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딱 하나의 그림을 걸 수 있다면 어떤 그림을 걸고 싶은가요?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일 년에 몇 번씩 해외여행을 가지만 박물관, 미술관은 내가 방문할 리스트에 오르지 않는다.
얼마 전 미국여행을 다녀왔지만, 뉴욕일정은 고작 4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뉴욕이 4일로 가능하냐고, 최소 일주일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럴만한 것이 뉴욕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셀 수 없게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작년 이탈리아 여행 중, 모두가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방문했던 우피치미술관에서도 같았다.
모두가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도슨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일 때 난 단 하나의 생각을 했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앉고 싶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전문 도슨트가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해 주어도,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딱 하나의 그림을 떠올려보다는 저 질문에 생각나는 단 하나의 순간이 있었다.
2008년 나는 프랑스 파리에 갔다. 첫 번째 해외여행은 무조건 프랑스를 가고 싶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에펠탑 아래에서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생 시절 미국에서 잠깐 어학연수를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2년 동안 돈을 모았고, 첫 번째 해외여행을 드디어 떠나게 됐다.
내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전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남들이 다 가는 관광지들로 코스를 짰고, 하나하나 도장 깨기를 하며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 박물관 하나와 미술관 하나는 가 봐야지 하며 방문했던 오랑주리미술관이었다.
거기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그림이 하나 있었다.
모네의 수련
수련으로 가득 쌓인 전시관으로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난다.
이건 뭐지? 여긴 어디지?
멍하니 서서 수련을 바라보던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고,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서 그림을 보고 또 봤는지 모르겠다.
떠나기가 아쉬웠다.
다음 날 예정된 일정이 있었다. 이미 15년이나 지난 기억이라 어딜 가려던 계획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알았던 것 같다.
모네의 수련을 한 번 더 보고 가지 않는다면 나는 반드시 후회할 것을
반드시 가야 한다는 관광지를 하나 더 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님을.
내 마음을 뺏는 어떤 것을 찾고, 기억하고, 느끼는 것임을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파리를 떠나기 전 한 번 더 오랑주리미술관을 찾았다.
오래도록 앉아 그림을 보며 인사했다.
- 꼭 다시 한번 만나러 올게
다시 한번 더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잠시 멈출 수 있는 순간을 찾은 그 기억은 앞으로 이어진 내 여행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한다.
계획은 세우되 그 계획은 내가 한 번 더 보고 싶고, 한 번 더 하고 싶은 것들 앞에서 언제든지 아무 소용이 없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어떤 여행도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없다면 계획대로 여행을 즐기면 된다.
내 모든 것을 빼앗는 어떤 것이 발견된다면, 며칠이고 머물면서 마음껏 즐겨도 그저 행복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됐다.
나를 멈추게 하는 무엇인가가 발견되는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만하다.
작은 인연에도, 작은 물건에도, 작은 음식 하나에도 다시 이곳을 찾고 싶다는 이유를 갖게 한다.
내년에 가게 될 방콕, 대만, 스위스
거기서도 그곳을 다시 찾고 싶은 반짞이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다려본다.