가 마지막이야. 무당 고모가 내가 검은 보자기를 쓰고 있다잖아. 어차피 난 죽는다고!”

말하는 내가 들어도 논리라는 것은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헛소리의 향연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대는 나를 나의 연인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가만히 바라본다. 어쩐지 그의 얼굴에 절망이라는 단어가 스치는 것 같았다. 말이 안 되는 억지를 부르며 울고 또 우는 내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나의 연인은 나를 안고 또 안았다. 그의 눈에서도 어느새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울면서도 나는 내가 싫었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나를, 그는 어디까지 견뎌야 할까 싶어서.

어느 날은 엄마가 보고 싶다며 종일 억지를 부렸다.

“나 왜 엄마한테 이야기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 엄마한테 지금 당장 말할래.”

“그럴까? 그래, 엄마한테 말하자. 지금 전화해서 다 말하자.”

“무슨 소리야? 엄마한테 말하면 나보다 엄마가 먼저 죽는다고 말했잖아!”

“아니, 자기가 엄마한테 말하고 싶어 하니까. 자기 혼자 감당하는 게 너무 힘드니까. 자기가 사실대로 다 말해도 엄마는 괜찮으실 거야. 지난번에도 잘 이겨내셨잖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얘기해? 엄마는 지금도 겨우 견뎌내고 있는 거라고. 나 아팠던 얘기만 하면 엄마는 이미 울고 있다고 몇 번을 말해!.”

내 말이 맞다, 맞장구를 쳐도, 틀린다고 말해도, 무슨 말을 해도 어차피 욕을 먹는 그였다. 그렇게 이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낯선 나를 견디다 보니 어느새 7월이 됐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부모님과의 여행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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